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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한 평범 - 차별금지법이 꿈꾸는 세상
장혜영 지음 / 후마니타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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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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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 길을 내며 길을 걷다 - 35년 장애인복지 사회사업가의 직업 에세이
김선 지음 / (주)책글사람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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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맨만큼 인생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며 그 말에 이 의미를 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름다운 인생의 헤멤이 아름다움을 만든다라고 말입니다. 


과거 복지요결이라는 책을 실습 때 공부하면서 그런 구절을 본적이 있습니다. '사회사업은 당사자와 지역사회가 복지를 이루고 더불어 살게 돕는 일입니다' 이 책은 그 의미의 실전적인 이야기들을 전해줍니다.   


세상의 귀퉁이에서는 여전히 아름다운 흔적들이 존재합니다. 치열하게 살아내는 노래들이 존재합니다. 복지란 그런 흔적들을 발견하고 여전히 우리 사회가 살만한 곳임을 보여주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35년간 장애인복지의 길을 걸어온 저자의 이야기는 마음 한켠을 따뜻하게 합니다.


비록 처음에는 쉽지 않고 괴로운 길이기도 했지만, 그 길 가운데 화창한 꽃을 피워내는 것들은 최근 노래 한 자락을 생각나게 합니다. '기쁨 뒤에 슬픔이 오는 건 아름다운 마음이야 겁내지 말고 마주 앉아라 찬란한 그림이 된단다' 



이 책은 우리로 하여금 그 찬란한 그림을 마주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 찬란한 그림을 그려가는 삶을 응원할 뿐 아니라 우리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킵니다. 실제로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그런 마음이 가득가득 부풀어올랐습니다.


"나는 모든 당사자가 자신만의 색깔을 빛내며 살아가는 세상을 간절히 소망한다. 그들의 삶이 보통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삶이 되기를, 각자의 고유한 색깔로 세상과 어우러지기를 바란다. 장애는 틀림이 아닌 다름이고, 그 다름이 우리 모두를 더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 (27쪽)


저자는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세상을 볼 줄 알며, 다름으로 세상이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임을 생각해봅니다.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우리는 우리의 시각 또한 그런 아름다운 시각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진정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는 사회복지사의 모습을 저자를 통해 보게 되고, 서로가 더불어 살고자 노력하는 이야기들을 보며 이 땅에 이룩한 천국의 흔적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혐오가 아닌 존엄을 생각하고, 차가운 세상 가운데 따뜻함을 선택하는 저자의 이야기가 이 책을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얼고 어두운 마음도 밝게 비추고 녹이는 따뜻한 등불이 되기를, 더 많은 이들에게 그 불꽃이 전해지기를 바람으로 추천하며 책의 한 부분으로 글을 마칩니다.


"우리가 꿈꾸는 나눔세상은 단지 생존을 위한 울타리가 아니라, 삶의 기쁨을 함께 배우고 나누며 살아가는 과정의 연속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공동체는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진 불완전한 공간이 아니라, 일상을 나누며 살아 있는 관계망을 짓는 곳이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바로 그 관계 속에서 완성된다. 그렇게 쌓이는 관계가 내일을 지탱할 힘이 되었다." (85쪽)

