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 디톡스 - 쾌락과 고통에 지배당한 뇌를 되돌려라
애나 렘키 지음, 고빛샘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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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을 24시간 손에서 놓지 않는 대가로 젊음을 저당 잡힌 나날. 다양한 삶의 어플리케이션을 설치해 이런저런 가능성을 탐색할 청춘의 시기는, 싸구려 도파민의 진창에 빠져 철벅 주저앉고 말았다. 그 진창은 주변 곳곳에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고, 도망치지 않는 이상 빠져나오기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렇다, 달아나지 않으면 또 다른 진창에 빠져 허우적댈 뿐이다. 땅이 진 곳을 아무리 메우려 해도 비라도 퍼부으면 다시금 진창이 되었다.

 

우리는 고도의 도파민 보상을 받고 평범한 쾌락에도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수렁에 머물며 쉽게 아프고, 지치고, 불안하고, 화를 내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 그러한 일상은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더 큰 쾌락을 요구한다. 쾌락의 기준점은 처음의 그것과는 완전히 달라진 지점에서 시작하고, 고통 역시 점점 몸집을 키워가고 있었다. 쾌락 뒤에 찾아오는 끔찍한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외려 자기 구속과 중독 행동을 회피하는 불편한 고통과 손을 맞잡는 훈련을, 중독 패턴의 전후를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이에 대응하는 행동을 계획해보면 어떨까? “도파민 디톡스는 훌륭한 가이드라인이 되어 중독과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을 해법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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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덕의 세포 리셋 - 만성피로, 만성질환, 가속노화에서 평생 해방되는 법
김덕수(닥터덕) 지음 / 김영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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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을 유발하는 근본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하는 데 초점을 둔 기능의학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생경한 느낌이 있다. 제약 회사의 후원으로 설립된 의과 대학과 그곳에서 배우는 대부분의 의학이 약물 치료를 지양할 수 없다는 논점에는 자못 뜨악하기까지 하다. 그만큼 현대 사회는 약물 의존성이 팽배했고, 당연한 업과로써 의사와 환자 모두 약물 처방을 당연하게 여겼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약물의 목적지는 완치가 아니었다. 증상을 빠르게 호전하는 그것은, 그 속도감만큼 의탁하고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되었다. 약물로 대부분의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의 역설은, 잘못된 생활 습관이 몸에 스며 쉬이 지워지지 않는 얼룩을 만들어낸다는 것. 약물에 앞서 잘못된 생활 습관을 바로잡고, 수많은 오염원에서 자신을 지키는 일의 필요성을 다시금 절감하게 한 책을 만났다. 내 몸이 저마다의 크기를 지닌 고통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와 각종 성인병의 이모저모에 시선을 옮겨본 시간. 기능의학에 가닿은 지금의 시선을 쉽사리 거두지는 못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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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공익 - 왜 어떤 ‘사익 추구’는 ‘공익’이라 불리나
류하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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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이란 사회 전체의 이익을 말한다. 저자는, 그러나 사회에서 통용되는 공익이라는 개념에 의문을 품고 천착을 거듭한 끝에 한 생각에 도달한다. 공익이란 온당할 수 없다는 것. 류하경 변호사에겐 일찌거니 “공익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있었다. 사회적 약자들의 사익 가운데 공동체 다수에게 위험하지 않은, 그 추구 행위가 허용 범위 안에 들어설 때 비로소 공익이 될 수 있다고. 이에 공익은 다수를 만족시키고, 그들에게 해를 끼쳐서는 성립할 수 없는 불온한 것이 되었다.

어떤 일을 하든 공정과 정의를 강조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학습되지 않고, 학습하지 않는 작금의 사태에 그것은 허울만 근사한 텅텅 빈 겉껍질일 뿐이다. 악의 평범성이 사회 전체에 스미고, 권력자들은 법의 적용에서 성역 안에 머무른다. 외주와 하청, 불법 파견은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 여전히 이루어지며, 노동자들은 이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활개치는 부조리에 갇힌다. 불의를 향한 저항은 무의미한 것으로, 되레 같은 노동자에게 피해를 주는 것으로강하게 인식되어 눈살을 찌푸리는 요즘, 저자는 우리에게 사회 전체를 위하는 이익이란 무엇인지를 따끔하게 묻는다.

@출판사에서 보내주신 책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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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가족에게 휘둘린다
비에나 패러온 지음, 문희경 옮김 / 김영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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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집은 화목하고 안전한 공간이 아니었다. 늦은 밤이면 얼큰하게 취한 아버지가 집 앞에서 고성을 내지르진 않을까 속앓이하고, 느닷없는 고함소리가 귀를 스칠 때는, 비록 그가 낸 소리가 아님에도 절로 반응했고, 가슴이 늘 선뜩선뜩했다. 술의 숙주가 된 그가 가족을 향해 퍼붓는 폭언에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일도 다반사였다. 문득 새벽에도 전화를 걸어 데리러 오라며 내지르는 욕설은 가족 모두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 빈도가 나이를 먹으면서 서서히 줄기는 했기만 어디 제 버릇 개 줄까. 여전히 나는, 밤늦도록 그가 돌아오지 않을 때면 오늘은 술 먹고 육갑하지는 않을까 어림하고, 걱정한다.

