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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에즈리 도서관의 와루츠 씨
코교쿠 이즈키 지음, 김진환 옮김 / 알토북스 / 2024년 5월
평점 :

도서관과 책, 기록물을 다루는 학문인
문헌정보학과를 나온 나이지만
도서관의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면
'과연 어떠려나....'라는 마음이 먼저 떠오른다.
사진이나 영상 등의 매체에 점점 익숙해지기도 하고
활자를 읽어도 컴퓨터나 핸드폰,
태블릿 PC를 비롯해 전자기를 이용한
콘텐츠를 소화하고 있기에 종이책이 과연
얼마나의 가치를 가질까?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까?
에 대한 생각은 계속 드는 것 같다.
지구에 빙하기가 다시 찾아온다는 소재를 다룬 영화
〈투모로우〉에서는 갑자기 밀려오는 눈보라를 피해
도서관으로 대피한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빙하기를 다시 맞이한 지구의 도시 한가운데서
이 지구 역사의 기록이 되고
앞으로의 희망이 될 수 있는 장서를 가진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가지는 의미는
단순히 책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그 이상의 가치를
보여주는 장면이 아니었나 싶다.
마지막에 도서관을 벗어나 탈출을 하면서도
책을 꼭 끌어안고 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기록처럼 중요한 것은 없다'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36시간의 전쟁이라 불리는 3차 세계대전 이후
폐허가 된 도시부를 벗어나 한적한 평온한
사에즈리 초라는 도시에는
누구나 회원 등록 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사립 도서관이 있다.
모든 것이 전자화된 데이터로 저장되며
종이책이라는 것이 낯선,
종이라는 것이 보기 힘든 근시대의 미래
여전히 책을 읽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오픈되어 있는 도서관 '사에즈리 도서관'이다.
이곳에는 도서관의 대표이자
특별보호사서관인 와루츠씨가 있다.
그녀의 아버지가 소장했던 많은 장서들로 꾸려진
도서관을 운영하는 그녀는
책에 대한 사랑과 애정, 그리고 사서로써
도서관을 방문한 손님들을 마주하는 마음까지 헤아리며
늘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요즘 누가 종이책을 읽어?'
'책을 넘기며 읽고 책을 통해 맡는 나무의 냄새가
낯설고 어색할 정도'인 세상에서
여전히 책을 사랑하고 책을 읽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책을 추천해 주고 도서관을 관리하며
그들의 고민까지도 들어주는 사서라니!
책을 전혀 읽지 않았던 등장인물이
최악의 하루를 맞이하고 어떤 사건으로
우연히 방문하며 알게 된 이곳에서 만난
와루츠 씨는 기꺼이 도움을 주고 책을 추천해 주며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
힘든 날에도 기쁜 날에도 책을 읽으며
위로를 받고 기쁨을 나누는 사람들처럼
우직하게 그 자리를 지키는 책은
기록이라는 역할에 시간이라는 가치까지 더해져
더욱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었다.
전자책이 익숙해져가는 요즘,
국내 성인 10명 가운데 6명이
지난해 1년간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고 한다.
연간 독서율은 점점 떨어지고 있고,
영상 콘텐츠 이용 비중의 상대적 증가,
스마트폰 등을 통한 정보 습득 경로의 다양화,
난독 인구 증가와 집중력 부족 현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일하느라 바빠서, 시간이 부족해서'라는 이유로
책을 이만큼 멀리하고 있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사실은 참 출판시장을 떠나 정서적인 측면이나
문해력 측면에서도 먹구름이 끼고 있는 것 같다.
전자책으로 읽을 수 있다고는 하지만
종이책만이 주는 의미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넘기며 활자를 하나씩 읽어가며
상상하며 읽는 이야기가 내 마음속에서
영상처럼 펼쳐지는 과정은 그 어떤 화려한
영상보다도 자극적이고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직접 겪어본 이들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고 내용을 이해하면서 상상하고 머릿속으로
장면을 그리고 다시 또 생각하고,
그 생각들을 이야기하다 보면 커지는 즐거움을
요즘은 다들 놓치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시간의 변화에 따른 공상의 이야기가 아닌,
다가올 미래의 이야기일 수도 있어서
더욱 현실감 있게 다가왔던 이 소설.
책의 가치, 책만이 가지는 고유함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책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책만이 주는 그 가르침을 무엇일까?
왜 책을 읽어야 할지,
쇠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책을 읽고 있는지
그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도서관에서 벌어지는 사람들에 대한 단편적인
이야기라 선입견이 있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다른 차원의 이야기로
'읽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이야기라서
더욱 좋았던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