"우리가 꿈꾸는 나눔세상은 단지 생존을 위한 울타리가 아니라, 삶의 기쁨을 함께 배우고 나누며 살아가는 과정의 연속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공동체는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진 불완전한 공간이 아니라, 일상을 나누며 살아 있는 관계망을 짓는 곳이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바로 그 관계 속에서 완성된다. 그렇게 쌓이는 관계가 내일을 지탱할 힘이 되었다."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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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어디로 가나? - 12.3 계엄 이후
권수경 외 지음 / 야다북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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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교회를 향한 죽비
‘죽비’라는 말이 있습니다. 수행자의 정신을 일깨우기 위해 사용하는 대나무 회초리입니다. 이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이 책이야말로 오늘의 한국교회를 향해 내리치는 죽비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개인적으로는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12·3 계엄이라는 전례 없는 사태를 두고 나타난 주류 교회의 소름 끼칠 만큼의 침묵, 아무런 반성 없이 그저 해오던 대로 행동하는 모습, 더 나아가 이전보다 노골적으로 정치적 입장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면서 코로나19 시기에 느꼈던 충격을 다시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사랑제일교회의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 당시, 김근주 교수님의 <특강 예레미야>를 읽으며 조국 교회의 현실을 바라보았던 기억도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교회는 그때보다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상처가 더욱 곪아 터진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
‘자각’과 ‘개혁’이라는 말조차 너무 멀게 느껴지는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개혁이 요원하다고 해서 우리가 길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이 책은 한국교회를 매섭게 비판하면서도, 우리가 다시 걸어가야 할 길을 제시합니다. 글을 통해 그 길을 조금 풀어보고자 합니다.
2.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
이 책을 관통하는 말씀은 요한계시록 2장 5절입니다. 어디에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다’는 이 말씀은 교회 부흥회에서 자주 인용됩니다.
그러나 회개를 외치는 부흥회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회개해야 하는지를 묻는 일입니다. 이 책은 바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합니다. 한국교회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의 잘못을 예리하게 짚어내면서, 앞으로 걸어가야 할 새로운 길을 제시합니다.
어쩌면 그것은 새로운 길이라기보다 우리가 처음부터 걸었어야 했던 오래된 길일지도 모릅니다. 저자들의 평가는 한결같이 매섭습니다. “귀 있는 자는 들으라”는 말씀이 떠오를 정도입니다.
특별히 이 책에서 기억에 남았던 부분은 오늘날 극우적 신앙의 뿌리가 된 기독교 민족주의와 ‘민족복음화’ 담론에 대한 비판, 그리고 권력에 무릎 꿇은 교회는 복음을 온전히 전할 수 없다는 지적이었습니다.
“민족 복음화의 열정은 당연히 귀한 것이다. 또 주님이 주시는 구원은 당연히 정치, 경제 등은 삶의 모든 분야를 포함한다. 하지만 세속 국가를 기독교화하려는 기독교적 민족주의는 국가와 민족을 혼동하는 일로서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다. 특히 기독교인 비중이 낮은 세속 민족을 구원 역사의 주역으로 파악하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대한 근본적인 오해다. 이는 후유증이 워낙 크기에, 민족 복음화의 열정을 드러내는 단순한 수사적 표현으로 보아 넘기기 어렵다.” — 22쪽, 「한국교회의 우상숭배: 권력, 재물, 이념」
“신앙 선배들의 잘잘못은 후대의 우리를 위한 지침이 되어야 한다. 김준곤과 박정희는 일종의 오월동주였다. 박정희는 독재 정치와 장기 집권의 방해 세력을 누르고 싶어 김준곤을 만났고, 김준곤은 손쉬운 전도 방법을 얻기 위해 박정희 권력의 도움을 받았다. 문제는 권력 가까이에서 도움을 받으며 종교인 역할을 바르게 했느냐 하는 것이다.”— 26쪽
3. 권력과 결탁한 ‘반쪽짜리 복음’
이 책이 제기하는 핵심 문제는 결국 복음입니다. 독재자의 제안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가 저지르는 전제 정치와 인권 탄압, 불공평과 약자 소외에 대해 침묵해야 합니다. 박정희 정권이 시도한 일들은 하나님의 공의에 어긋났고 사회적 불의와 불평등을 심화시켰으며, 그 피해를 약자들에게 집중시켰습니다.
반공주의 역시 남북한을 대화와 평화로 이끌기보다 대립과 반목을 키웠습니다. 그럼에도 복음의 구체적인 적용에서 반드시 다루어야 할 문제들을 외면한 채 복음을 전했으니, 그것은 결국 ‘반쪽짜리 복음’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제는 복음이었다. 독재자의 제안을 수용하자면 그 사람의 반성경적 정책, 이를테면 전제 정치, 인권탄압, 불공평, 약자 소외 등에 대해 침묵해야 한다. 박정희가 시도한 일은 하나님의 공의에 어긋나는 것이었고, 사회적 불의와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약자에게 더 큰 피해가 가게 하는 일이었다. 반공주의 역시 남북한을 대화와 평화로 이끌기보다 대립과 반목을 키웠다. 그것을 알면서도 복음의 구체적인 적용으로 중시해야 할 부분에 침묵하며 복음을 전했으니, 소위 반쪽짜리 복음이 될 수밖에 없었다.” 27쪽
“재물 숭배의 핵심은 누구의 이름을 부르느냐가 아니다.
누구의 가르침과 원리를 따르느냐는 것이다.” 33쪽
권력과 재물의 결탁에 수많은 교인이 앞장섰고, 많은 목회자가 강단에서 안정과 발전, 반공을 명분으로 강압적인 정치와 부당한 억압, 불평등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용인했습니다. 더 나아가 그러한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노력마저 ‘마귀의 일’로 정죄했습니다.
“이사야를 비롯한 여러 선지자의 외침에서 우리는 반쪽 복음에 대한 경고를 듣는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을 믿는 종교 행위는 하지만, 삶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지 않는 죄를 지적하는 말씀이다. 종교 행위에 몰두하면서도 정작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를 외면하는 오늘 우리는 성경에 따르면 소돔이고 고모라다.” 34-35쪽
“너희 손에 피가 가득하기 때문에 내가 너희의 기도를 듣지 않겠다”고 선포했던 이사야의 경고가 귀에 선합니다.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다”고 외쳤던 예레미야의 선포도 귀에 쟁쟁합니다.
