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말씀만 하소서 - 출간 20주년 특별 개정판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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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잃은 남편은 홀아비,

남편 잃은 아내는 과부,

부모 잃은 자식은 고아라고 하지만

자식을 잃은 부모를 일컫는 말은 없다고 한다.

아이를 앞세운 슬픔이 너무 커서

그것을 표현할 단어가 없다고 하는데,

그 고통을 당사자가 아닌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힘내라는 말로 감히 위로할 수 없는

그 참척의 고통을 낱낱이 써 내려간 통곡이 여기 있다.

다양한 작품으로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박완서 작가의 《한 말씀만 하소서》이다.


뜨거운 올림픽의 열기가 가득했던 1988년,

박완서 작가는 1남 4녀 중 하나뿐이었던 아들을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잃는다.

남편을 떠나보낸지 반년도 되지 않아 마주한 이 이별은

아직 20대로 창창했던 아들을

한순간에 잃은 작가에게는

표현할 수 없는 아픔으로

이후 삶에 대한 모든 의욕을 잃게 하고,

또 아들을 데려간 신에 대한 원망에 이르게 된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으며

술을 마시고 겨우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면 울부짖기를 반복하다

이해인 수녀님의 초대로 가게 된 성당의 언덕방에서

비로소 혼자의 시간을 맞이하며,

그녀는 자신의 아들을 데려간 신에게 맞붙어보고

'왜 이런 고통을 주었는지 한 말씀만 하소서'라며

자신의 고통이 주어진 이유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이유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다.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참척의 고통을

쏟아지는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낸 일기는

활자가 되어 누군가 읽게 된다는 염려 없이

자신을 그대로 쏟아낸 글로

작가 박완서가 아닌 한 에미로써 느끼는

인간적인 고통이 담겨있어서 더욱 절절하게 느껴졌다.



가족을 잃은 고통,

그중에서도 내 품 속에서 낳고 키우던

자식을 잃은 고통을 무엇에 비할 수 있을까?

어떤 위로도 위로가 될 수 없고,

자고 일어나면 꿈일까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

매일 떠오르는 해처럼 다시 찾아오면서

이내 아들이 없는 사실을 매일 일깨우며

'생과 사' '삶과 죽음' 사이에서 괴로워하던 작가는

놓았던 삶의 끝에서 다시금 생의 희망을 발견한다.


'아, 너는 살고 싶었던 거구나' '너는 살고 싶구나'

아들을 잃은 상황에서 생의 욕구를 느낄 때마다

스스로를 자책하던 작가는 진정한 삶의 의미와

신을 원망하던 마음을 이내 바꿔 먹고

세상을 다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다.


아들의 죽음과 부재 앞에서

놓았던 생의 욕구는

어쩌면 다시 세상을 바라보고 사랑하는

능력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계기로 다가왔다.


미처 돌아보지 못했던 자신에 대해서도

언덕방에서 머무르며 마주한 수녀님들과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비로소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었다.


떠난 아들을 뒤로하고 힘들어하는 자신을 바라보는

딸들에 대한 고마움과 동시에

'나를 그냥 내버려두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나

'아들이 아닌 딸이 떠났어도 이렇게까지

고통스러워했을까?'라는 의구심을

스스로에게 보내다가도

그런 자신의 모습을 후회하고 용서를 비는 모습은

지극히 인간적이었기에 더욱 이해가 가기도 했다.


가족을 잃은 고통은 평생을 가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더욱이 창창한 미래를 꿈꿔왔던

젊은 아들의 죽음이 그녀에게 어떻게 다가왔을지

미루어 짐작조차 할 수 없다.

흔들렸던 시간만큼이나 다시 단단하게 일어난

작가의 시간은 이후 다양한 작품 속에서

더 아름다운 꽃을 피우게 한 자양분이 되지 않았을까.

아들이 없는 세상을 다시 사랑하게 된 것이 아니라,

아들이 있었기에 아름다웠던 세상을

비로소 다시 발견하게 된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힘들었던 3월

박완서 작가의 88년이

우리 가족들에게도 해마다 찾아오고 있는데,

잊지는 못하지만 조금은 무뎌졌다고 생각했던

그때의 시간들이 책을 읽으며 떠올라 힘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 시간을 겪어내고 다시 일어난 경험이 있기에

작가의 마음이 그 울림이 더욱 진하게 전해졌다.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희망에 대하여,

마냥 힘들기만 한 시간은 없고

결국 시간을 흘러간다고 덧붙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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