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학, 세상과 만나다
이강엽 지음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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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고전들은 원작이 어떤 내용이었는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반면, 해외의 명작동화들은 "잔혹동화"라는 이름으로 원작이 제법 많이 출판되었다. 어릴 적 읽었던 무조건적인 권선징악, 효행에 대한 이야기들에 슬슬 반감을 갖게 되는 시기엔 우리의 고전이 세계로 뻗어나가지 못하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나이만 먹었다고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부터 우리의 머리속에 자리잡은 고전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만, 순화된 동화만 읽은 탓에 그 동화가 가지는 진짜 의미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잘 알려진 동화 콩쥐팥쥐가 젊은 원님인지, 원님의 아들인지와 결혼해서 잘 산다는 결론 그 뒤에 다시 콩쥐를 해하려 작당한 팥쥐와 배씨부인이 종국엔 끔찍한 결말을 맞이 한다는 게 알고 있는 원작의 전부이다.

분명 우리의 고전이 이렇게 슬프게 진행되다가 아름답게만 끝날리가 없음을 짐작을 하면서도 흥부는 밑도끝도없이 그저 착하고 어진동생이고 놀부는 태생이 욕심많은 형으로 그려지는 것도 이상하다. 콩쥐는 아빠마자 돌아가셔서 계모의 구박을 받아야 했다지만, 장화와 홍련은 자식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무능한 아빠 때문에 계모에 의해 살해된다.

여기까지만 와도 한 번쯤은 고민 해 봐야 된다. 아동용 도서로만 기억하는 우리의 고전이 우리에게 진짜로 하고 싶었던 얘기가 무엇인지 말이다.


고전이 사랑받는 이유는 작품이 주는 분명한 메시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고전 소설은 서양의 고전에 밀려 말 그대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유를 들어보자면 성인들은 생각보다 우리의 고전을 읽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릴적에 이미 읽어서 내용을 알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고전이 주는 무조건적인 그 메시지에 반감을 가질 성인이 되어 "그게 전부일리 없어!"라며 원작을 찾아보려고 해도 찾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아무리 문학은 시대를 반영한다지만, 원작을 찾기 힘든 상황에서 무조건적인 권선징악과 효행이 강조되고 있는 내용만 알려진 소설들이 현시대까지 공감받기는 어렵다는 것도 위의 상황과 연결되는 점이다.

내가 알고 싶었던 것은 열가지의 키워드로 다시 살펴보는 고전문학을 통해서 선조들이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 무조건적인 권선징악이 아닌 그 안에 숨겨져 있는 다른 의도였다.


모르고 볼 때와 알고 볼 때의 느낌은 확연히 다르다.

꽃이라고 해서 다 예쁜 것만 있는 것도 아니고, 다 화려하지도 않다. 화무십일홍이란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듯 순간 화려함이 긴긴세월의 고달픔을 버티게 해주는 힘이 되어주는 것처럼, 가난에도 이유가 있고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삶의 태도와 질이 달라지고 있음을, 악을 행하는 데도 모르고 저지름과 알고 저지름의 차이, 선인 줄 알았는데 결론은 악이 되는 등 선과 악에 대한 경계의 모호함, 인간이 동물이 되고 동물이 인간이 되고, 삶과 죽음, 하늘과 땅 사이에서 운명을 거슬러가는 이야기들을 보며, 그 시대를 다시 이해해 보게 된다.


나는 우리의 고전이 원래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궁금해 하던 중에 이 책을 만나게 되었고, 그래서 재밌게 읽었다. 또한 이 책 덕분에 고전을 현대어로 해석해 둔 책이 있다면 찾아서 읽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더 커졌다. 느낌이 살짝 비슷했던 이야기들이 여기저기 떠오르는데, 어쩌면 콩쥐팥쥐와 신데렐라처럼 유사성을 띈 소설들을 더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의 고전들도 서양의 고전처럼 멋진 스토리가 되어 널리 알려질 수도 있을거란 막연한 상상도 해 봤다. 어쩌면, 그 둘을 잘 엮으면 슈렉같은 재밌는 퓨전 소설이 또 하나 나올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상상도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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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의 배신 - 우리는 왜 청결해야 하는가
제임스 햄블린 지음, 이현숙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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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봤을 때, 책 소개 내용을 봤을 때. 그동안 언론매체로 많이 언급해왔던 계면활성제에 대한 이야기 일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얘기는 없다. 제목에 약간(?)은 속았다는 느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시작부터 이렇게 훅 들어오는 특정회사의 상품들을 언급함에 당황했고, 기대했던 세제의 숨겨진 얼굴은 하나도 만나지 못해서 또 당황했다. 이야기에 빠져들어 있다가도 문득문득 "그래서? 거품이 배신하는 내용은 도대체 언제쯤 등장하는거지? 과연 나오기는 할까?"라는 생각을 해야만 했다. 만약, 이것이 소설이었다면 나는 최하점을 줬을거다. 내용과의 연결점이라곤 찾을 수 없는 너무 뜬금없는 제목이었으니까.


