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꾼들의 모국어
권여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술집이 즐비한 거리에서 술꾼들 떠드는 소리가 왁자하게 들리는 곳그곳에서 나는 술에 취해 휘청걸음을 걷다가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이내 집으로 향한다.

 

한 번 마셨다 하면 술을 다음하여 집으로 돌아가는 10분 거리마저 1시간으로 만들고야 마는 나는그러나 술을 애음하지는 않는다사실 술이라 하면 좋고 싫음이 분명하게 갈리는데술을 마시자는 연락을 받으면 온몸이 곤두서고오래도록 몽그작대며 미뤄온 일을 당장 해야겠다는 의무감마저 샘솟을 정도로 그것은 차선조차 되지 못하는 '싫음'에 가깝다그러나 마시지 않을 도리가 없다가까운 범주에 들어찬 술꾼들이 나를 까먹지 않고 불러내는데 그 관심이 갸륵해서 하던 일을 박차고 뛰쳐나간다.

 

술이 썩 달갑지 않다면 안주라도 내가 정한다는 말도 도통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안주는 다 거기서 거기'라는 지론으로 무장한 나도타칭 술꾼인 그들도 안주에는 전혀 해박하지 않았다안주를 정하는 시간조차 아까워 원래 가던 가게에 들어간다그런 술자리가 그나마 익숙하고 편했다.

 

익숙한 반복지루하기 짝이 없는 술자리에서 즐길정말이지 입맛을 돋우는 안주가 이렇게나 많다니책을 읽고 난 소감은 단순하고 명확했다감칠맛 나게 이야기를 참 잘한다냉면집에 가면 냉면은 못 먹고 취급하는 음식 메뉴에 칼국수가 있으면 기어이 칼국수를 시킬 만큼 냉면에는 취약한데 아주 작정하고 물냉면을 시켰다안주에 절로 어울리는 오묘한 맛이라더니 주문대로 한 잔을 곁들이니 확실히 기대 이상이다.

 

주홍빛 살얼음이 녹아가는’ 국물 위에 떠 있는 차지고 부드러운’ 회를 후루룩 넘기는 대목에서는 아주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물회에 술 한 잔그 얼마나 매혹적인 조합이란 말인가.

 

해말간 웃음을 짓게 하는 능청스러운 글솜씨와 술과 안주에 일체감을 보이는 그녀는이윽고 집밥에 대해서는 직언마저 서슴지 않는다집밥이 무조건 맛있다고 하는 사람나는 부엌칼을 쥐지도 않은 채 그저 남이 해주는 음식을 먹으며 집밥에 대해 환상만이 가득했음을 깨닫는다.

 

독기를 품고 금주를 결심한 사람에게는 금서와 다름없는 책술꾼들은 환장할 이야기의 향연.


@출판사에서 보내주신 책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팩트풀니스 (50만 부 뉴에디션) -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
한스 로슬링.올라 로슬링.안나 로슬링 뢴룬드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타성적이고 무비판적인 확증편향에 저항하는 일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깜짝 놀랄 만큼의 논리 정연함과 타당성이 입증되지 않는 한, 나는 거대하고 단단한 방패를 세워두고 자기 논리라는 보이지 않는 창을 든 채 상대를 무차별적으로 찔러댔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은 나의 아군이 되어 주었고, 선입견은 그런 나를 훌륭한 갑옷으로 무장시켰다.

 

그런데 나의 아군은 어디에서 나타난 것이며, 누가 나에게 그런 훌륭한 갑옷을 선물한 걸까?

저자는 과도하게 극적인 세계관이 나를 무거운 갑옷으로 무장하게 하고, 무비판적으로 적진을 향하게 했음을 시사한다. 그것은 비단 나뿐만 아니라, 사람들 모두를 심각한 무지에 이르게 했음이다.

 

저자에 의하면

극적인 세계관은 우리를

세상을 실제보다 나빠지고 있는, 비정상에 가까운 곳으로 간주하게 했고,

이분법적 사고를 추구한 나머지 양극단에 놓인 이상값만을 바라보게 했으며,

현상이 눈에 보이는 너머로 어떻게 이어질지 속단하게 했다.

또한 공포를 유발하여 타당한 증거를 제시해도 믿지 않게 했고,

특정 생각에 지나치게 동조하게 하여 나머지 생각을 들여다보지 않게 했으며,

의도적으로 다급함을 부추기며 잘못된 선택을 내리게 했다.

 

확실히 그것은 우리의 본능으로 자리하여

되레 자신의 본모습을 보지 못하게 했음이다.

