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다만 여행자가 될 수 있다면 ㅣ 박완서 산문집 10
박완서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월
평점 :

일상 속에서 지루함이나 무료함을 느낄 때
우리는 여행을 떠나서 색다른 시간을 만끽한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의
먹고 자는 일들이 여행을 떠나서는
색다른 추억의 조각이 되니,
여행이 가진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큰맘 먹고 낸 휴가, 낯선 여행지에서
똑같은 여행자임에도 불구하고
보거나 체험하는 여행이 아닌
'살아보는' 여행을 하는 이들의 여유로움을
부럽다고 느낀 적이 있다.
정해진 기간, 꼭 봐야 하는 것이나
꼭 먹어보길 추천하는 것,
여기에 가면 꼭 사야 한다는 것을
숙제하듯 하나하나 도장을 찍고
휴식을 위해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른 아침부터 어두운 밤까지
일정을 소화해 내기 바쁜 우리와는 다르게
원래부터 그곳에 살았던 것처럼
늦잠을 자고 일어나 여유로운 식사를 하고
정처 없이 발길이 닿는 대로 이동하며
원하는 활동을 하고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진짜 제대로 즐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진짜 여행은 그런 것 같았다.
무언가를 의식하지 않고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쁜 것은 나쁜 대로
그대로 바라보면서 즐기는 것 말이다.
타계한지 벌써 14주기를 맞이한
박완서 작가님의 여행에 대한 생각도 그러했다.
"될 수 있으면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것까지도
잊어버리고 다만 여행자가 될 수 있다면" 하고 말이다.
박완서 작가님의 여행에 대한 산문을 모은 산문집이
완전판으로 다시 돌아왔다.
지금껏 공개된 적이 없는 산문 5편을 포함하여
가깝게는 당일치기로 떠난 강원도 여행부터
중국 만주, 백두산 여행
고산병으로 고생했던 동아시아 여행 등
여행지에서의 기록을 바탕으로
여행을 하며 느낀 박완서 작가의 생각을 볼 수 있었다.
해외여행이 쉽지 않았던 시기뿐 아니라
문인으로 또 한국을 대표하여 떠난 여행에서는
여행 자체를 즐기기보다는 어떤 책임감이나
의무감에 대한 무거움도 느낄 수 있었다.
동료 작가들과 함께 한 여행에서
여행지의 낯선 풍경과 사람들을 보며 느낀 감정들은
평범하게 즐기는 여행이 아니었고
현지인들의 삶으로 가까이 다가갔기에 볼 수 있었던
풍경과 감정들이어서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그저 편하고 즐기는 것만이 여행이라고,
현실을 잊고 노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여행에 대한 생각을
박완서 작가의 글을 통해 바꾸게 되었다.
편한 호텔이나 정형화된 패키지가 아닌
자유롭게 현지를 오가며 현지인들과 어울리고,
때로는 오지 탐험이라 할 만큼 힘든 여정에
오르는 이들을 볼 때면 그 힘든 여정에 오르는
마음이 궁금했다.
선택할 수 있다면 누구나 편하고 즐겁게만
다니고 싶을 텐데 구태여 힘든 고생길을
여행지에서 마주하는가에 대한 의문도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여행에 대한 박완서 작가의 글을 보니
편하고 즐거운 것만이 여행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즐겁다는 개념이
꼭 편하고 여유로운 것만 한정되지 않으며,
때로는 고달프고 힘들더라도
때로는 불편하고 낯설더라도
그 속에서 그대로 즐길 수 있는 기쁨이 있음을
배우게 되었다.
박완서 작가의 글을 통해
낯선 이국에서의 풍경에 온 신경을 곤두세운다.
새로운 경험들이 있는 글들을 보며
모든 것을 잊고 다만 여행자가 될 수 있기를
나 역시 그런 여행을 할 수 있기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