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제가 뭘 하면 되나요? - 개정판
윤성화 지음 / 아웃오브박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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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신앙서적보다 은혜롭고,
어떤 자기계발서보다 실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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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치 걸 - ‘성경적 여성’을 형성한 역사 속 결정적 장면들
베스 앨리슨 바 지음, 이민희 옮김 / IVP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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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성안수가 비성경적이라고 하는 걸까?’ ‘부부가 같이 사역하는 게 가능한가?’ ‘신학생이 인용하는 저 말씀이 저 맥락에서 실제로 하는 말이 맞나?’ ‘여성학이 신학에 위반되나?’ 이전부터 가져왔던 질문들이고 지금도 부딪치는 질문이다. 여성학 수업을 듣는데 신학생들이 구조와 기능을 왜곡한다고 화내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유명한 복음주의 목사들이 가부장제가 성경적이라고 이야기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간간히 생각했던 것들이 틀린 생각이 아니라는 것과 내가 지금까지 페미니즘에 관해 읽어왔던 독서 여정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하는 이 책에서 하는 이야기는 어찌 보면 하나의 회개에 가까운 이야기이자, 이제껏 자기가 해왔던 침묵에 대한 참회다. 하지만 이 침묵은 자발적으로 침묵한 것이기보다 온화한 목소리로 강요받은 침묵이다. 이 강요받은 침묵은 또다른 죄를 만들어왔다. 최근에도 또 그루밍 성범죄의 소식이 들려온다. 언제 한 번 다른 책에서도 접했던 이야기를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해본다. 가부장제가 어쩌면 타락의 산물이 아닐까라는 이야기가 말이다. 이 책을 읽는 가운데 내가 자각했듯 각자의 자리에 선 그리스도인들도 다시 자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 여전히 들려오는 가부장제의 목소리를 향해 예수의 복음을 제시하며,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듯, 그리스도가 여성을 대하듯, 남자와 여자가 모두 그리스도의 형상이라고 하는 성경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며 함께 설 수 있길 바란다. 어쩌면 오늘날 교계의 그루밍 성범죄와 여성 폭력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은 그 복음으로 돌아가서, 그 이야기로 돌아가서 함께 서서 걸어가는 법을 배워가는 것이지 않을까? 우리가 세상과 다름을 보여주고 싶다면 예수의 여성에 대한 태도에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각자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목소리를 내는 법을 배우며 예수님이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실제로 구현하고 보여줌으로 세상의 가부장제와 예수의 말은 달랐음을 되새기고 살아낼 수 있길 바랍니다.