앞서 얘기했듯 특정회사의 화장품들을 너무나 상세(?)하게 소개하는 느낌이라 "이게 뭐지?" 싶기는 했다. 어느 만큼의 분량을 지나야 [거품=청결]이라는 공식을 사람들에게 심어주었는지 기다려가며 읽느라 초반엔 지루하기도 했다. 설마 이 책을 쓴 목적이 화장품 회사와 비누회사의 역사를 돌아보며 그들의 성공신화를 알리는 목적으로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다. 중반에 접어들어도 기다리는 내용이 나오지 않자 살짝 짜증이 나면서 "그래, 지금까지 우리가 집착해왔던 [거품=청결]에 대한 선입견을 제대로 깨주는 내용이 언제 등장하는지 두고보자."라는 오기가 생기기도 했다.

결말을 먼저 말하자면, 제목에서 기대할 수 있는 [거품이 우리를 배신하는 내용]은 끝까지 등장하지 않는다. 아니... 등장은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그건 배신까지는 아니다. -누군가는 그게 배신이 아니면 뭐냐고 우길수도 있겠지만- 그냥 묻지 않으니 말하지 않았을 뿐이라는, 좋은 점만 말하고 나쁜 점은 굳이 내보이고 싶지 않았다는 변명에 가까운 이야기랄까? (이것이 소설이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싶은 부분이기도 하다.)

책은 오로지, 사람들이 왜 비누를 쓰게 되고 화장품을 쓰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비누와 화장품 업계가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파고들었는지, 어떻게 지금의 규모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에만 점철되어 있다.

생활환경과 질병 사이의 연관성을 가설을 시작으로, "세균원인설"을 증명해내고, 감염병의 퇴치 및 예방을 위한 [위생혁명]이 도시계획에서 필수항목이 되면서 비누 시장은 성장을 시작한다. 시작은 청결이었지만, 점차 아름다움으로, 피부건강으로 영역을 확장시켜 어마어마한 종류의 비누,샴푸, 소독제, 화장품, 의약품의 천국에 이르게 된다.


이 책이 이렇게 장황하게 굳이 거론해야 되나 싶은 비누회사, 화장품회사의 성장이야기를 거론해가면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뭘까? 라는 의문이 들 때 쯤에서야 저자는 은근하게 속내를 내비친다. "비누와 화장품이 정말 우리의 피부를 보호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 한번쯤은 생각을 해 봐야 되는게 아니냐고 말이다.

나 역시 샴푸와 린스는 포기하지 못했지만, 외출일정이 없으면 최대한 사용을 자제하는 중이다. 특정 제품을 써야 되는 건 아니지만, 샴푸를 할 때마다 걱정스러울만큼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이 걱정되기에 매일 빗질은 해도 머리감는 건 최대한 하지 않을 수 있으면 안 하려고 한다. -근데, 진짜 이젠 3일간은 머리 안 감아도 별로 티가 안 남.- 코로나 창궐 이후 시도때도 없이 사용하던 비누도, 이젠 외출을 하고 돌아왔다거나 손에 기름이 묻거나 냄새가 밴 것이 아니면 굳이 사용하지 않고 그냥 물로만 씻고, 땀을 많이 흘리니 매일 샤워를 하지 않으면 가렵고 찝찝하니 안 할 수는 없지만 바디워시는 사용하지 않는다. 꼭 필요하다 싶으면 목욕용 비누를 가끔 사용하긴 하지만. 화장품은 겨울철이 아니면 스킨,로션 이외에는 바르지 않는다. (많이 줄이고 줄였으나 이 두 개까지는 결코 놓을 수 없었다는...)

