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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놀 / 2022년 8월
평점 :
시작부터 기묘했다. 내면의 "R"에게 집착하는 '나'. 모든 사건의 시작이 '나'에서 시작될 줄 알았다.
허나, 진짜 사건은 '나'에게 접근한 그녀. "사나에"에게서 시작되었다.
평범한 사람처럼 살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나" 신견. 사람들 앞에선 본 모습을 숨기고 가면을 쓴 채 살고 있다. 그런 그의 앞에 나타난 기묘한 여자. '사나에' 나는 본능처럼 그녀에게 끌린다. 같은 부류의 사람들에게만 통하는 뭔가가 있는 것처럼. 그런 그 앞에 나타난 탐정. 그는 사나에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던 남자가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사실을 말하며 그녀의 주변을 조사해 줄 것을 요청한다. 귀찮은 일을 거절했어도 상관없었을텐데, 그는 기꺼이 그녀의 곁으로 간다.
그치만, 그는 그녀를 속이지 않는다. 그녀도 거부감없이 그의 요구에 순순히 응한다.
그리고, 다시 탐정을 만나러 간 '나'는 탐정을 통해 그녀가 사법고시 문제에도 등장하는 유명한 [종이학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임을 알게 된다.
1988년 토쿄의 한 민가에서 벌어진 기묘한 일가족 살해 사건인 그 사건은 파헤칠수록 미궁으로 빠지는, 의문만 남긴 채 종결된 사건이다. 침입한 사람은 없고, 침입한 자의 흔적만 남은 기묘한 사건. 어린 아이조차 빠져나가기 힘들만큼 좁은 화장실 창문만 아니라면 부정할 수 없는 밀실. 남편과 아내는 칼에 찔린 상처가 있고, 아들은 독극물을 마시고 죽었다. 남편과 아들에겐 구타의 흔적이 있고, 아내는 나체인 채로 종이학에 묻혀 발견되고. 딸은 누군가가 준 음료를 마시고 잠든 채 발견되었다. 성폭행의 흔적은 없고, 아들의 정액이 묻은 잠옷을 입은 채.
사나에에게서 풍기는 기묘한 분위기. 끔찍한 사건의 생존자라서 그렇다고 하기엔 미심쩍은 그녀의 상태. 살아도 사는 게 아닌 듯, 죽는 것만이 오로지 희망이라는 듯 말하지만, 결코 스스로 생을 포기하지 않는 그녀.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자꾸만 끌리는 '나'. 그리고 비정상적으로 그 사건에 집착하게 된다. 상사인 가토씨를 통해 당시의 인권변호사였던 사토를 만나고, 탐정을 통해서 그 때의 사건을 파헤친 내용을 담은 책을 내려다 저지당한 간자키 마오루를 만나면서 그 사건에 한 발짝 더 다가선다. 하나씩 드러나는 숨겨진 일가족의 실체. 그리고 그 실체에 더 가까이 다가서면서 드디어 찾아내는 사건의 실마리. 위험을 감지한 탐정은 '나'에게 사나에와의 관계를 정리하라고 충고하지만, 그는 거절한다. 그러자 그에게 그녀의 또 다른 비밀을 알려주는 탐정.
그리고 그녀의 입을 통해 듣게되는 사건의 전말.
읽는 내내 머리속을 소용돌이 치게 했던 그 기묘하고 오싹한 느낌의 실체에 다가서면서, 스토커들의 비정상적인 사고방식과 그들에 의해 벌어지는 범죄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가정. 비정상적으로 아내에게 집착했던 남편. 그로 인해 숨통이 조여오는 느낌으로 망가져가던 아내와 아들. 그리고, 그 아들 때문에 이중으로 상처받는 딸. 남편에게서 시작된 집착은 오해와 의심을 낳고 숨막히던 아내는 비밀을 만들고, 아들은 미움을 키웠다. 그리고 그 혼돈 속에서 생존욕구를 키워낸 딸.
사건의 전말이 모두 밝혀지고 기묘한 두 사람은 그 불안한 삶으로 함께 손잡고 간다. 그들에겐 해피엔딩같지만, 독자에겐 여전히 오싹함을 남기는 결말.
그동안 읽은 일본소설들이 특유의 평범함, 그 속에서 통통튀는 일상이 그려진 내용들 -그것이 추리소설이었다해도-이었던 것에 반해, 이 소설은 링, 주온 같이 일본공포 영화 특유의 음험함을 고스란히 지닌 내용이라 오랜만에 진짜 공포를 경험했다. 그치만... 이젠 이런 내용에 흥미를 가지기엔 나는 너무 나이가 들었나보다... 솔직히 꿈에 나올까봐 무섭다.. ㅠㅠㅠ
출판사에서 책만 받아 읽고 쓰는 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