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리 4부작 세트 - 전4권 나폴리 4부작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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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소설은 거의 읽어본 적이 없다. 돈 카밀로 시리즈 정도 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탈리아인이긴 하지만 국가 정체성은 자취조차 느낄 수 없는 움베르토 에코의 작품을 포함해도 몇 권 되지 않는다.

작가는 작품으로만 말한다는 신념 아래 자기 신분을 감추고 익명으로 글을 쓰며, 세계적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엘레나 페란테의 대표작 '나폴리 4부작'을 읽었다. 익숙하지 않은 지명과 낯선 이름들로 초반에는 진도가 나가는데 좀 힘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야기의 흡입력과 감정의 진솔함이 이런 어려움을 딛고 총 2,300페이지가 넘는 4권을 읽게 한 힘이었다.

간단하게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나폴리 외곽의 빈민가에서 자란 두 여인의 60년에 걸친 우정, 사랑, 배신 등을 다룬 이야기. 작가로 지식인으로 명성을 얻은 엘레나 그레코가 갑자기 사라진 친구 릴라를 그리워하며 그녀와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엘레나는 지적으로나 성적 매력으로나 평생 열등감을 느껴온 ...릴라를 향해 자신의 평생에 걸친 고통과 혼돈을 털어 놓는다.

이 소설은 두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른 주인공의 운명의 변화와 가치관의 충돌, 성장을 피해가지 않는다. 소설의 도입부인 2차 대전 직후부터 좌파와 우파의 극렬한 대립, 68운동, 페미니즘과 테러리즘의 영향, 80년대 이탈리아를 휩쓴 마니풀리테 운동을 거쳐 세계화의 한 가운데서 혼란이 극대화된 21세기 초까지 이탈리아 사회를 그대로 관통한다. 대하소설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다. 소설을 읽으며 이탈리아의 현대사를 따라가는 재미도 못지 않다.

자라면서 내게도 열등감을 안겨줬지만 온통 매력이 넘치던 친구들이 있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엘레나 역시 친구들 중에 유일하게 대학을 나오고, 책을 써서 유명한 작가가 돼 명문 집안의 아들과 결혼하는 등 주변 친구들에겐 범접할 수 없는 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에선 고향 친구들에 대한 우월감 못지 않게 뿌리 깊은 열등감이 자리 잡는다. 동네가 돌아가는 사정을 제대로 이해할 수도 없고, 사람들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법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리석게도 못 된 남자에 이끌려 가정을 박차고 나오지만 세 딸도 자란 뒤 결국 그녀를 떠나고 만다. 60년이 지나 그녀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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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기억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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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잊을 수 없고 헤어진 뒤에도 내 뒤 어딘가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을 것같아 내내 의식하고 그리워하는 연인을 사랑했던 시절을 되돌아 볼 때 기억과 마음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대학1학년인 19살의 폴은 고향집에 내려와 테니스클럽에 만난 29살 연상인 48살의 수전을 만나 이내 평생의 사랑에 빠져든다. 사랑하는 여인만 곁에 있다면 세상의 그 어느 것도 필요하지 않고 중요하지 않았던 폴은 순수한 사랑의 열정을 그녀에게 바친다. 역시나 대학생인 두 딸이 있지만 가끔씩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과 사는 중상류층 가정의 주부인 수전은 폴과 만난지 3년만에 집을 나온다.

...

소설은 수전과 폴이 사랑에 빠지게 되는 과정을 담은 1부, 런던에서 함께 10여년을 살아가는 2부, 어느덧 노년에 접어든 폴이 혼자서 둘의 사랑을 되돌아 보는 3부로 이뤄져 있다. 1부는 폴의 1인칭 시점으로, 2부는 작가가 폴을 지켜보는 2인칭 시점으로, 3부는 폴의 이야기를 그려가는 3인칭 시점이다.

이야기의 시점이 점차 객관화되고 시간이 흘러가면서 둘의 사랑에 대한 폴의 기억은 조금씩 변화해간다.

1부는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하며 수전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만 일관하던 폴의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하다. 사랑에 빠진 남자의 작은 모험과 연인을 기쁘게해주겠다는 일념으로 벌이는 온갖 행동들은 전형적인 연애소설처럼 읽힌다.

2부에서 폴은 수전이 마련한 돈으로 런던에 집을 구해 살게 되면서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법학과에 다니며 변호사를 준비한다. 마냥 행복할 것만 같았던 둘이었지만 어느새 수전은 술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알콜중독자가 되고 결국 알콜성 치매에 빠지게 된다. 폴은 그런 그녀와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려 애를 쓰지만 자신조차 잊어가는 수전을 견디지 못한다. 끝내 폴은 수전의 친딸에게 그녀를 맡기고 해외로 일자리를 얻어 도피하듯 영국을 떠나게 된다. 그녀만 바라보고 있어도 행복한 사랑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수전의 행동으로 그녀에게 혐오를 느끼는 순간이 반복되는 폴이 안타깝다.

