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유배지에서 만난 하나님 - 혼돈의 시대를 건너온 한 신학자의 비망록
김기현 지음 / 복있는사람 / 2026년 9월
평점 :

#도서협찬
사람마다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옵니다. 때로는 내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서, 때로는 익숙했던 자리를 벗어나 낯선 현실과 마주하면서 그 전환점을 경험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전환기와 과도기 속에서 미처 알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세상을 마주하기도 합니다.
김기현 목사님이 말하는 '유배지' 또한 그러한 자리와 맞닿아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물론 유배란 단순히 새로운 환경으로 옮겨가는 경험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익숙한 자리에서 밀려나거나 스스로 주변부에 서기를 선택하면서,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현실과 하나님을 새롭게 발견하는 경험이기도 할 것입니다. 자리가 바뀌면 시야가 달라지고, 시야가 달라지면 우리가 믿고 살아온 것들 또한 새롭게 보이기 마련이니 말입니다.
저자는 예배당 안에서 익숙하게 고백해온 하나님만이 아니라, 삶의 가장자리에서 새롭게 만났던 하나님에 관해 증언합니다. 어쩌면 가장자리에 서 있었기에 비로소 볼 수 있었던 하나님의 모습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독자에게도 질문을 건넵니다. 하나님 앞에 선 당신은 누구이며, 당신은 어떤 이야기를 품고 살아왔느냐고 말입니다. 이제는 우리 각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야 할 차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질문 앞에서 저 역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제가 걸어온 길과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을 되짚어보고자 합니다. 책에서 만난 몇 가지 주제를 따라 저의 신앙과 삶을 돌아보려 합니다.
1. 아바의 발견 — 삶의 요람으로서의 신앙
"아버지가 됨으로써만 아버지 부재를 넘어서는 것이 아니다. 나는 먼저 아들이 되어야 했다. 아바의 아들이 되어야 했다. 아버지가 되는 일은 그다음이었다. 아바의 사랑을 받은 아들이, 그 사랑을 닮아 아버지가 되는 것이 순서에 맞았다." (40쪽)
"나는 고아가 아니다, 나는 아바의 자녀다." (41쪽)
책을 읽으며 인생은 무언가를 새롭게 발견하는 순간부터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자가 하늘의 아바를 발견하고, 먼저 사랑받는 아들이 된 후에야 누군가를 사랑하는 아버지로 살아가는 길을 배워갔듯이 말입니다.
돌아보면 제게 하나님은 한때 엄격하고, 끊임없이 만족시켜야 하는 분처럼 느껴졌습니다.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잘해야 하고, 가능한 한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만큼 신앙은 사랑받는 관계라기보다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과제처럼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제가 품고 있던 하나님의 모습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었는지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다시 읽고, 신앙을 되짚어보는 가운데 그 모습을 교정해 나갔습니다. 그러면서 새롭게 발견한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가 되어주시고, 우리의 눈물 곁에서 함께 우시는 분이었습니다.
저자가 발견한 아바의 하나님이 제게도 낯설지 않게 다가왔던 이유입니다.
인생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기꺼이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분이 계신다는 사실은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먼저 사랑받는 자녀이기에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어쩌면 신앙의 성숙이란 더 많은 것을 증명해내는 과정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사랑을 새롭게 발견하고 그 사랑 안에서 자신을 다시 이해하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돌아보면 저 역시 그분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었기에 인생의 여러 굴곡을 지나올 수 있었습니다. 제가 걸어온 길의 시작에는 언제나 저보다 먼저 찾아오신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음을 다시 생각해봅니다.
2. 예수의 발견 — 폭력과 정당화의 담장을 넘어서는 신앙
"신앙이 사랑을 잃을 때 확신은 쉽게 폭력이 된다." (33쪽)
"복음은 믿는 사람들끼리만 통하는 내부 언어가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 앞에서도 정직하게 버틸 수 있는 진리여야 한다." (38쪽)
"교회는 고통 가운데 몸부림치는 이 세상을 외면하고 저 세상의 이야기만 주야장천 반복했다." (49쪽)
제 신앙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던 사건을 꼽는다면 고등학교 시절 마주한 세월호 참사와, 아는 형님이 건네주었던 디트리히 본회퍼의 『나를 따르라』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제게 신앙이 현실의 고통 앞에서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묻게 했습니다. 그리고 본회퍼의 책은 예수를 따른다는 것이 단순히 올바른 교리를 고백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삶으로 감당해야 하는 부르심임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교회와 사회의 관계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가 세상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교회를 떠나려는 사람들과 신앙에 회의를 품은 사람들에게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건넬 수 있는지 질문했습니다. 나아가 그 질문들 앞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고민했습니다.
