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세시풍속
고성배 지음 / 닷텍스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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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기 전에 아이들에게 한 번 물어볼 걸 그랬다. 세시풍속이란 말을 알고는 있는지. 알고있다면 어떤 종류의 것을 알고 있는지 말이다. 내 기억속에서도 가물거리는 것들이고, 아이들도 굳이 명절이라고 이런저런 거 왜 안하냐고 묻는 것을 보니 이젠 정말 사라져가는 우리 문화, 우리 풍습이 되어가는 중인가보다 싶다. 어릴 적 일들을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지다보니 이런 것들이 아쉽다.


혼자 힘들게 명절 음식을 만들고 상을 차리고 치우는 엄마를 보며 자랐던 탓에 나는 명절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은 명절 차례를 지내는 대신 여행을 다니거나 아니면 진짜 휴식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시대가 되었지만, 아직 어르신들과 함께 명절을 보내야하는 집이 많은 탓에, 그런 날이면 특히 여자들의 일은 배가 되는 날이라 나역시도 그닥 반갑지 않은 연휴에 불과하다. 그런 내가 잠깐동안 명절을 좋아했던 시기가 있었다. 이유는 딱 하나. 전통에 관한 다큐멘터리 방송이 풍성했기 때문이다. 해당 명절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거나, 그게 아니라도 우리의 전통에 해당하는 내용을 심도있게 다룬 다큐멘터리를 각 방송사마다 해주는 것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물론 차례지내고 밥 먹고 설거지 하는 동안 방송을 통째로 날려버리거나, 끝나기 직전에서야 겨우 티비를 켤 수 있는 때도 부지기수였지만) 그런데, 지금은 특집방송이라고 해봐야 극장판 영화들이나 줄줄이 해대고 있을 뿐이니 이젠 진정한 노동절에 불과한 명절이 딱히 반갑지도 않다.


이 책을 읽게 된 것도, 지난 추석이 별다를 것없는 삼시세끼 식구들의 밥을 챙겨야 하는 연휴로 끝나버린 게 아쉬워서였다. 분명 내가 어릴 때는 명절이면 티비에서도 전통복장을 한 사람들이 차전놀이, 강강술래, 씨름 방송을 해주곤 했었지만, 요즘은 그런 행사를 했다는 뉴스도 거의 못 본거 같다. 달집태우기, 쥐불놀이는 화재의 위험 때문에 더 이상하지 않는다는 것도 아쉬웠다. (그러면서 시끄럽게 폭죽 터트리는 행사를 하는 지자체는 꼭 있더라.) 어릴 때 보고 듣고 배웠던 나도 점점 잊고 있는 것을 요즘 아이들이 알기를, 일부러 찾고 배우고 계승해주길 바라는 건 너무 염치없는 걸까? 분명 많았을 우리의 풍습이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았는데, 어느 샌가 점점 사라져 그 흔적을 찾아가야되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책 속의 내용은 신기하기까지 했다. 내가 알고 있던 것도 많았지만, 모르는 건 더 많았고, 내가 알고 있는 놀이에도 가지고 놀 것없는 아이들이 만들어낸 것이 아닌 아주아주 오래전부터 했던 놀이라는 것이 신기했다. 특히나 공기놀이를 할 때 왜 마지막 단계에선 꼭 "한 살, 두 살" 이라고 하는지 너무나 궁금했었는데, 그게 일명 "나이먹기"란다. 그 궁금증을 가진지 40년이 다 되어서야 풀고 간다. 정월대보름에 여러군데서 밥을 얻어먹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은 있는데, 그 밥을 개랑 한 숟가락씩 번갈아 먹는다는 얘기엔 훈련사나 수의사들이 보면 기함을 하고 뒤로 넘어가겠다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농경사회로 시작한 민족답게 풍년을 기원하는 나무 시집보내기나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노비떡을 먹이고, 백중날엔 휴가와 새옷을 주고 술과 음식을 대접하며, 중요한 재산인 소를 보호하기 위해 쇠붙이를 만지지 않는 풍습도 있었다. 가족들이 무탈하고 건강하기를 바라며 잡귀를 물리치는 신도와 울루를 문에 붙여 흉귀를 막고, 손톱에 봉숭아 물도 들여 잔병치레를 하지 않길 바라고, 국화전을 먹으며 잡귀를 물리치기도 했다.

물론 요즘에야 다 미신이라고 치부하고 이를 행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싶지만, 가끔은 그래도 그 의미를 되새기며 실행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친정 나들이를 하지 못하는 결혼한 여인들을 위해 추석날 딱 하루 친정부모님과 중간지점에서 만나는 반보기같은 풍습은 그저 "있었다고 한다."로 끝나도 좋을 것이지만, 서로의 행복과 무병장수를 바라며 옷을 지어주고, 음식을 나눠먹는 풍습은 계속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남아선호사상이 아직도 희미하게 남아있는 세대와 살면서 오로지 여성들을 위한 "버선짓기"라는 풍습에 괜시리 눈물이 핑 돌았던 것도 계속되면 좋았을 풍습이란 생각 때문이었겠지만.


출판사에서 책만 받아 읽고 쓰는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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