 

이 책 한 권이

나의 편향에 근거한 세계관을 사실에 근거한 것으로 뒤바꾸어 놓았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저자가 제시한 데이터가 과연 주관이 개입되지 않은 날 것의 데이터(팩트가 팩트로서 작동하는지)인지, 고통받는 소수의 사례를 통계와 명시적 증거라는 이름 앞에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고 있는 건 아닌지, 언론에 중립을 기대하지 않으면 어디에 중립을 기대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구름관찰자를 위한 그림책
개빈 프레터피니 지음, 윌리엄 그릴 그림, 김성훈 옮김 / 김영사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로 하나밖에 없는 구름이고, 하나밖에 없는 나의 하루이니 아무쪼록 둘 다에서 특별한 무언가를 찾아 주의를 기울이기. 내가 본 구름은 자라서 무엇인가 되었을 것이고, 이미 기본적인 체계는 다 갖추어 놓고 내 앞에 엄연한 실체로서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그게 무엇이듯 매일 마주하는 구름은 비슷하지만 완전히 똑같지는 않았다. 하루가 비슷한 양상을 보이지만 어제와 오늘이 사뭇 다르듯. 그러므로 우연히 고개를 들어 마주한 그 구름에서, 무이하게 존재하는 오늘이라는 하루에서 나는 사라지지 않을 무언가를 찾아 직접 채집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다.


*출판사 제공 도서를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이즈, 세상은 크기로 만들어졌다 - 세상 모든 것의 성장과 한계, 변화에 대한 새로운 통찰
바츨라프 스밀 지음, 이한음 옮김 / 김영사 / 202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 몸의 신체적 한계가 사물의 크기를 명백하게 제한한다.”


인체 공학에 바탕을 둔, 인간이 사용하거나 다루는 대부분의 도구와 기계 장비의 디자인은 인간의 의식 속에 오래도록 내재된 ‘예상되는 크기’에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인간 척도에서 비롯한 표준 규격이 현실적인 비례로 자리하며 크기의 자유를 인간 맞춤형으로 제한하는 동시에, 규모가 양방향(확대와 축소)으로 범위를 확대해가는 움직임은 흥미로운 모순을 노정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러한 모순이야말로 인간이 조화로움을 느끼는 적절한 비례와 규모를 찾아가는 여정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예상된 표준을 지각하는 인간의 능력에는 오류 발생의 개연성이 작지 않았다. 남성이 자신의 과체중 상태를, 여성이 과소 체중인 상태를 정상으로 여기는 일, 그리고 부모가 자식의 과체중 상태를 표준으로 간주하는 모습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두 개의 중심원 크기가 주변 원에 따라 달라지는(실제로는 두 중심원의 크기가 같음에도) 현상을 나타내는 델뵈프 착시는 인간이 주변 환경에 의해 크기 지각에 대한 잘못을 저지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크기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의 공간은 그 성장에 한계를 내재하고 있기에 획득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역학적 요인과 수력학적 요인 탓에 나무 높이가 일정 수준 이상에 이르지 못하고(진화적 한계), 경제적 요인, 효율성의 문제 등으로 공학적 성취의 한계(고층 건물의 높이, 배의 무게나 풍력 터빈 회전자의 크기 등)에 부딪히는 등 여러 요인에 의해 크기의 성장이 규제되며 크기에 대한 감각을 만들어냈다.


인간의 판단에서 비롯한 일정한 크기의 심층을 다룬 책. 주변에 만연하는 대부분의 것이 정규분포와 그 결과를 따른다고 했을 때, 이 책은 분포 스펙트럼 오른쪽의 이상값에 위치했다. 비대칭적으로 분포하는 예외성을 띤 크기 속에 어떤 영감이 번뜩였다. 사이즈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일을 생각했다.


*출판사 제공 도서를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돌파의 시간 - mRNA로 세상을 바꾼 커털린 커리코의 삶과 과학
커털린 커리코 지음, 조은영 옮김 / 까치 / 202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커털린 커리코는 코로나 백신 개발의 기틀을 마련한 mRNA 분야 연구의 선구자이자, 2023년 생리의학상 부문에서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이다. 이 책은 커리코 자신의 삶을 어린 날부터 따라가며, 배움을 향한 열정과 강인한 의지, 그리고 삶을 대하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방식 등으로 무장한 그녀가 인생의 어려운 고난과의 싸움에서 더욱 발전적으로 강화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구구절절이 일도 많은 그녀의 인생사가 ‘한 번만 더’를 외치며 굴곡진 지형을 수없이 뛰어넘어 마침내 인류에 커다란 공헌을 한 역사로 점철되기까지 그녀는 읽고, 배우고, 경험하는 그 모든 동작을 그치지 않았다. 그녀는 마주하는 모든 것(동료 과학자들의 연구와 논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딸의 훈련 모습, 푸주한이던 아버지가 말한 수색자의 삶, 셀리에가 쓴 스트레스를 대하는 자세 등)을 감각했고, 이를 자신만의 언어로 가꾸어냈다. 마치 그녀의 가난한 어린 시절, 쓸모를 찾지 못해 버리는 물건이 아예 없었듯 그녀는 맞대하는 것에서 배움을 이끌어낸 것이다. 자신이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고 ‘하나씩, 한 번만 더’를 삶으로써 몸소 증명해온 그녀가, 하지 않는 편이 더 좋겠다는 핑계로 가능성의 씨앗을 스스로 망가뜨려온 나에게 새로운 씨앗을 건네었다. 그리고 이를 소중히 하고, 반드시 꽃 피우기를 바라는 마음까지 전해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