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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나니까 퇴근할게요
메리엠 엘 메흐다티 지음, 엄지영 옮김 / 달 / 2025년 2월
평점 :

세대 간의 갈등은 꼭 오늘날만의 일이 아니라,
과거에도 있었다.
당장 몇십 년 전뿐 아니라,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점토판에도,
이집트 피라미드 내벽에도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남긴 글에도
비슷한 얘기가 쓰여 있었다고 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버릇이 없어.'라고 말이다.
그만큼 세대 갈등은 어느 나라, 어느 시대나 있었다.
신세대에서 X세대를 넘어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묶어 MZ 세대라 일컫는데,
이들이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곳곳에서는 'MZ 세대들은 문제가 많다'면서
그들과 마주하며 겪은 넋두리를 펼치고 있다.
정말 MZ 세대가 문제일까?
아니면 시대에 관계없이 '젊은'사람들은
기성세대들에게는 그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일까?
80년대 중반에 태어난 나는
MZ 세대의 막차를 탑승하고 있지만,
한창 화두가 되고 있는 MZ 세대의 문제에 대해서는
오히려 기성세대의 편에 서 있는 편이다.
자유롭고 자기 의견을 분명하게 말하는
MZ 세대의 모습이 나에게는 없다고 생각했고,
어쩌면 지극히 너무 순종적이고
'좋은 게 좋은 거지'라고 생각하는 모습은
기성세대와 가깝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회사를 다니던 시절, 나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나의 모습도 부정적으로 그려지는 지금의 MZ와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때는 다 이유가 있고, 지극히 정상적이었던
나의 생각과 행동들이 사수들에게는
지금의 MZ 들과 다르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결국 MZ여서 문제가 아니라
세대의 차이는 결코 풀 수 없는 본질적인
'다름'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1990년대에 태어나 푸에르토리코에서 자라난 작가는
자신과 동명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회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쓴다.
읽다 보니 '이게 소설이야, 자기 얘기야' 싶게
혼란스러울 정도로 리얼했고,
소설 속에서 주인공인 메리엠이 내뱉는
신랄한 속마음(결국 밖으로 꺼내지 못했으므로)은
회사를 다니며 신입사원 시절에 나 역시 가졌었던
생각으로 많은 공감을 하게 했다.
어린 나이, 여성,
남들과는 다른 이름과 뿌리,
비정규직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메리엠은 회사에 대한 불만이 쌓여간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그만'이라고 하지만,
나에게는 먹여살려야 하는 나 자신이 있기에
그녀는 하고 싶은 말은 삼키고,
몰래 눈물을 흘릴지언정 무난하고 평온한
직장 생활을 이어갈 따름이다.
나 역시 그런 때가 있었다.
빠른 생일로 일 년 일찍 들어간 학교,
휴학 없이 논스톱 졸업으로 남들보다 빠르게 시작한
사회생활에서 한 명의 '직장인'으로 존중받기보다는
회사의 막내, 팀의 막내로 하나의 부품처럼
취급받는다는 생각에 괴로웠던 때가 있었다.
기획 일을 했지만 내 마음대로 그릴 수 없었던 기획안,
인수인계도 없이 주어졌던 업무인지라
드디어 나만의 기획안을 공들여 만들었지만
돌아온 것은 작성자 이름이 상사로 바뀐 채
보고하는 회의에는 참석조차 하지 못했던 날들,
사소하게 팀원들끼리 진행하는 생일파티 준비도
같은 직급인 여러 사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자 직원들만 나서서 챙겼어야 했던 일 등
메리엠이 겪었던 일은 '슈퍼사우루스' 유한회사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대한민국에서도 버젓이 일어났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메리엠은 과감히 박차고 회사를 나갔을까?
퇴직 대신에 퇴근을 택한 그녀는
인턴에서 계약직 사원을 거쳐 정규직 사원이 된다.
그리고 과거의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어린 인턴을 마주한다.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과 같은
이 어린 인턴에게 메리엠은 과연 어떤 모습을 보일까?
사회생활은 사람을 어떻게 바꾸는지,
회사라는 집단에서 어린 여성이 가질 수 있는
생각은 어떤 생각이 있는지
메리엠과 회사 슈퍼사우루스, 동료들로
거울처럼 비춰주는 현실을
우리는 제대로 직시하게 된다.
우리도 한때는 신입사원이었다,
우리도 한때는 어리숙하고 불만이 가득하지만
이 지긋지긋한 밥벌이를 이어나간 끝에
지금의 우리가 되었다.
하지만 그 시간은 금세 잊히고 만다.
그러고는 기성세대가 되어 새로운 세대들을
나무라고 꾸짖는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반복되는 이 패턴 속에서
다른 세대, 성별의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는
방법을 이제는 배워나가야 하지 않을까?
지난 시간에 대한 회상과 더불어
격한 공감, 속 시원한 짜릿함까지 느낄 수 있었던
소설이지만 소설 같지 않았던 작품이었다.
'사회생활은 결국 이런 거겠지'하고
나지막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 글은 달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