3부는 이제 죽음을 앞둔 노년의 폴이 맹목적으로 돌진했던 19살 이후 자신의 사랑을 되돌아보는 회고담이다. '오직 하나의 이야기(이 소설의 원제는 This only story이다)'를 남겨 그녀를 올바르게 기억하기 위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녀를 떠올리려 하지만 이내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녀에 대한 어떠한 평가 없이 기억해낸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고 기억을 하는 순간의 폴의 마음이 그녀에 대한 기억을 계속 변형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 나오지 않고 짐작조차 하기 힘든 것은 수전의 기억과 마음이다. 수전은 왜 29살 연하의 남자'애'와 함께 집을 나와 런던에서 살기로 했는지, 그녀가 술에 빠지게 되고 헤어나오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지, 알콜성 치매에 빠진 그녀가 폴을 보면서 어떤 기억을 떠올렸는지를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오로지 폴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둘이 만나 이뤄나가지만 그 사랑의 마음과 기억은 각자에게 서로 다르게 남게 되고 아무리 깊게 사랑했던 사람들도 상대의 마음과 기억은 알 수 없다.

반스의 '나를 만나기전 그녀는', '내 말 좀 들어봐', '사랑, 그리고'라는 연애 이야기 3부작이 있는데도 "반스가 쓴 단 하나의 연애소설"이라는 출판사의 띠지 홍보문구는 좀 그렇네. 아무리 출판사가 달라졌다고해도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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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한낮의 연애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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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의 규칙을 거부하고 자신의 원칙을 지키려 외톨이 소수가  이들이 있다.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더라도, 당장 인생에서 손해를 보거나 왕따를 당하는 일이 있더라도 옳다고 믿는 삶의 자세를 지켜나가는 이들.

김금희의 두번째 소설집 '너무 한낮의 연애'에는 소신을 지켜나가다 사회와 관계 속에서 쓰러지거나 사라져가는 이들을 지켜보는 나약한 소시민을 화자로 내세운 작품들이 앞머리를 차지한다. 표제작인 '너무 한낮의 연애'에서 영업팀장에서 시설관리팀원으로 전락한 주인공 필용이 대학 때 자신이 걷어먹였다고 믿은 양희와의 만남. '조중균의 세계'에 나오는 출판사 교열 담당자로 방망이 깎던 노인처럼 교열을 보는 조중균씨와 함께 책을 만드는 편집자 영주. 대학 요트 동아리 동기인 세실리아의 인천 작업실을 찾아가는 정은.

이들은 한 때나마 약한 자를 보듬으려하고 아픔과 고통에 공감하려했던 이들이었으나 어느새 직장내 경쟁과 먹고 살기에 지쳐간다. 인간답고자했던 원칙조차 내려놓고 좋은게 좋은 것이라며, 지금 나의 편의, 이익을 최고로 여기는 이들이 됐지만 이들을 비난하기는 힘들다.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양희, 조중균, 세실리아는 분명한 루저들이다. 어떻게든 정규직으로 버텨야 하고, 서울에서 살고 있어야 실패하지 않은 인생으로 평가받는 사회에서 누가 필용, 영주, 정은을 탓하랴 싶지만 등 뒤편이 서늘한 것은 피할 길이 없다. 나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지만 '이게 제대로 사는 것인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마저 내려놓을 수는 없기에.

김금희의 소설은 올 여름에 나온 '경애의 마음'을 먼저 읽었다. 경애의 마음의 주인공인 상수와 경애처럼 조직에서 밀려나거나 소외받는 이들에 대한 작가의 시선이 따뜻해 전작을 찾아 읽었다. 전작이 실망시키지 않아 첫 작품집인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과 최근작인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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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라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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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인 메일쇼비니스트지만 이른 나이에 억세게 운 좋게 노벨 물리학상을 탄 남자. 노벨상의 월계관 덕에 연구도 제대로 하지 않지만 명예와 권력을 모두 누리며 과학계의 중심 인물로 살아가는 마이클 비어드.


그의 가장 약점은 복잡한 여자관계. 4번의 이혼을 겪고 5번째 부인마저 그의 지긋지긋한 바람기를 견디지 못 하고 맞바람을 피운다. 아내의 바람 상대의 우연한 죽음을 계기로 5번째 결혼도 자연스럽게 정리하고 기후변화를 극복할 과학계의 영웅이 될 기회를 잡는다.


주인공 비어드 교수는 어떻게봐도 호감이 가지 않는 캐릭터다. 돈과 관련된 것 외에는 절제할 줄 모르며 책임감도 없지만 뛰어난 머리와 임기응변으로 사회적 성공을 이어가는 엘리트 지식인임에도 그는 철저하게 이기적이다.