저자가 교회와 사회 사이에서 자신의 신앙을 해명할 언어를 찾아갔듯이, 저 또한 신학을 통해 제 삶과 세상을 이해하고 해명하고 싶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예수께서 교회의 주인이시며 평화의 왕이시라는 고백은 단순한 신앙의 명제가 아니라 제 삶의 방향을 묻는 질문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분을 따른다고 고백한다면, 나의 삶 또한 그분이 걸어가신 길을 닮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저는 최근 신앙의 확신을 가지면서도 때로는 머뭇거리며 걷는 신앙에 대해 생각합니다. 내가 옳다고 믿는 확신이 누군가를 억누르는 폭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배제하고, 정의라는 이름으로 타인을 정죄하며, 진리를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사랑을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발견한 예수와 하나님 나라는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예배당 안에만 머무르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고통받는 이웃의 삶과 세상의 한복판에서 끊임없이 우리를 부르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신앙의 순수함을 갈망했습니다. 우리가 만들어낸 정당화와 폭력의 언어를 걷어내고, 예수께서 보여주신 사랑과 하나님 나라의 본래 모습을 더욱 분명하게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참사와 재난 앞에서 교회가 보여준 모습, 신앙의 이름으로 정당화되어 온 배제와 폭력은 여전히 제게 질문을 남깁니다. 그 질문들 앞에서 제가 발견한 것은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길이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길은 좁고 때로는 불편하지만, 예수를 따른다고 고백하는 사람이라면 외면할 수 없는 길입니다.
신앙의 확신은 누군가를 향한 폭력이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고 이웃을 사랑하는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해봅니다.
3. 또 다른 곳에서의 발걸음 — 알 수 없으나 알아가게 될 길을 따라
"세계관은 그저 관망하고 관조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체가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관찰하며 관여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 세계관은 '눈으로 보기'에서 '몸으로 살기'로 확장하고 심화해야 한다." (52-53쪽)
"세계관은 세상을 보는 눈이기 전에 세상 한복판에서 예수를 따라 사는 몸이다." (62쪽)
"정의 없는 평화는 공허하고 평화 없는 정의는 맹목적이다." (79쪽)
책을 읽으며 문득 지금 제가 서 있는 자리가 제게는 또 하나의 유배지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머리로 이해하고 말로 설명해왔던 신앙의 언어들을 이제는 삶의 현장에서 직접 마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옳은지 말하는 것과 그 옳음을 현실에서 실천하는 것은 분명 다른 일이었습니다.
생각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것들이 있었습니다. 실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갈등과 상처를 마주하며, 쉽게 해결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과정은 제가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들을 다시 돌아보게 했습니다.
저자는 세계관이 단순히 세상을 해석하는 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삶을 살아내는 몸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문장이 유독 마음에 남았습니다. 저 역시 그동안 교회가 어떠해야 하는지, 신앙이 사회 속에서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지 여러 차례 질문해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질문들을 실제 삶의 자리에서 마주하며, 제가 믿고 말해왔던 것들을 어떻게 살아낼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말로만 고백하던 신앙이 몸으로 부딪치며 배우는 신앙이 되는, 그 과정이 언제나 분명하거나 아름답지만은 않습니다. 때로는 확신했던 것이 흔들리고, 기대했던 현실과 다른 모습을 마주하기도 합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앞으로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알 수 없어 머뭇거리는 순간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러한 시간 또한 신앙이 삶이 되어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지금 걷고 있는 길은 아직 다 알 수 없는 길입니다. 그러나 걸어가면서 조금씩 알아가게 될 길이기도 합니다. 머리로 이해한 것이 몸에 새겨지고, 익숙한 언어들이 현실 앞에서 깎이고 다듬어지는 길입니다.