더욱 슬픈 사실은 그 피 흘림이 오늘날에도 지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어가는데도 이를 진리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모습은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다가 함께 구덩이에 빠진다는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어쩌면 한국교회는 세상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복음을 내버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한국교회가 싫어하는 것은 유물론이 아니라 정치적 공산주의고, 결국 싫어하는 건 제도도 사상도 아닌, 그냥 가난이다. 다른 말로 하면 돈이 좋은 거다. 세상 풍요에 대한 사랑이다. (…) 교회와 세상이 뒤집힌 것 같다. 우리가 믿는 게 정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인지 잘 모르겠다.” 39쪽
4. 복음보다 앞서버린 이념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짚어보아야 할 부분은 이념이 복음보다 앞서고 있다는 현실입니다. 권력에 고개를 숙인 한국교회의 모습은 신사참배의 역사를 떠올리면 낯설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더욱 주목해야 할 지점은, 복음보다 앞세운 무언가로 인해 정작 복음 자체를 상실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매서운 질문입니다.
“거짓 정보를 심어주는 것 자체로도 큰 잘못이지만, 그걸 강단에서 외쳐 주님의 십자가 복음을 더럽히는 게 더 심각한 문제다. 극우 이념 때문에 복음이, 십자가 복음이 짓밟히고 있다. 근거도 없는 음모론이 복음과 같은 수준으로 대우받는다. 특정 정당이나 인물을 지지하는 일은 복음보다 중요한 사안이 되어버렸다. 우리 시대의 극우 이념은 정말 과거와 격을 달리하는 우상숭배다.” 43쪽
“권력에 고개를 숙이고 전한 복음이니 그 권력을 비판하거나 대항하는 대신, 성경 보고 기도하며 교회 출석하고 봉사하는 등 종교 생활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권력의 그늘에서 자란 기독교는 애초부터 사회에 등을 돌리는 게토의 성향을 내재적으로 품고 있었다.” 48쪽
과거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우상이 권력과 재물이었다면, 오늘날에는 이데올로기가 가장 강력한 우상이 된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 12·3 계엄 이후 대형교회의 영향력 있는 지도자들이 내놓은 발언은 그동안 가려져 있던 한국교회의 민낯을 드러냈습니다. 교회가 복음이 아니라 특정 이념에 장악된 것처럼 보일 정도였습니다.
낯선 것과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이웃을 잃어버렸습니다. 이웃의 범위를 자신과 동일한 이념에 동의하는 신자들로 제한해 버렸습니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은 좌파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을 진리처럼 제시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신앙의 대상으로 숭상하는 모습은, 과연 ‘카이사르의 기독교’와 무엇이 다른지 묻게 합니다.
우리가 이 심각한 현실에서 어떻게 길을 찾아야 할지는 여전히 막막합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욱 현실을 정확하게 응시해야 합니다. 저자가 말하듯, 교회의 진가는 그 수나 규모가 아니라 거룩함에 있기 때문입니다.
5. 우상을 깨뜨리고 처음 사랑으로 돌아가기
“우상은 박살을 내야 한다. (…) 교회는 유기체다. 유기체는 자기 보존 능력이 있다. 상처가 나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다. 자연 치유가 안 될 정도라면 엄청난 손상을 입은 거다. 그럴 때는 약도 쓰고 수술도 받아야 한다. 처음 사랑을 갖는 일을 교회에 적용한다면 자정 활동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교회가 자정 능력을 잃은 것 같은 지금, 최후의 발악이라도 해야 하지 않나 싶다. (…) 우리가 돌아갈 곳은 140년 전도 아니고, 500년 전도 아니고, 우리의 첫 사랑이 싹튼 하나님의 말씀이다!” 52-53쪽
이 대목을 읽으면서 옥한흠 목사가 평양대부흥 100주년 기념대회에서 전했던 설교가 떠올랐습니다. 잔치와도 같았던 그날, 그는 사데 교회를 향한 경고를 통해 겉으로는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죽어가는 한국교회의 현실을 직시했습니다. 대형교회 지도자였던 그가 먼저 무릎을 꿇고 회개를 선포했던 모습은 오늘날 한국교회가 돌아보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기도회는 잠실에서 열리는 대규모 기도회도,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기도회도 아닐 것입니다. 복음을 잃어버린 우리 자신이 다시 새로워지기 위한 기도회가 필요합니다. 이념을 수호하려다가 이웃을 잃어버린 오늘의 자화상을 직면하는 회개의 자리 말입니다.
이 책은 우리를 바로 그 자리로 불러냅니다.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말아 달라”고 간구했던 하박국의 심정으로, 이 백성이 하나님을 잊었을지라도 죄를 깨닫고 성전을 향해 기도할 때 그 기도를 들어 달라고 했던 솔로몬의 기도처럼 말입니다.
6. 비판을 넘어 회개와 개혁으로
진정한 개혁은 비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다시 세우는 행동이 되어야 합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본회퍼가 값싼 은혜를 비판하며 참된 제자도를 요청했듯이, 우리 역시 참된 복음이 무엇인지, 하나님 나라를 따른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숙고해야 합니다.
이 책을 읽고 함께 나누는 일이 회개의 시작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떨어졌는지를 역사를 통해 되짚고,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을 다시 찾아 나서야 합니다. 이 책이 한국교회 개혁의 시작을 알리고, 교회를 새롭게 하는 작은 마중물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그 마중물에 기여하고자 책을 이어 읽으며 글로 추가로 풀어내보고 싶습니다.
떠오른 말씀과 이전에 기록했던 명제로 글을 마칩니다.
“주님, 내가 주님의 명성을 듣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하신 일을 보고 놀랍니다.
주님의 일을 우리 시대에도
새롭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 시대에도 알려 주십시오.
진노하시더라도, 잊지 마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박국 3장 2절, 새번역
교회를 파괴하는 것은 좌파가 아니다.
교회를 파괴하는 것은 동성애가 아니다.
교회를 파괴하는 것은 공산주의가 아니다.
교회를 파괴하는 것은 반기독교적 세력이 아니다.
진정 교회를 파괴하는 것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양분하는 이데올로기 자체이며,
똑같은 죄인이면서도 자신이 더 의로운 척하는 위선이다.
사람이 죽어가는 비정한 사회를 외면하는 무심함이며,
자신의 신념을 강요하며 무례하게 발언하는 무지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을 혐오하는 것이며,
그 사람다움을 지키려는 인권운동을 ‘좌파적 운동’이라고 폄하하는 독선과 오만이다.
주인 되신 주님이 아니라 내 뜻에 맞춘 ‘나의 주님’을 믿는 불신앙이며,
예수께서 가르치신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채 자신의 의만 주장하며 살아가는 불순종이다.
교회를 파괴하는 것은 복음의 메시지를 훼방하는 모든 것이다. 복음이 복음 되지 못하게 하는 것이며, 변화를 두려워한 나머지 현실에 안주하기 위해 두려움을 만들어 내고 퍼뜨리는 것이다.