 

늘 경계심을 늦추지 말아야 하는 환경에서, 그러나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했다. 오히려 좋은 성적을 받아 어머니를 기쁘게 하겠다는 강한 의무감마저 느꼈다. ‘정서적 지지자가 되어 주지 못하는 남편을 둔 어머니를 걱정했고, 단단하지 못한 환경에서 행여나 동생이 나쁜 길로 빠지지 않을까 늘 노심초사했다. 정작 나의 안중에는 내가 없었다. 아버지 한 명으로, 안 그래도 모두가 골머리를 앓는 환경에서 나의 최선은 무의식에 꽁꽁 감추어진 거대한 상처를 애써 무시하고 회피하는 일이었다.

 

댐에 가두어 놓은 물이 암암리에 불어나 마침내 댐에 금이 갈 정도가 되었을 때, 나는 부여잡은 관계의 끈이 끊어지는 듯한 느낌을 수시로 받았다. 타인이 나에 대해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유독 예민하게 반응했고, 나를 무시하는 듯한 태도에는 감정을 극단적으로 표출하곤 했다. 내가 이곳에 없다면 모두가 평안하지 않을까, 또다시 그들을 실망하게 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물씬 나를 찌르고 사라지지 않았다. 점점 나는 혼자가 되어 갔다. 혼자 있을 때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정말 그렇게 될 거라 믿고.

 

나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문제를 들여다보는 일 자체를 거부했다. 그 문제에 대해 누군가와 의논하지 못했다. 근원적 상처라고 부르는 이야기를 타인에게 전하더라도 이해받지 못할까봐 두려웠다. 창피했다. 말해도 달라지는 건 없으리라 생각했다. 무서웠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얼 했느냐는 소리가 듣기 싫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근원적 상처를 인식하고 이해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음을, 그 과정이 나를 몹시도 불편하게 한다는 것을, 그럼에도 우선 나의 이야기를 나에게라도 들려주어야 함을 알게 되었다. 유독 불만이 쌓이는 부분이라면 그 이면에는 정서적 갈망이 도사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무엇을 그토록 갈급했던가. 내가 원하는 것을 당신들이 물어봐주고, 잘 들어주길 바랐다. 나를 중요한 사람으로 대해주길 원했다. 집이 안전하고 편안한 환경이었으면, 그래서 내가 누군가로 인해 두려움에 떨지 않고 다른 중요한 것을 마주할 수 있었으면 했다.

 

어떤 책은 내 안의 부서지고, 상처받은 마음을 누구보다도 따뜻이 위로한다. 금방 휘발되지 않을 치유의 길을 안내하고, 심저로부터 나를 갉아먹던 상처와 마주할 용기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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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 - 기자·PD·아나운서가 되기 위한 글쓰기의 모든 것
김창석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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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쓸수록 나는 한 발자국씩 나의 생각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같이 느꼈다. 마음속에 묵은 그것을 글로써 섬세하게 돌보는 일이란 조용히 혼자 충족되는 느낌마저 건넸다. 잘 다루지 못하는 글을 쓰고, 내 글을 향한 타인의 완곡한 질책은 외면한 채 나는 무작정 펜을 들고 백지 위에 가져다 대었다. 읽는 사람이 없는 글은 금방 균형을 잃는다는 사실을 나는 어째서 깨닫지 못했을까. 어느 틈엔가 섬세함은 빠져나가고,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사여구가 가득한 문장만이 남았다. 어설프고 모호한 내 글은 나에게도 어려웠다.

좋은 글이란 무엇일까? 글맛을 살리는 표현력, 읽는 속도를 강제로 늦추지 않는 문장의 구성, 그리고 글감. 세 가지 모두가 잘 어우러질 때 좋은 글이 될 수 있음을, 내가 얼마나 표현력의 바다에서 표류했는지를 알려준 책을 만났다. 이 책은 좁은 범주에서 저널리스트를 위한다. 하지만 지향하는 글쓰기의 형태가 무엇이든 문장 하나하나에 나름의 존재 이유가 없으면 곤란하다. 저널리즘 글쓰기는 그 이유를 부여하기 위한 세밀함을 훈련하는 데 탁월했다. 논거의 배열에 자기 생각을 철저하게 요구하고, 본질과 부분 간의 관계를 명료하게 정리하도록 했다.

하지만 좋은 문장이란 이러하다, 고 피력하는 이 책에서도 불필요한 어구를 사용한 문장들이 간혹 쓰이곤 했다. 일례로, 27페이지 하단에는 “미국은 소수 기득권의 군산금학(軍-産-金-學) 복합체가 지배하는 나라로 불린다. 오늘날 그들은 약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복지 시스템 등으로 인한 내부적 위기와 자신들의 세계 지배 전략에 어긋나는 국가에 무자비하게 군사 대응하는 제국주의 패권 형태로 인한 외부적 위기를 겪는 중이다.”라는 문장이 있다. 군산금학에서 産은 무엇을 지칭하는지 바로 떠오르지 않는다. 준말을 지향하는 저널리즘 글쓰기라도 경제성보다 우선할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제국주의 패권 형태를 수식하는 말에 군더더기가 많고, ~로 인한, ~에 대한, ~적 등을 무분별하게 사용한 점도 다수 보였다. 저자는 말했다. “불필요한 어구를 사용하면 굳이 쓰지 않아도 될 단어마저 반복하게 된다.”라고.

#출판사에서 보내주신 책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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