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일의 발칙한 아내
한지수 지음 / 문학사상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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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일의 아내 묘비명을 읽다

 

이런 묘비명이 있다.

 

<삶의 지도는,

죽음이라는 반전으로 명확해지더군요.>

 

이 문장을 보는 순간, 나는 내삶의 지도를 떠올렸다. 죽음이라는 반전이 없이도 명확해 질 수는 없을까?

 

올봄에 만난 소설 40일의 발칙한 아내는 내게 이런 숙제를 주었다. 물론 숙제만 준건 아니었다. 복잡하고 피곤한 일상을 잊어버릴 만큼의 재미와 위로를 주었다.

사실 재미가 없으면 글이라는걸 도무지 읽을 수가 없는 요즈음이다. 봄이 아닌가. 그런 이유로 아주 오랜만에 집어든 소설이었다.

제목이 한몫을 하기도 했다. 도대체 40일의 아내가 어떻게 발칙했다는 것인지...

 

미혼인 주인공에게 변호사와 형사가 차례로 찾아온다.

 

당신 아내가 죽었다고 이 사람아, 그것도 여섯 번째 아내가.”

 

이 소설은, 있지도 않은 아내가 죽으면서 시작된다.

 

사실 처음에는 그저 그런 영화의 도입부를 떠올리기도 했다. 그런데 가상결혼 사이트가 펼쳐지면서 책에 대한 신뢰가 들기 시작했고, 작가 프로필을 다시 들여다보기도 했다.

작가 이력에 비해서는 상당히 젊은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상결혼 사이트 결혼은 연애의 시작에서의 가상부부의 채팅대화는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했지만, 그 사이트의 룰과 운영원칙, 현실속 배달 업체 등과의 연동방식을 보고 좋은 사업 아이템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다는건 좋은독서는 못된다.)

 

그리고 모든 호기심을 넘어서는 두 사람의 로맨스에 사로잡혔다. 책의 뒷면에 있었던 카피 그대로였다. 일찍이 내가 본적도 읽은 적도 없는 로맨스였다.

 

소설은 뒤로 갈수록 자주 내 감정을 건드렸다. 두 사람의 사랑이 안타깝고 안쓰러웠다. 눈시울이 자꾸만 뜨거워지곤 했다.

둘의 인연이 그리 간단한 게 아니었다. 전두환 5공화국 정권 초기에 무자비하게 진행된 간첩만들기의 희생양이 주인공의 아버지다. 선재는 간첩의 아들인 것이다.

작가는 두 사람을 사상의 세계에서 만나게 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아무런 의심을 하지 못하도록 장치를 해놓았다. 둘의 인연이 한국의 역사의 중심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죽음이라는 반전이 그들 사이에 끼어들고난 다음에 벌어지는 이야기가 새롭고 경이롭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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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샤바의 열한 번째 의자
김다은 지음 / 작가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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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샤바의 열한 번째 의자

 

우선 알아야 할 것이 있다. 폴란드 사람들의 크리스마스이브 식탁에는 빈 접시 하나가 더 있다. 빈 의자와 빈 접시는 언젠가 올지도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 준비해 두는 것이다.

이 장면은 내가 들은 이야기 중에 가장 뭉클하고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폐허가 된 영혼도 재건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이 책을 진지한 자세로 정독하게 된 건, 순전히 저 문장에 의해서였다. 물론 열한 번째의 의자가 궁금하기도 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치매에 걸린 폴란드 할머니와 북한 어린이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한국전쟁 때 폴란드는 북한의 고아들을 받아들여 보살폈다. 그 당시 사회주의 국가들 간에 나누는 우정인 셈이다.

폴란드에서는 북한 어린이를 소련꼬레아라 부르고, 남한 어린이는 미국꼬레아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때 보육원에서 그 어린이들을 돌봤던 여인이 이제는 치매에 걸려, 과거의 그 시간으로 돌아가 있다. 그곳에서 시간이 멈춰버린 폴란드 할머니는 하염없이 어떤 아이를 기다리는 중이다. 식탁에 빈 의자와 접시를 준비하고서.

이야기의 또 한 축은 바로 저 질문을 던지고 폴란드로 영화 공부를 하러 떠난 라아이다. “폐허가 된 영혼도 재건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어린 시절 자폐아 오빠를 대신해 성폭력 피해를 당했던 그녀의 가슴을 표현한 말인 듯하다. 폐허가 된 전후의 바르샤바를 흑백으로 찍은 사진과 새롭게 재건된 컬러풀한 바르샤바의 사진을 한 장에 담은 엽서. 그녀는 그것을 보고는 자신의 영혼도 그렇게 재건될 수 있을까를 자문하듯이 철화에게 그 말을 남기고 유학을 떠난 것이다.

더 이상의 줄거리를 쓰게 되면, 이 소설을 읽을 독자를 방훼하게 될 테니, 이쯤에서 그만 하기로 하자. 그래도 하나만 더 해야겠다.