"우상은 박살을 내야 한다. (…) 교회는 유기체다. 유기체는 자기 보존 능력이 있다. 상처가 나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다. 자연 치유가 안 될 정도라면 엄청난 손상을 입은 거다. 그럴 때는 약도 쓰고 수술도 받아야 한다. 처음 사랑을 갖는 일을 교회에 적용한다면 자정 활동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교회가 자정 능력을 잃은 것 같은 지금, 최후의 발악이라도 해야 하지 않나 싶다. (…) 우리가 돌아갈 곳은 140년 전도 아니고, 500년 전도 아니고, 우리의 첫 사랑이 싹튼 하나님의 말씀이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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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선 너머
벤자민 마이어스 지음, 최리외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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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잔혹하면서도 어찌 이리 아름다운가라는 한강 소설가의 문장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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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선 너머
벤자민 마이어스 지음, 최리외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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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스 클럽으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책은 실제로 그 제목과 같이 내 영혼을 따뜻하게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풀어내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좋은 책의 기준이라는 것, 소설의 기준은 묘사가 상세하며 그 장면이 그려질 뿐 아니라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책은 저로 하여금 다시 한번 그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책은 한 사람의 삶이 다른 이들과 풍경으로 인해 어떻게 변화하게 되는지, 삶이란 잔혹하면서도 어찌이리 아름다운가라는 한강 소설가의 말을 생각하게 하는 내용입니다. 오늘날과 같이 전쟁과 혐오가 판치는 가운데에서 이 소설은 언 바닥을 깨어 봄을 알리는 전령사와 같은 내용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저자는 우리로 하여금 주인공을 통해 우리가 잊어왔던 것들의 의미, 삶을 아름답게 하는 것들을 생각나게 합니다.

