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의 무한도전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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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그 자체에서 엄청난 힘이 느껴지는 작가들이 있다.

개인적으로 그런 힘이 느껴지는 대표적인 작가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히가시노 게이고라고 생각하는데,

워낙 탄탄한 팬층을 가질뿐더러

많은 작품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관을

철저하게 지켜온 작가가 가진 힘과

그의 필체에서도 느껴지는 힘은

나 혼자만이 느끼는

단편적인 생각은 아닐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경우 소설뿐 아니라 에세이나

산문을 비롯해 다양한 형태로 나온 글들을 읽었었는데,

추리소설, 미스터리 소설의 대가라 할 수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글은 소설만을 만났을 뿐

그의 개인적인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글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이번에 만나본 책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도 아닌

40대가 되어서 도전한 스노보드 분투기로

《월간 제이노블》을 통해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연재했던 글들을 엮은 책이다.

여기에 스노보더를 다룬 단편소설 3편까지 더해져

소설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아닌

스노보드를 즐기는 아저씨 스노보더 히가시노의

모습을 제대로 만날 수 있었던 책으로

소설을 읽으며 느꼈던 히가시노 게이고에 대한

나의 상상 속 이미지를 지우고

다시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작가라는 직업적 특성상 호기심이 많기도 하고,

한 번 마음먹은 일에 대해서는 곧바로 실천에 옮기는

그의 성격은 스노보드에서도 여지없었다.


우연한 기회에 《스노보더》라는 잡지의

편집장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그에게 스노보드에 도전하고 싶다는

희망 사항을 이야기하다가 잡은 약속은

구체화된 계획으로 변경되어

스노보드에 입문하는 계기가 된다.


수없이 타고 넘어지기 멈춰 서기를 반복하며

눈 범벅이 되었지만 히가시노는 여기서 재미를 느끼고

스노보드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는 옛말처럼

뒤늦게 시작된 그의 스노보드 사랑은

마감에 쫓기고 글을 쓰기에도 부족한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몇 시간을 운전으로 달려

스노보드를 타는데 이르게 했고,

스노보드 연대 속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색다른 인연' 뿐 아니라

소설 쓰기의 새로운 소재로 그에게 다가왔고,

이 책 속에서 급기야 스노보드를 다룬

3개의 단편소설까지 나타나게 된다.


글을 쓰는 사람은 어쩐지 정적이거나

조용한 취미를 가질 것이라고만 여겼다.

달리기를 하며 음악 듣기를 좋아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취향은 너무나 잘 알았지만

스노보드에 빠져서 실시간 영상으로 눈 상태를 체크하며

스키장을 향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모습은

책을 읽는 내내 어쩐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미스터리한 사건 속에서 등장인물들을 향한

의심과 추리를 이어가게 하는 그의 소설과 달리

그는 누가 보기에도 '너무나 스노보드를 좋아하는'

파악하기 쉬운 사람이었고,

무언가에 대한 이토록 순수한 재미를 아는 그가

자신의 일(소설 쓰기)에서도 열심일 수 있는 건

이런 충전의 시간이 있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나 역시 일을 하면서도 시간을 만들고 짬을 내서

즐기는 그런 취미가 있는데,

스노보드에 대한 그의 애정을 나의 취미와 겹쳐보며

묘한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다.


이토록 재미있고 끈기 있으며,

또 일에도 도움이 되는 취미가 있다면

기꺼이 시간을 내고 마음을 더할 가치가 있지 않을까?

그가 가만히 앉아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인물들의 복잡한 관계를 설정하는 소설가가 아닌

즐길 때는 즐기고 순수한 재미를 아는 소설가라서

정말 건강하게 글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덩달아 즐거워지는 기분이었다.

이제 설산을 배경으로 한, 혹은 스노보드나

스포츠를 주제로 한 그의 소설을 읽을 때면

소설 취재를 핑계 삼아 자신의 재미를 추구하고 있을

모습이 상상이 가서 너무 웃길 것 같다.


추리소설의 대가 히가시노 게이고에게서

발견한 이런 위트함이라니!

그의 소설만큼이나 반전이 넘치는 시간이었다.


"이 글은 소미미디어로부터 서포터즈활동을 위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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