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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 - 소노 아야코 에세이
소노 아야코 지음, 김욱 옮김 / 책읽는고양이 / 2023년 6월
평점 :

얼마 전 초등학교에 다니는 조카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가족들에게 던졌다.
나이와 성별, 혹은 개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사람들이 느끼는 어려움이라는 것은
각기 다를 수 있지만
가족들의 대답을 하나둘씩 모으다 보니
모두가 공감하는 포인트는 바로 '인간관계'였다.
서로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인간관계'란
풀어야만 하는 가장 어려운 문제인 것이다.
다양한 에세이를 통해 자신만의
담담한 생각을 전하는 소노 아야코가
자기 자신과 부모 자식 등 가족,
타인과의 인간관계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생각을 털어놓은 에세이
《인간관계》를 읽어보았다.
출간하는 작품마다 늘 마음에 와닿는
소노 아야코가 말하는 인간관계에는
내가 생각지 못했던 어떤 시각이 담겨있을지 궁금했다.
이전에 읽었던 이석원의 《2인조》를 읽으면서
타인과 세상이 아닌 나 자신에게로 돌리며
자신과 잘 지내는 법,
나와 함께 살아가는 법에 대하여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었는데
이번에 읽은 소노 아야코의 에세이 《인간관계》에서도
가장 먼저 다룬 '관계'는 다름 아닌
'나 자신'에 대한 것이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가까이에 있으면서
평생 함께 해야 하는 사이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하지만 타인과의 관계나 마음, 시선은 신경 쓰면서
정작 자기 자신은 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내 마음속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못하거나
자기 자신을 오롯이 바라보지 못하는 것은
결코 특정한 누군가에게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니다.
선천적인 고도근시로 인해 제대로 보지 못하는
젊은 날을 보내며, 자신을 제대로 마주한 것은
50대 중년층이 되어서였던 작가.
작가는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시간의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며, 그 시간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향해가는 과정을 담았다.
'차별'이라든가 '배려'에 대한 부분에 대한 생각도
대다수의 여느 사람들과는
색다른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나'에게서 출발한 이야기는
이혼을 하게 된 부모님의 이야기를 거쳐
아무리 부모 자식 간이라고 하더라도
온전히 이해하거나 잘 맞을 수 없는 부분,
서로 엇나갈 수밖에 없는 부분들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있다.
점점 확대되어 전하는 이야기는
가족을 넘어 타인과의 관계로 이어지는데,
인간관계에 있어서 타인에게 기대하거나
내가 생각한 마음으로 타인의 마음을 결정하고는
그 차이에서 관계의 서운함을 느낀다거나
돈이나 대가와 관련된 관계에 이르기까지
마주할 수 있는 다양한 인간관계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전하고 있었다.
나 역시 완벽한 사람이 아니며
완벽하게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관계를 곤란하게 하는 다양한 포인트를 이해하며
보다 겸허하게 외부 세계를 받아들이는 과정들을
작가만의 시선과 목소리로 큰 그림을 그렸다.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인해,
타인과의 관계 맺기가 쉽지가 않았고
이로 인해 의도치 않은 단출한 관계,
누군가가 보기에는 한정되고 고립된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았지만
단출한 생활을 좋아하는 소노 아야코는
자신의 시간 속에서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고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성찰하며
작지만 단단하면서도 상처받지도 주지도 않는
그런 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타인에게 기대하다가도 금세 실망하고,
의도하지 않았는데 다르게 받아들여진 내 모습에
속상해지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인간관계가 어떤 수치적인 것이나 절대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맺고 끊음'에 모지지 못했던 것은
'많은 인간관계가 좋은 인간관계'라는 고정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점점 나이가 갈수록 좁아지는 것 같은 인간관계 속에서
'인간관계란 무엇인지?' 제대로 생각해 볼 수 있었고
내가 타인에게 그토록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나 역시 타인에게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님을 알고
시선과 평가 속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야겠다는
마침표에 도달할 수 있었다.
나를 어느 위치에 세워둘 것인지,
타인과의 관계에서 잡아야 할
나의 태도는 어떤 모습인지
관계에 대한 정의를 모호하게나마
내릴 수 있어서 좋았다.
나이가 들수록 '나다움'에 대해서 집중하게 되는데,
인간관계라는 큰 틀에서
타인뿐 아니라 나에게서 출발하는
관계의 스펙트럼을 제대로 그려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