바울이 우리에게 일꺠워 준 말, 곧 우리의 모든 일이 중요하고 우리가 부름받은 일을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을 함께 세운다는 사실은 타당하다. 만일 우리가 권력과 권위에 대한 논쟁으로 분열되는 대신에 예수님에 대한 믿음으로 마침내 함께 서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 P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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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 시민을 위한 정치이야기
박상훈 지음 / 이음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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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삶을 아름답게 하고 사람의 불가능성 가운데서 정의를 실천하고자 애쓰는 것이다.
그것은 삶에서 비롯되기에 말도 그렇게 끌어오를 수 밖에 없다.
이룰 수 있을지 모르나 시도하는 그런 정치, 옳음보다 아름다움, 편가르기보다 소통,
그럴 때 정치는 정치답다. 얇지만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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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자 막시무스의 사랑에 대한 400가지 교훈 KIATS 기독교 영성 선집 21
고백자 막시무스 지음, 김진우 옮김, 김재현 감수 / KIATS(키아츠)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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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자 막시무스라는 이름, 고백자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봤습니다. 그리고 사랑에 대한 400가지 교훈이라는 말은 이 책이 어떤 책인지 흥미를 가지게 했습니다. 그리고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어 책을 받은지는 꽤 지났지만 느낀 바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이 책은 400가지의 교훈을 마치 잠언집처럼 제시하듯이 쭈욱 늘어놓습니다. 처음 읽는 사람들은 어려운 이야기라고 느낄 수 있는 용어들도 존재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저자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해설서와 연구가 나타나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집니다. 하지만, 그것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 잠언집을 읽으면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 잠언집을 읽다보면 우리는 하나님, 이웃, 사랑이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제시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막시무스는 지속적으로 이 세 단어를 엮어서 잠언을 제시합니다.
『'하나님을 본받아 구제하는 사람은 사람들의 육신에 필요한 것을 공급할 때, 악한 사람과 덕스러운 사람, 공평한 사람과 불공평한 사람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그는 성실한 의도 때문에 나쁜 사람보다는 덕스러운 사람을 더 좋아하지만, 모든 사람은 각자의 필요에 따라 공평하게 구제합니다.' (14쪽)』
-> 막시무스는 구제를 먼저 하나님을 본받아 행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합니다. 육신에 필요한 것을 공급할 때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모든 사람은 각자의 필요에 따라 공평하게 구제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진정한 형제 사랑은 재물을 나누는 것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바울이 이야기했던 게 생각납니다. 손대접하기 위해 힘쓰라는 그 말은 우리가 하나님을 본받아 행한다라는 것을 어떤 것으로 볼 수 있는지 짚어볼 수 있게 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번 언급했듯이, 하나님은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어떤 다른 목적을 위한 것인지를 보시기 위해 우리의 동기를 살피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인기를 얻기 위해 선을 행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모든 일을 할 수 있도록, 시선을 항상 그분께 고정하고 그분을 우리의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런 행위에 따르는 모든 수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급을 잃게 될 것입니다.' (96-97쪽)』
-> 선의의 행동을 누구나 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 중요한 것은 의도와 목적이라고 막시무스는 이야기합니다. 저도 이에 또한 공감합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지향점으로 가지느냐에 따라 우리는 하나님을 섬길 수도 있고, 우상을 섬길 수도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제임스 스미스라는 문화적 예전을 이야기한 신학자는 우리의 삶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우리의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는 무의식 가운데 무언가를 예배하며 살아간다고 그는 이를 표현했습니다. 이 주장에 비추어 생각해볼 때 우리가 교회에서 모이는 것과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삶은 우리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 목적이 어떠하냐에 따라 우리는 다른 열매를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궁극적 관심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했던 틸리히의 말을 다시금 곱씹어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어떤 말처럼 하나님을 알고 세상을 잃었다면 의미가 있지만, 하나님을 모르고 세상만 알았다면 의미가 없다는 말과 같이 말입니다.
『하나님만이 본성적으로 선하시며 (마태복음 19:17 참조), 하나님을 본받는 사람만이 그 뜻과 목적이 선합니다. 악한 자들을 본성적으로 선하신 분과 연합시킴을 통해 그들 역시 선하게 되는 것이 그런 사람의 의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그들에게 모욕을 당하면서도 축복합니다. 또한 박해를 받으면서도 참고, 비방을 받으면서도 권면하며 (고린도전서 4:12-13 참조), 죽임을 당하면서도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런 사람이 사랑의 목적에서 어긋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이유는, 바로 사랑이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145쪽)』
-> 이 말을 보면서 많은 성인들이 생각납니다. 십자군 전쟁의 광기 가운데서 사랑으로 술탄을 설득하려 했던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십자군 정신이 아닌 십자가 정신으로 이슬람인들과 함께 살며 그들을 전도하려다가 죽음을 맞이한 레이먼드 룰, 최근에 부흥의 물결이 찾아온 애즈베리 대학교 출신이자 마하트마 간디의 친구로써 아둘람 공동체를 이루고 평생을 그리스도를 위해 살았던 스탠리 존스 선교사, 그리고 나환자들을 목숨다해 사랑하며 두 아들을 죽인 공산청년을 양자 삼은 손양원 목사... 그들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현존이라는 것이 어떠한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이는 그들의 삶의 열매가 그들의 삶을 말하고 있기에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랑의 목적으로 행한다면 사람들이 알겠지만, 사랑의 목적으로 행하지 않는다면 사람들도 그 사랑보다 우리의 탐욕을 볼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주춧돌을 지은 사람과 같다라는 산상수훈의 말은 그런 의미와 같이 엮어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그리스도를 위해 산다는 것과, 사랑을 위해 산다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님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봅니다.
'막시무스는 자신의 고백과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신학적 신념을 고백한 막시무스의 혀는 내어 잘라 내어졌고, 자신의 주장을 철회한다는 동의서에 서명하지 않는 그의 오른팔 역시 잘렸다. 그리고 머지않아 유배지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막시무스는 기독교 세계에서 고백자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고, 그의 신학적 주장은 680년에 열린 제6차 에큐메니칼 회의에서 중요한 초석이 되었다. 오늘날 기독교의 보편적인 신조와 고백이 형성되는 과정에 전개된 치열한 논쟁과 투쟁이 막시무스 같은 수 많은 죽음을 만들어냈고, 시대의 영웅과 성인들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154쪽)
-> 이 말을 한 사람의 최후에 대해서 에필로그에서 접했을 때는 사실 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격동 가운데서 막시무스는 자신의 삶을 고집했고 그 삶을 죽음으로 응답했다는 것입니다. 그 고백자라는 말은 죽었으나 믿음으로써 말한다는 히브리서의 구절을 생각하게 합니다. 요한복음의 밀알에 대해서도 생각이 납니다. 죽음으로써 많은 열매를 낳는다는 말처럼, 막시무스의 죽음은 영웅과 성인들을 만들어내기도 했다는 말과 연결지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최근 '나는 신이다'라는 넷플릭스 다큐의 개방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단과 사이비에 대해, 또 종교의 민낯에 대해 충격을 받고 있습니다. 더불어 '더 글로리'라는 드라마의 결말 가운데 기독교적 의미를 해석하고자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우리는 종교의 의미가 무엇인가, 또 우리가 믿는 신앙의 의미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제고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에 이와 같은 영성 고전을 짚어보고 읽어보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신앙의 제고를 도와준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결국 그 행함으로, 열매로 판단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과 그리스도를 닮은 삶은 결국 하나님을 위해, 이웃을 위해,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행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우리에게 말하는듯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믿는 바와 고백하는 바는 우리의 삶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비춰질 것입니다. 영생을 누리며 산다는 말도 그렇게 해석되고 이해될 것입니다.
그 고전 영성의 '지혜'를 우리가 마음에 담으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이 광기의 시대와 폭력의 시대 가운데 지혜는 행하는 자들로 말미암아 칭찬을 받으리라는 그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가 곱씹어보는데 이 책이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책을 제공해주신 키아츠 출판사에 감사드리며, 마지막 에필로그에 나오는 한 구절로 서평을 마칩니다.
『우리의 사랑이 우리 자신을 떠나 하나님과 이웃을 향할 때 우리에게 소망이 있다. 특히 이웃과 타인에 대한 사랑은 동등하게 사랑할 것을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그리고 그런 소망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것과 정욕을 극복하고 덕을 쌓는 실천을 통해 이룰 수 있다. 바로 그럴 때, 사랑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위격으로 인간의 본성과 육신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신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고 그분을 통해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삶에 참여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과 연합하는 궁극적인 영원한 존재(eternal-being)가 될 수 있다. 159쪽 』