그래서 지금 제가 서 있는 이 자리를 단순히 지나가야 할 과도기로만 생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 자리 또한 제가 새롭게 배우고 발견해야 할 것들이 있는 곳이며, 하나님을 다시 만나는 자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가 유배지에서 자신의 신앙을 새롭게 발견했듯이, 저 또한 지금의 자리에서 제가 믿어온 신앙의 의미를 다시 배워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4. 나의 길, 우리의 길, 그분의 길을 따라
"주님이 부르심 가운데 내게 말씀하신 좁은 길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써 인간을 사랑하는 길이었다. 문제는 그 길을 어떤 방식으로 걸을 것인가에 있었다." (76쪽)
"진정한 용서와 화해는 타인의 죄를 면하여 주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오히려 타인의 죄가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 나 역시 그 죄가 자라난 세계와 관계와 구조에 어떤 방식으로든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직면하는 데서 시작된다." (82쪽)
"나는 그러한 희망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그리고 신학에서 발견했다. 그것이 내가 신학대학원에 진학한 신학적 변명이자 해명(apologia)이다." (84쪽)
저자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신앙의 언어로 해명해가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저 자신의 삶도 돌아보게 했습니다.
어쩌면 회고란 단순히 지나온 시간을 정리하는 일이 아닐 것입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살펴보고,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을 다시 묻는 일일 것입니다.
돌아보면 제가 지금 걷고 있는 길도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운 분으로 여겼던 시간, 그분의 사랑을 새롭게 발견했던 경험, 세상의 고통 앞에서 신앙의 의미를 질문했던 순간들이 하나씩 쌓여 지금의 저를 이루었습니다.
그렇기에 지금의 자리 또한 마지막 목적지가 아니라 또 다른 여정의 한 부분일 것입니다.
무엇보다 책을 읽으며 마음에 남았던 것은 참된 화해를 향한 저자의 성찰이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잘못과 교회의 모순을 비판하면서도 때로는 그 문제로부터 자신을 쉽게 분리하려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화해와 변화는 내가 비판하는 현실에 나 역시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돌아보는 데서 시작될 것입니다.
교회의 잘못을 이야기하는 저 역시 교회의 구성원이며, 세상의 부조리를 비판하는 저 또한 그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만큼이나 그 현실 속에서 제가 어떤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지 묻는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걸어가야 할 제자도의 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신의 신앙을 끊임없이 성찰하면서도 세상의 고통으로부터 물러서지 않는 길, 정의를 말하면서도 사랑을 잃지 않는 길, 평화를 추구하면서도 불의에 침묵하지 않는 길 말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어디로 나아가게 될지 모두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보다 앞서 걸어가신 그분을 따라 한 걸음씩 내디딜 뿐입니다.
그 길에서 우리는 자신의 생각과 이해를 넘어서는 하나님을 만나고,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이웃과 세상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신앙은 머릿속의 관념을 넘어 삶의 언어가 되고, 마침내 우리가 걸어가는 길이 됩니다.
『유배지에서 만난 하나님』은 제게 그러한 길을 다시 돌아보게 한 책이었습니다.
제가 걸어온 길에 어떤 은혜가 있었는지,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하는지를 질문하게 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분들 또한 저마다의 삶을 되돌아보며 자신의 유배지에서 만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나온 길을 감사함으로 돌아보고, 아직 알 수 없는 앞날을 향해서도 걸음을 내디딜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때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은 시간을 지날지라도, 그 길에 함께하시는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우리를 안위하리라는 믿음을 품고 말입니다.
글을 마치며 떠오른 노래 가사를 생각해봅니다. 수없이 넘어지고 다른 이들과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걷더라도 주님이 가르쳐주신 길을 계속 걸어가겠다는 고백이 지금의 제 마음과 닮아 있습니다.
저 역시 계속 걸어가려 합니다. 제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며, 아직 알 수 없지만 그분이 가르쳐주신 길을 따라 한 걸음씩 나아가려 합니다. 그 길 끝에 맞아주실 주님을 기대하고 소망합니다. 또 길을 걷는 가운데 새롭게 알아가게 하실 것들을 기대하고 꿈꿉니다.
'나는 계속 걸어갑니다, 수 없이 넘어져도
사람들의 방향과는 조금 다르다 해도
내가 가는 길이 주가 가르쳐준 길이니,
이 곳은 바로 주님의 세계라'
#북서번트서평단3기 #김기현목사 #유배지에서만난하나님 #복있는사람 #하나님의세계
나는 그러한 희망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그리고 신학에서 발견했다. 그것이 내가 신학대학원에 진학한 신학적 변명이자 해명(apologia)이다. - P8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