메큐언의 전작 '암스테르담'의 주인공들처럼 유명세에 반비례하는 도덕성을 지닌다. 그가 남의 연구를 훔쳐 획득한 특허를 기반으로 지구 온난화를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펀딩을 받고 로비를 하는 장면에선 황우석이 연상되기도 한다.


60년간 그는 뛰어난 머리로 과도한 성욕, 식욕을 억누르지 못 해 빚어진 혼란을 수습하며 살아 왔지만 인생 최고의 정점이라 여겨온 지구온난화 극복 프로젝트를 시연할 이벤트를 앞두고 비즈니스, 학계의 명성, 애정관계 등 모든 것이 무너질 위기에 닥친다.


학자들과 언론이 근거도 별로 없이 일방적으로 조리돌리다가 일순간 관심을 거둬가는 2장의 에피소드들은 낯익으면서도 그만큼 아픈 현실을 폭로한다.


주인공이 비호감이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


*소설책 띠지 광고에 월스트리트저널 인용이 나온 건 처음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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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못하는 모든 신들에게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6
정이현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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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중견의 반열로 들어가게 된 정이현 작가. 평온해 보이는 중산층의 일상 이면에 자리잡은 불안감, 위선, 희망 없는 허무함 등을 문장으로 끄집어내온 그녀의 새 소설. 작은 판형에 150페이지 남짓한 분량이라 장편보다는 중편소설이 맞다.

재건축 논의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1기 신도시에서 약사로 살아가는 세영과 사춘기의 까탈함도 없이 묵묵히 공부에 열중하는 중2인 딸 도우, 동해안의 낡은 호텔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뒤 대학강사를 접고 호텔 경영에 뛰어든 남편 무원.


40대 중반의 세영은 생일날 아침 자살을 꿈꾸며 잠자리에서 누워 있을 정도로 삶에 애착이 없다. 회복할 수 없을 만큼 훼손된 남편과의 관계를 되살릴 수 있다는 헛된 희망도 없으며 한 달에 한두번 밖에 집에 들리지 않고 용건만 간단히 나누는 남편에게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는다.

동갑인 남편 무원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았지만 낡아빠져버린 더이상 사업이 잘 될 가망이 없는 호텔에 머문다. 가족이나 학계에서 관계맺은 이들과 단절된 혼자만의 외로운 생활을 자청해 현실에서는 고립됐지만 인터넷 카페에서는 아내의 직업을 사칭해 여약사처럼 활발하게 글을 올리고 댓글을 단다. 그러다 자신을 스토킹하던 카페회원에게 신분이 발각되자 전전긍긍하며 혼란에 빠진다.


딸 도우의 학부모위원회 부위원장인 세영은 도우의 1학년 때 같은 반 친구였던 2명의 가해자와 1명의 피해자가 연루된 학교폭력 사건을 다루는 위원회를 핑계를 대고 끝내 참석하지 않는다. 오래된 동네에서 가해자 부모를 다 알고 지내는 처지에서 곤란한 상황에 빠지지 않고 싶었지만 그녀가 불참한 그날 회의에서는 1표 차이로 가해학생들에게 관대한 처분이 내려진다. 피해 학생은 그 뒤 등교를 거부하다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만다.


아이의 조문을 두고도 갖은 핑계를 대고 참석하지 않는 학부모 대표들. 그러나 세영의 딸 도우는 그리 친하진 않았지만 중학생 남자애 답지 않게 친구를 배려할 줄 알았던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고 엄마의 반대에도 조문을 간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아이들에게 안정성과 높은 수입을 보장하는 직업만이 최고임을 강조하고 남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 것이 아닌 나만 피해보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얄팍한 처세술만을 가르쳐왔다. 왜 학교에서 친구를 왕따시키면 안 되는지가 아닌 왕따가 돼서는 안 된다는 식이다.


절대 손해를 볼 수 없다는 그런 마음가짐이 난민에 대해,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비정규직들에게,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여자들에게, 종교와 신념에 따라 총을 들기를 거부하는 이들에게, 성폭력의 희생자들처럼 약자들에게 무차별적인 비난과 혐오를 가하고 차별과 폭력을 정당화시키는 마음의 토대로 작용하고 있다. 약자를 혐오하면서도 부끄러움이나 아무런 자책도 없이 일방적으로 비난하고 그런 요구를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는 주장을 소셜미디어에 올리기도 한다.


남편과의 관계에서나 아이 학교폭력 사건에서나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치지 않고 회피하려고만 했던 세영이지만 자살한 학생의 보호자가 했다고 전해들은 "학교 것들 다 가만두지 않겠다"고 한 소문에 지레 놀라 장례식장에 딸을 찾으러 급하게 찾는다. 알지도 못하는 모든 신들에게 딸의 안전을 기원하던 그녀는 조문도 하지 않고 아이에게 집에 가자고만 소리친다. 나는 과연 편협한 자기가족 중심주의에서 자유로운가를 되묻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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