얼굴과 손, 몸에 사용하는 것들을 대폭 줄인 이후 피부건강에는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 이 책의 내용 -저자가 하고 싶어했던 말-이 내 경우에 있어서는 공감과 동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부분이었고, 다른 물품들 역시 사용하지 않음(혹은 사용을 줄임)으로 해서 지킬 수 있는 내 몸과 지구 환경에 대해서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수 있어서 나름 괜찮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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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을 위하여 - 나의 안녕, 너의 안녕, 우리의 안녕을 위한 영화와 책 읽기
이승연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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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참 좋았다. [안녕을 위하여.... ]

"나와 너, 그리고 우리의 안녕을 위하여"라는 표지의 글자만으로도 이미 위로를 받는 느낌이었다. 코로나가 바꿔버린 삶은 이제 누군가를 꼭 만나지 않더라도, 전화나 문자 한 통이면 충분한 것으로 바뀌었다. 대면의 일상보다 비대면의 일상이 편해졌기에 나의 친구들은 온라인 상에서만 존재하게 되었다. 매일 마주하는 강아지산책 모임보다 어쩌다 한 번 연락하는 30년지기 친구가 더 편한 이유 역시 그 연장선이 아닐까 싶다.



책 속의 20개 이야기 중 아쉽게도 내가 아는 건 영화[러브레터]가 전부이다. 그래서 나머지 19개의 이야기는 오롯이 작가가 알려주는 이야기에만 의지해 그림을 그려나가야 했다. 그래서, [러브레터]만큼의 공감대는 만들어 내지 못했다. 하지만 한가지는 확실했다. 영화를 보면서 두루뭉술하게, 그저 예쁘게만 그려졌던 둘의 이야기가 누군가의 첨언으로 선명하게 그려졌다는 것을.

내게 그 영화는 두 여자가 추억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 그리고 그 남자의 진심이 어디로 향했는지, 마지막에 그걸 깨달은 히로코와 이츠키(여)의 마음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단 한 번도 히로코가 죽은 이츠키(남)가 저 세상에서도 안녕하길 바라고 있다는 생각은 해 본적이 없었다. 마지막 그 외침을 들을 때도 그게 작별인사라고만 생각한거다. 어떤 영화나 소설이나 드라마를 볼 때도 우린 행복한 결말을 원한다. 하지만, 그들이 영원히 안녕할거란 생각은 몇 번이나 해 봤을까?



[흔적 없는 삶]에서 전쟁 후유증으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가진 아빠 윌은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딸과 함께 숲에 숨어 산다. 하지만 복지과 사람들에게 끌려가 사회제도안에 갇혀버리고 마는데, 아빠 윌은 여전히 그 삶을 힘들어하지만, 아직 어린 딸은 이미 제도화된 그 삶에 익숙해져버린다. 결국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헤어지는 부녀. 그 헤어짐 속에 담긴 서로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이 느껴질 때 괜히 찡해졌다.

[소공녀, 심판, 타인의 고통]등의 내용도 상당히 와 닿았다. 이는 코로나 펜데믹으로 바뀐 일상, 아시아인 혐오 범죄, 게다가 현재진행형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의 영향이 크다. 생존의 문제를 넘어선 인류애까지 걸린 이 바이러스와 무력과 폭력앞에 힘없이 사그라드는 많은 생명들을 보며 우리의 걱정과 동정심은 어디까지 닿아야하는지를 고민하게 했다. 이 두 전쟁이 끝나기를 바라는 모든 이들의 마음엔 우리 자신의 평화와 모두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이 담겨져 있기 때문일거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유지하는 상대와의 관계.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사람들. 그럼에도 우리는 꾸준히 상대의 안부를 묻는다. 자주 만나지 못해도, 그 관계가 얕고 깊고는 상관없이 마음은 늘 상대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 견주의 안부보다 그 집 개의 안부를 먼저 묻는 것도,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 생각이란 걸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한 마음가짐이 아닐까 싶다.

하물며 사람이 사람에게 해서는 안될 짓으로 점철되는 전쟁이 인류의 안녕에 도움이 될 일은 하나도 없다. 그러니 부디 인간의 마음만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세계를 혼란에 빠뜨린 이 전쟁만큼은 하루빨리 끝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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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세시풍속
고성배 지음 / 닷텍스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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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기 전에 아이들에게 한 번 물어볼 걸 그랬다. 세시풍속이란 말을 알고는 있는지. 알고있다면 어떤 종류의 것을 알고 있는지 말이다. 내 기억속에서도 가물거리는 것들이고, 아이들도 굳이 명절이라고 이런저런 거 왜 안하냐고 묻는 것을 보니 이젠 정말 사라져가는 우리 문화, 우리 풍습이 되어가는 중인가보다 싶다. 어릴 적 일들을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지다보니 이런 것들이 아쉽다.


