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나무와 유전자 이야기 - 나의 뿌리를 찾아서 상수리 호기심 도서관 4
로랑스 아방쉬르 아잔 지음, 뱅상 베르제에 그림, 김미겸 옮김 / 상수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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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버지는 장남에 장손이다. 그래서인지, 아님 책임감 때문이신지 제사를 지내는 날은 정말 몸으로 마음으로 정성을 들이신다. 지금이야 조금 줄였지만 그전에는 제사가 11개쯤 되었던 것 같다. 아버지나 어머니는 시누나 동서들의 조금의 도움이 없이 오로지 음식은 어머니의 손으로만 준비하신다.
다른 친척들은 그저 제사 준비가 끝나면 와서 절만 하고는 어머니가 싸주시는 음식을 들고 그냥 총총히 가신다. 때로는 그런 모습에 화가 날 듯도 하지만 부모님은 아직 그런 내색 한번 없이 정갈하시기만 하다. 때로는 너무 그러신다고 투정 아닌 투정도 부려보았지만 이내 내가 스스로 지고 만다. 그래도 변하시지 않을 분들이라는 걸 일찌감치 알았기 때문이다.
이제 내 나이도 이제 불혹을 몇 해 더 넘겼으니 그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명절을 빼고도 거의 한 달에 한 번은 제사를 지냈으니 지금이야 제사 때면 우리 형제들이 모여 손이 척척 맞아 그 많은 일들을 금방 해 내고 만다. 이것도 어려서부터 보고 배운 덕이라 생각 된다. 어려서부터 그 모습을 보고 자란 8살배기 조카도 제사 때면 으레 일을 거들곤 한다. 제법 절도 잘 한다. 대견하다. 역시 보고 배운 것에는 당할 수 없나보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는 조상을 잘 섬기는 것이 후손이 할 도리라고 말씀하셨다. 지극히 옳고 당연한 말씀이지만 너무 자주 말씀하시는 탓에 때론 성가실 때도 있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내가 아이들에게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뿌리 없는 후손이 어디 있냐 하시던 그 말씀에 공감도 하면서.

나는 이 족보에 대해 할 말 있다. 왜냐하면 우리 아버지가 이 족보를 다시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는지 조금은 알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족보를 찾아서 새로 만들기 위해 아주 오래전부터 애를 태우셨다. 족보를 찾아야 한다고, 시간 날 때면 사방으로 쫓아다니시던 그 모습에 우리는 아무런 도움도 되어드리지 않으면서 걱정만 했다. 아버지는 그게 가문에 꼭 있어야 할 것인데 없어졌다며 찾기 위해 꽤 오랫동안 노력하셨다.
그러나 어디 한 군데에도 반겨주는 이 없고, 또 친척 어른들 또한 요즘 같은 세상에 그게 무슨 대수냐며 시큰둥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족보를 가지고 오셨다. 아버지는 무슨 개선장군 마냥 웃으면서 당당하게 우리 앞에 펼쳐놓으셨다.
그게 참 이상했다. 그 족보에 눈에 익은 이름들이 서열 맞춰 있는 것을 보니 왠지 든든해지기도 했다.
아버지는 그게 그리 자랑스러우셨나보았다. 한참을 펼쳐놓고 앉아계셨다. 누가 보든 안보든.

돌이켜 생각해보니 내가 한 일이라곤 아무 도움 없이 혼자 그 많은 이름자들을 챙겨 놓고 찾아보며 끙끙거리는 모습이 하도 딱하여 워드작업으로 해 드린 것뿐이었다. 이 컴퓨터라는 것이 있어 잘못하면 지워서 새로 할 수도 있는 기능이 있다하니 된다니 족보를 다 만든 만큼이나 좋아하셨다. 그전에는 내가 컴퓨터로 글을 쓰는 것을 정말 못미더워하셨다. 그을ㄴ 원고지에 써야 맛이라던 분이 이제는 가끔 부탁도 하신다. 다 ‘족보’찾기에 조금 도움을 드렸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지금도 명절이나 제사 때면 어김없이 족보를 내어놓으신다. 그리고 뿌듯해하신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이게 우리가 알아야 할 뿌리라며 하셨던 말씀 또 하시고 그러신다.
이제는 그 모습조차 아름다워진다. 조상을 섬기고, 뿌리를 안다는 것인데 어디 세월 탓을 할 수 있을까?

가끔 생각해본다. 아버지의 아들인 오빠가, 그 아이들인 조카가 아버지의 뜻을 잘 이어받을 수 있을지. 아니 믿어본다. 보고 자랐으니 그만큼 할 거라고 믿어볼 수밖에.
이 책을 한 권 더 주문해서 조카를 보여줘야겠다. 조카는 이 책을 보고 분명 질문을 할 것이다. 아니 질문을 무수히 해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그 대답을 아버지께서 해 주신다면 더 좋을 듯하다. 아마도 귀찮으신 듯 그러시겠지만 속으로는 그러는 손자모습이 더 믿음직스러워질 것이다.
아버지는 지금도 종종 아버지의 서재 깊숙한 곳에 있는 아버지의 보물중의 하나인 족보를 꺼내 보곤 하신다.
난 아버지의 그런 모습이 이제는 싫지 않다. 그냥 옆에서 묵묵히 지켜봐 드린다. 왜일까? 나도 이제 만만치 않은 나이이기 때문에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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