태양빛이 흐릿한 풍경 위로 찬란하게 빛나는 원반처럼 내리쬐고 있었고, 문득 나는 인간이 붓을 들거나 시를 짓고 싶어하는 이유를 난생 처음 깨달았다. 그것은 숨이 턱 막히도록 예상치 못한 풍겨이 불러일으키는 이 현재성, 심장을 빨리 뛰게 하는 감각을 포착하려는 충동이었다. 예술은 바로 그 순간이라는 보석을 보존하려는 시도였다.

20쪽


예술이라는 것이 전쟁과 정해진 삶의 굴레를 맞이하는 주인공을 다른 삶으로 초대합니다. 최근에 나온 노래인 소문의 낙원을 생각나게 하는 부분입니다. 여행이라는 것을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됐던 경험이 저는 읽으면서 비쳐보였습니다. 바다에 대한 묘사를 보며 시 한 편이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삶을 아름답게 하는 것들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는듯 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무료하고 지친 가운데서 여전히 삶은 살아갈만하다고 말을 건넵니다. 그 삶을 아름답게 하는 의미를 각자의 삶을 통해 발견해나가기를 기대하며 옮긴이의 말 가운데 인상깊었던 부분으로 글을 마칩니다.

"이 소설은 그에 더해 우리가 점점 잊어가는, 여력이 없다는 이유로 주저하게 되는 우리 안의 본성을 일꺠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저항 정신으로서의 다정, 호의를 선선히 건네고 상처를 함께 보듬으며 애도하는 용기다.

맥스포터가 이 책에 건넨 찬사처럼, 전례 없는 분열과 갈등의 시대에 다정과 사랑이 가득한 작품을 쓰는 일은 실로 급진적인 행위다. 이야기가 유구하듯, 선뜻 손 내미는 마음과 산산조각 났다해도 순간을 오롯이 누리는 낭만 역시 과거의 전유물이 아니라 지금도 가능한 몸짓일 터다. 바로 그 장면들이 우리의 찰나를 구원한다.

그러니 이렇게 말해볼 수도 있겠다. 우연이 빚어내고, 경이로운 자연의 생명체들이 곁에 존재하며, 타인들과 만나 시절을 나누며 문학을 향유하는 삶이라는 이야기는, 당신이라는 다른 풍경 안에서 이미 진행 중이라고."

338-339쪽, 옮긴이의 말


태양빛이 흐릿한 풍경 위로 찬란하게 빛나는 원반처럼 내리쬐고 있었고, 문득 나는 인간이 붓을 들거나 시를 짓고 싶어하는 이유를 난생 처음 깨달았다. 그것은 숨이 턱 막히도록 예상치 못한 풍겨이 불러일으키는 이 현재성, 심장을 빨리 뛰게 하는 감각을 포착하려는 충동이었다. 예술은 바로 그 순간이라는 보석을 보존하려는 시도였다.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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