혼자 힘들게 명절 음식을 만들고 상을 차리고 치우는 엄마를 보며 자랐던 탓에 나는 명절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은 명절 차례를 지내는 대신 여행을 다니거나 아니면 진짜 휴식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시대가 되었지만, 아직 어르신들과 함께 명절을 보내야하는 집이 많은 탓에, 그런 날이면 특히 여자들의 일은 배가 되는 날이라 나역시도 그닥 반갑지 않은 연휴에 불과하다. 그런 내가 잠깐동안 명절을 좋아했던 시기가 있었다. 이유는 딱 하나. 전통에 관한 다큐멘터리 방송이 풍성했기 때문이다. 해당 명절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거나, 그게 아니라도 우리의 전통에 해당하는 내용을 심도있게 다룬 다큐멘터리를 각 방송사마다 해주는 것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물론 차례지내고 밥 먹고 설거지 하는 동안 방송을 통째로 날려버리거나, 끝나기 직전에서야 겨우 티비를 켤 수 있는 때도 부지기수였지만) 그런데, 지금은 특집방송이라고 해봐야 극장판 영화들이나 줄줄이 해대고 있을 뿐이니 이젠 진정한 노동절에 불과한 명절이 딱히 반갑지도 않다.


이 책을 읽게 된 것도, 지난 추석이 별다를 것없는 삼시세끼 식구들의 밥을 챙겨야 하는 연휴로 끝나버린 게 아쉬워서였다. 분명 내가 어릴 때는 명절이면 티비에서도 전통복장을 한 사람들이 차전놀이, 강강술래, 씨름 방송을 해주곤 했었지만, 요즘은 그런 행사를 했다는 뉴스도 거의 못 본거 같다. 달집태우기, 쥐불놀이는 화재의 위험 때문에 더 이상하지 않는다는 것도 아쉬웠다. (그러면서 시끄럽게 폭죽 터트리는 행사를 하는 지자체는 꼭 있더라.) 어릴 때 보고 듣고 배웠던 나도 점점 잊고 있는 것을 요즘 아이들이 알기를, 일부러 찾고 배우고 계승해주길 바라는 건 너무 염치없는 걸까? 분명 많았을 우리의 풍습이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았는데, 어느 샌가 점점 사라져 그 흔적을 찾아가야되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책 속의 내용은 신기하기까지 했다. 내가 알고 있던 것도 많았지만, 모르는 건 더 많았고, 내가 알고 있는 놀이에도 가지고 놀 것없는 아이들이 만들어낸 것이 아닌 아주아주 오래전부터 했던 놀이라는 것이 신기했다. 특히나 공기놀이를 할 때 왜 마지막 단계에선 꼭 "한 살, 두 살" 이라고 하는지 너무나 궁금했었는데, 그게 일명 "나이먹기"란다. 그 궁금증을 가진지 40년이 다 되어서야 풀고 간다. 정월대보름에 여러군데서 밥을 얻어먹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은 있는데, 그 밥을 개랑 한 숟가락씩 번갈아 먹는다는 얘기엔 훈련사나 수의사들이 보면 기함을 하고 뒤로 넘어가겠다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농경사회로 시작한 민족답게 풍년을 기원하는 나무 시집보내기나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노비떡을 먹이고, 백중날엔 휴가와 새옷을 주고 술과 음식을 대접하며, 중요한 재산인 소를 보호하기 위해 쇠붙이를 만지지 않는 풍습도 있었다. 가족들이 무탈하고 건강하기를 바라며 잡귀를 물리치는 신도와 울루를 문에 붙여 흉귀를 막고, 손톱에 봉숭아 물도 들여 잔병치레를 하지 않길 바라고, 국화전을 먹으며 잡귀를 물리치기도 했다.

물론 요즘에야 다 미신이라고 치부하고 이를 행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싶지만, 가끔은 그래도 그 의미를 되새기며 실행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친정 나들이를 하지 못하는 결혼한 여인들을 위해 추석날 딱 하루 친정부모님과 중간지점에서 만나는 반보기같은 풍습은 그저 "있었다고 한다."로 끝나도 좋을 것이지만, 서로의 행복과 무병장수를 바라며 옷을 지어주고, 음식을 나눠먹는 풍습은 계속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남아선호사상이 아직도 희미하게 남아있는 세대와 살면서 오로지 여성들을 위한 "버선짓기"라는 풍습에 괜시리 눈물이 핑 돌았던 것도 계속되면 좋았을 풍습이란 생각 때문이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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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놀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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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기묘했다. 내면의 "R"에게 집착하는 '나'. 모든 사건의 시작이 '나'에서 시작될 줄 알았다.