울지 마, 아기……

이방의 누군가가 한국어로 저 말을 하면서 당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면 어떨까? 당신은 이미 아기가 아니지만, 아기처럼 울고 싶을 때, 누군가 그래준다면…… 아마도 아이처럼 목 놓아 울지도 모른다. 그리고 누군가가 마련해 놓은 열한 번째, 혹은 여섯 번째든 세 번째든 그 준비된 의자에 초대를 받는다면 어떨까.

독서를 끝낸 지금은 저 폐허의 재건에 대한 답을 얻었고, 열한 번째 의자가 누구를 위한 자리인지도 알았다. , 좋은 독서를 했다!

또 한 가지 알게 된 건, 나도 누군가를 위한 빈 의자를 늘 준비해 둘 거라는 사실이다.

누군가를 위한 의자와 빈 접시를 내 식탁에 준비하는 것! 그 장면을 상상만 해도 이렇게 가슴이 뜨거워지는 걸 보면, 그 의자는 결국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무엇을 대가로 주고 뜨거운 가슴을 얻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서둘러 누군가를 위한 빈 의자를 마련하자. 그렇게 마련해 놓은 빈 의자에, 어느 날 내가 초대될 수도 있을 테니!

폐허가 된 영혼도 제건이 가능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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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묻힌 도시의 연인
한지수 지음 / 네오픽션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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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지수작가의 파묻힌 도시의 연인은 과거와 현실의 상상력을 넘나드는 구성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여기에 신화적 상상력이 결합되어 있어 읽는 내내 독서의 즐거움을 안겨준 책이다.

나는 한지수 작가의 첫 단편소설 자정의 결혼식을 읽고 한지수 작가의 애독자가 되었다. 파묻힌 도시의 연인에서는 기존 한지수작가의 소설들에서 느낄 수 있었던 은유적인 표현과 디테일한 묘사를 생략해 훨씬 간결해진 느낌을 받았다.

아마 독서를 즐기지 않는 신세대 독자들의 독서방법을 위한 글쓰기를 택한 게 아닌가 싶다. 독자의 읽기를 고려한 작가의 세심한 배려가 담긴 글쓰기를 선택했다고나할까?

그러나 여전히 한지수 작가의 섬세한 문체는 소설의 각 문장과 문단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었다. 파묻힌 도시의 연인을 읽는 내내 나는 폼페이에 직접 가있는 듯한 환상에 빠져 책을 읽었다. 그리고 한편을 다 읽은 후에는 폼페이 구석구석을 여행한 듯 흐뭇함과 만족감에 빠져 며칠을 보냈다.

이와 함께 주인공들의 심적 표현과 치밀한 서사로 인해 내가 마치 베루스가 된 양 운명적인 사랑에 아파했고, 한남자의 절실한 사랑을 받는 플로시아처럼행복했고 그 사랑에 가슴을 관통하는 통증을 느끼기도 했다.

비단 이 두 주인공의 심적 상황 뿐 아니라 소설의 각 등장인물들과 마음의 공감 혹은 공간이 일치되는 느낌을 여러 차례 받았다.

이처럼 한지수 작가의 소설은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혹은 대리만족시키는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이번 작품도 역시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던 작가의 노고에 다시 한 번 감사와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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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레, 살라맛 뽀
한지수 지음 / 작가정신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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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살라맛뽀』는 웃음 속에 숨어 있는 현실의 아픔, 그런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전쟁 같은 실상과 휴머니즘은 나의 가슴을 찡하게 조여 왔다. 역시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작가이며, 2014년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의 우수상의 영광을 받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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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 사랑법
한지수 지음 / 열림원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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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자정과 결혼식 이후 한지수 작가의 차기 작품을 고대했다.

오랜 기다림에 보응이라도 하듯 그녀는 헤밍웨이 사랑법이라는 장편소설을 내게 선물했다. 이 소설은 그녀만의 예리하고 섬세한 운체를 비폭력 대화법이란 대화법을 통해 서술하므로 주인공들의 내적심리까지도 실감나게 표현하였다.

소설을 읽으며 또 한 가지 느끼게 된 점은 이 작가가 독자를 깊이 이해하고 배려하는 친절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어려운 단어에 일일이 각주를 달아 소설의 이해도를 높이고, 소설 외에 또 다른 상식까지 제공했으니 말이다.

또한 한편 한편의 소재마다 느껴지는 특성이나 상황들에 적절한 제목을 선정함으로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마음을 고스란히 독자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 젊다는 사실이 시리게 아파올 때가 있었다. 아니 산다는 것 자체가 힘겨워 하루에도 몇 번씩 지옥과 현실의 문 앞을 오가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의 폭넓은 은유의 글들을 통해 나는 위로 받고 용기를 얻었다. 나도 누군가를 용서함으로 내 자신을 사랑할 수 있고, 그 용서가 끝난 후 다시 찾아 올 사랑을 받아들일 용기를 얻은 것이다.

이 책은 세상과 사랑에 상처받아 우울함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던 내게 심리상담자가 되어주었고 신경안정제를 복용한 듯한 평안함을 갖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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