‘하나님을 본받아 구제하는 사람은 사람들의 육신에 필요한 것을 공급할 때, 악한 사람과 덕스러운 사람, 공평한 사람과 불공평한 사람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그는 성실한 의도 때문에 나쁜 사람보다는 덕스러운 사람을 더 좋아하지만, 모든 사람은 각자의 필요에 따라 공평하게 구제합니다.‘ - P14

여러 번 언급했듯이, 하나님은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어떤 다른 목적을 위한 것인지를 보시기 위해 우리의 동기를 살피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인기를 얻기 위해 선을 행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모든 일을 할 수 있도록, 시선을 항상 그분께 고정하고 그분을 우리의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런 행위에 따르는 모든 수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급을 잃게 될 것입니다.‘ - P96

하나님만이 본성적으로 선하시며 (마태복음 19:17 참조), 하나님을 본받는 사람만이 그 뜻과 목적이 선합니다. 악한 자들을 본성적으로 선하신 분과 연합시킴을 통해 그들 역시 선하게 되는 것이 그런 사람의 의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그들에게 모욕을 당하면서도 축복합니다. 또한 박해를 받으면서도 참고, 비방을 받으면서도 권면하며 (고린도전서 4:12-13 참조), 죽임을 당하면서도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런 사람이 사랑의 목적에서 어긋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이유는, 바로 사랑이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 P145

막시무스는 자신의 고백과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신학적 신념을 고백한 막시무스의 혀는 내어 잘라 내어졌고, 자신의 주장을 철회한다는 동의서에 서명하지 않는 그의 오른팔 역시 잘렸다. 그리고 머지않아 유배지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막시무스는 기독교 세계에서 고백자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고, 그의 신학적 주장은 680년에 열린 제6차 에큐메니칼 회의에서 중요한 초석이 되었다. 오늘날 기독교의 보편적인 신조와 고백이 형성되는 과정에 전개된 치열한 논쟁과 투쟁이 막시무스 같은 수 많은 죽음을 만들어냈고, 시대의 영웅과 성인들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 P154

우리의 사랑이 우리 자신을 떠나 하나님과 이웃을 향할 때 우리에게 소망이 있다. 특히 이웃과 타인에 대한 사랑은 동등하게 사랑할 것을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그리고 그런 소망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것과 정욕을 극복하고 덕을 쌓는 실천을 통해 이룰 수 있다. 바로 그럴 때, 사랑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위격으로 인간의 본성과 육신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신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고 그분을 통해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삶에 참여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과 연합하는 궁극적인 영원한 존재(eternal-being)가 될 수 있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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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한 열망 KIATS 기독교 영성 선집 20
필립 야콥 슈페너 지음, 김진우 옮김, 김재현 감수 / KIATS(키아츠)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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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냉소와 실망과 아픔을 씻으시고 새롭게 고치실 성령님의 은혜와 부흥의 역사를 소망합니다. 많이 해졌지만 고치고 싸매는 주님의 손길과 그 주님의 손길로 꿋꿋이 교회를 세워가는 목회자들을 기억합니다. 각자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성도들을 생각합니다.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저의 냉소적인 마음에 경건한 열망을 떠올리게 해준 출판사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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