허나, 진짜 사건은 '나'에게 접근한 그녀. "사나에"에게서 시작되었다.


평범한 사람처럼 살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나" 신견. 사람들 앞에선 본 모습을 숨기고 가면을 쓴 채 살고 있다. 그런 그의 앞에 나타난 기묘한 여자. '사나에' 나는 본능처럼 그녀에게 끌린다. 같은 부류의 사람들에게만 통하는 뭔가가 있는 것처럼. 그런 그 앞에 나타난 탐정. 그는 사나에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던 남자가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사실을 말하며 그녀의 주변을 조사해 줄 것을 요청한다. 귀찮은 일을 거절했어도 상관없었을텐데, 그는 기꺼이 그녀의 곁으로 간다.

그치만, 그는 그녀를 속이지 않는다. 그녀도 거부감없이 그의 요구에 순순히 응한다.

그리고, 다시 탐정을 만나러 간 '나'는 탐정을 통해 그녀가 사법고시 문제에도 등장하는 유명한 [종이학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임을 알게 된다.


1988년 토쿄의 한 민가에서 벌어진 기묘한 일가족 살해 사건인 그 사건은 파헤칠수록 미궁으로 빠지는, 의문만 남긴 채 종결된 사건이다. 침입한 사람은 없고, 침입한 자의 흔적만 남은 기묘한 사건. 어린 아이조차 빠져나가기 힘들만큼 좁은 화장실 창문만 아니라면 부정할 수 없는 밀실. 남편과 아내는 칼에 찔린 상처가 있고, 아들은 독극물을 마시고 죽었다. 남편과 아들에겐 구타의 흔적이 있고, 아내는 나체인 채로 종이학에 묻혀 발견되고. 딸은 누군가가 준 음료를 마시고 잠든 채 발견되었다. 성폭행의 흔적은 없고, 아들의 정액이 묻은 잠옷을 입은 채.


사나에에게서 풍기는 기묘한 분위기. 끔찍한 사건의 생존자라서 그렇다고 하기엔 미심쩍은 그녀의 상태. 살아도 사는 게 아닌 듯, 죽는 것만이 오로지 희망이라는 듯 말하지만, 결코 스스로 생을 포기하지 않는 그녀.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자꾸만 끌리는 '나'. 그리고 비정상적으로 그 사건에 집착하게 된다. 상사인 가토씨를 통해 당시의 인권변호사였던 사토를 만나고, 탐정을 통해서 그 때의 사건을 파헤친 내용을 담은 책을 내려다 저지당한 간자키 마오루를 만나면서 그 사건에 한 발짝 더 다가선다. 하나씩 드러나는 숨겨진 일가족의 실체. 그리고 그 실체에 더 가까이 다가서면서 드디어 찾아내는 사건의 실마리. 위험을 감지한 탐정은 '나'에게 사나에와의 관계를 정리하라고 충고하지만, 그는 거절한다. 그러자 그에게 그녀의 또 다른 비밀을 알려주는 탐정.


그리고 그녀의 입을 통해 듣게되는 사건의 전말.

읽는 내내 머리속을 소용돌이 치게 했던 그 기묘하고 오싹한 느낌의 실체에 다가서면서, 스토커들의 비정상적인 사고방식과 그들에 의해 벌어지는 범죄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가정. 비정상적으로 아내에게 집착했던 남편. 그로 인해 숨통이 조여오는 느낌으로 망가져가던 아내와 아들. 그리고, 그 아들 때문에 이중으로 상처받는 딸. 남편에게서 시작된 집착은 오해와 의심을 낳고 숨막히던 아내는 비밀을 만들고, 아들은 미움을 키웠다. 그리고 그 혼돈 속에서 생존욕구를 키워낸 딸.

사건의 전말이 모두 밝혀지고 기묘한 두 사람은 그 불안한 삶으로 함께 손잡고 간다. 그들에겐 해피엔딩같지만, 독자에겐 여전히 오싹함을 남기는 결말.


그동안 읽은 일본소설들이 특유의 평범함, 그 속에서 통통튀는 일상이 그려진 내용들 -그것이 추리소설이었다해도-이었던 것에 반해, 이 소설은 링, 주온 같이 일본공포 영화 특유의 음험함을 고스란히 지닌 내용이라 오랜만에 진짜 공포를 경험했다. 그치만... 이젠 이런 내용에 흥미를 가지기엔 나는 너무 나이가 들었나보다... 솔직히 꿈에 나올까봐 무섭다..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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