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라지는 마음 현대문학 핀 시리즈 에세이 3
김멜라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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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때 그 말에 기대어 지금껏 소설을 쓰는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마음을 함께 좋다고 말해줬던 사람들.”

 

국밥을 먹고 배불뚝이가 되어 나오는 길이었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라는 말을 주인에게 건네는 연인의 모습이 눈에 밟혔다. 누군가는 고대했을 그 말을 무색하게도 나는 주인에게 안녕히 계세요라는 한마디만 거들었을 뿐이다. 맛있다는 말을 전하는 게 그리도 어렵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상대는 온종일 좋은 기분에 휩싸일 게 자명했다.

 

읽어야 할 텍스트가 환풍기 속 케케묵은 먼지처럼 한가득 쌓여있을 때, 글을 읽는 행위를 이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어떤 글은 마치 자동 레이더가 그곳에만 빨간 불빛을 비추듯 시선을 사로잡았다. ‘글이 너무 좋아서 오래 머물다가요.’ 그 한 마디를 알록달록한 박스에 포장해 건네고 싶어 글을 여러 번 썼다 지웠다. 그러다 이내 포기하고 저장 버튼만 꾹 누르고 다음 글을 읽어내려갈 때가 많았다.

 

아무리 말하기의 기술을 익혀도 어떤 마음의 이유는 말하고 설명하는 게 버겁고 막막하다. 이유를 설명하려고 하면 마음의 좁고 깊은 부분을 펼쳐야 해서 힘든 고백처럼 느껴진다.”

 

글로 펼치면 마음과는 다르게 오히려 가벼워보인다는 말을 언젠가 들은 기억이 있다. 마음의 좁고 깊은 부분을 펼쳐 글로써 세상 밖으로 내보일 때 내가 오래도록 간직한 그 마음이 온전히 표현되지 못할까 두려워 꾹꾹 눌러삼킬 때가 많았다. 물론 그 이유가 아니더라도 표현하지 못할 때가 훨씬 많긴 했지만.

 

내 마음이 지옥이면 나와 연결된 온점의 마음도 그럴 테니까. 온점과 연결된 다른 사람의 삶도 같이 절망에 빠질 테니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길들인 것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책 속의 말을 나는 이제야 알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이에게 전해질 내 마음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비단 내 마음이 나만의 것이 아닌 듯하다. 마음 자체에도 본성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건 알게 모르게 나누어진다는 것. 그래서 마음을 관리하고 길들이는 게 중요한 걸지도 모르겠다. 나눌 거라면 좋은 마음을 나누고 싶으니까.

 

소설가가 세상에 펼쳐낸 내밀한 이야기. 자꾸만 버스의 하차벨을 누르고 싶어지는 이야기의 향연에 책장을 덮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모른다.

 

이번에는 미루지 않고 꼭 전하고 싶었던 그 말. ‘글이 좋아서 오래 머물다 가요. 정말 잘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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