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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들의 땅
천쓰홍 지음, 김태성 옮김 / 민음사 / 2023년 12월
평점 :
타이완, 대만 하면 여행으로 다녀온 기억이 먼저 난다.
수도인 타이베이에서의 축축한 냄새와 가득한 습도,
어디서도 조금만 걸어나가면 볼 수 있는 사당들,
향을 피우고 기도를 하며 점치는 것이 익숙한 풍경.
깔끔한 대중교통이나 시끌벅적한 야시장,
관광객에게 친절한 사람들까지 한꺼번에 떠오르며
중국과는 또 다른 느낌은,
오랜시간 침략당하고 식민지로 보내온 시간들 때문인가
어딘가 우리나라와 비슷한 기분을 들게 했다.
타이완 젊은 거장이라 불리는 천쓰홍의 장편소설인
《귀신들의 땅》은 2020년 타이완 양대 문학상인
금장상 문학도서부문상과 금전상 연도백만대상
수상작으로, 전세계 12개 언어로 번역출간 된
베스트셀러 이다.
대만 작가의 작품은 처음인데다가 소설의 장마다
화자가 바뀌고 어려운 이름들에 처음에는 수시로
앞을 넘겨가며 읽곤 했는데 촘촘하게 깔아둔
작가의 설계 덕분인지 마지막에 가서는 소설의 조각들이
완전한 퍼즐로 완성되는 후련함을 느낄 수 있었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소설의 경우 내용에 좀 더 몰입하기 위해
읽기 전 작가 개인에 대한 정보나 인터뷰,
소설에 대한 내용을 절대 찾아보지 않는 게 나의 원칙)
자신의 성과 같은, 또 자신의 고향인 용징을 배경으로
많은 누나들과 형, 막내아들인 주인공의 모습이
가족 구성원의 이야기를 시대상으로 그려내는 점이
굉장히 인상적이면서도 긴 호흡으로 읽게 되었다.
디아스포라 문학으로 또 애플TV에서 영상화되어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가
소설 속 3대의 가족이야기를 바탕으로 시대를 마주한
나라 전체의 시선을 그려낸 것 처럼
귀신들의 땅은 천씨 가족들과 그들이 사는 용징의
몇 안되는 주변 사람들만이 언급되기는 하지만
큰 그림은 뼈 아프고 시린 타이완 현대사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맥락 같았다.
특히나 동지문학 작품으로도 주목을 받은 이 작품은
여성, 소수자들에게 가해지는 폭력, 차별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그들에게 힘을 내라는 작가의 목소리를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들을 낳는 것이 목표인 '남아선호사상' 사회에서
내리 딸만 다섯을 낳고 그제서야 아들을 둘 낳은 엄마는
같은 여성이지만 자신이 받아온 고생이나 고통을
딸들에게 또 다른 아픔을 가하는 모습이 낯설지가 않아
더욱 쓰리게 느껴졌다.
여성이라서, 소수자라서 받는 차별들은 현대의 지금도
사실 크게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다섯명의 누나들의 인생을 주인공인 천톈홍의 시선에서
관찰하듯 전해지는데, 힘들게 살아가는 그녀들의
인생이 과연 행복에 가까운가?라는 질문을
수시로 하곤했다. 특이하게도 죽어버린 아버지와
다섯째 누나역시 '귀신'의 형태로 소설 속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1인칭으로 내는 것이 굉장히 독특했다
귀신 하면 '한'이 서려 있는 우리네와 다르게
그들의 귀신은 죽음 이후에도 떠나지 않고
곁에 머무르는 모습으로 보여지는 점 또한 그랬다.
작가는 평범하기만 한줄 알았던 자신의 가족구성원이
특별함임을 새삼스럽게 느끼며 자신의 이야기를
가족들의 이야기를 씨앗삼아 소설의 기초를 삼는다.
일찌감치 쓰다가 미뤄놓았던 소설을 오랜시간이 지나고
비로소 완성했다는 이 이야기는 그 시간만큼 숙성한
그의 인생의 깊이와 이해에서 오는 울림이 느껴졌다.
오컬트문학 같은 느낌으로 생각했던 소설은
가슴아픈 역사를 품은 가족들의 이야기였다.
긴 호흡으로 읽었지만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았던,
각 등장인물들의 모습에도 각 애정이 갔던
그런 소설이었다.
소설을 통해 잘 알지 못했던 타이완 문학에 대해
관심이 생기게 될 것 같다.
"이 글은 민음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