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학의 가장자리에서 - 세계문학이란 무엇인가 세계문학을 둘러싼 대논쟁 우리 시대의 주변 횡단 총서 6
김경연.김용규 엮음 / 현암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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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가 오리엔탈리즘을 말하면서 언급한 '타자'는 반드시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잘못된 사고를 하게 만든 동인이나 대상물만 가리키지 않는다. 어쩌면 더 중요하게, 타자란 그것이 있음으로써 그 자리에 서면서 이해와 공감의 계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존재를 가리킬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존재로서의 타자보다도 존재하는 방식으로서의 타자를 주목한다는 점에서 '타자화'라는 용어를 재개념화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동일한 범주에서 벗어나서 더욱 자유롭고 공정한 방식으로 사물을 바라볼 방법과 전략을 구성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204쪽)

 

보편적으로 인간적인 것은 보편이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구체적 실천-자기 제어와 자기 판단-에서 오고 이 제어와 판단을 위한 성찰력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타인의 타자성이 아니라 자기 속의 타자성과 친숙해지고 이 타자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개인은 상호주관적으로 확대되어 나간다. 개인의 자기동일성이란 정체성이다. 타자와의 만남이란 그 자체로 자기동일성의 확대이자 그 교정과 갱신이고, 이렇게 갱신된 자기 정체성에는 타자성이 이미 자리한다. 주체는 타자와의 만남 속에서 인간적인 것의 보편적 영역으로 나아간다. 모든 나의 진술의 '나'자리에, 시간이 지나면, '너'와 '우리' 그리고 '그들'이 들어서지 않는가? 나의 진술을 너와 우리와 그들의 진술로 바꾸어 말해도 타당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곧 퇴장 당한다. 예술은 주체의 이 보편화 과정을 매개한다. (259쪽)

 

전공이란 결국 전체를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전제이지 그 자체로 수호될 만한 가치일 수는 없으며, 언어의 문제도 번역을 통해 해결될 수 없는 무언가에 본질적인 것이 걸려 있다고 생각한다면(다시 말해, 꼭 원문으로 읽어야 비로소 제대로 논할 수 있는 것이라면), 차라리 외국에 살면서 그쪽 연구자들과 교류하고 또 그쪽 학술지에 글을 싣는 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제대로 된 연구에 가장 가까울 것입니다. (280쪽)

 

근대문학 연구에서 비교 연구 또한 오리엔탈리즘에 가깝다. 영향사와 전파론에 의존하는 비교 연구는 연구자를 보는 쪽의 위치로 특권화하고 스스로 시선의 주체가 됨으로써 근대문학을 타자화한다. 조선의 근대문학과 서구문학을 비교하고 있는 대부분의 근대문학자들은 스스로를 서구적 주체화 동일화하면서 우월한 위치에 서는 사디즘적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그 근본에 있어 서구에 대한 노예적 위상을 극복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중적이다. (402쪽)

 

언젠가 독문학을 전공한 지인과 '번역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는 외국문학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나는 당연히 그 나라의 문화와 사고가 반영된 타국의 언어를 통하지 않은, 번역이라는 불순물이 포함된 언어로 그 나라의 문학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고 상대방은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한국문학을 창작해내고 있는 많은 작가들이 외국의 어떤 작가들의 책을 주로 읽고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서 외국문학을 '번역'을 통해 읽어낸다고 해도, 심지어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 나라의 문학을 감상할 수 있는 나의 독자로서의

능력과 번역자의 노고가 전혀 쓸모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모든 학문적 관심은 '비교'에서 비롯된다. 얼마나 다르고, 얼마나 같은지를 비교하고 항목에 따라 나누면서 학문 체계가 성립이 된다.

국문학에서 나의 문학에 대한 관심은 시작되었지만, 독문학이나 영문학, 불문학 등 다른 나라의 문학도 읽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렇다면 그 탄생지가 매우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문학'이라는 공통범주로 묶을 수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이며 그 가운데 한국문학의 위치나 입지는 어떤 것일까, 하는 것이 궁금해졌다. 해마다 10월이 다가오면 노벨문학상을 누가 타는가를 점치고, 아시아권에서 문학상을 타면 '한국은 또 노벨문학상 수상자에서 당분간 제외되겠구나'라며 통탄해하는 목소리의 반복을 보면 정말 한국문학은 세계문학이라는 공간으로 나아가면 문학적 가치가 떨어지는가, 라는 의문도 많이 생긴다.

 

 

 

<세계문학의 가장자리에서>는 문학을 둘러싼 다양한 담론들을 담고 있다. 그 스펙트럼도 넓고 참여한 필자들의 전공도 다양하다보니 그 광범위한 논의에 압도되어 버리는 부분도 있었다. 500페이지가 넘는 이 쉽지 않은 학술적 논의들을 따라가면서 읽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문학을 둘러싼 다양한 고민들을 되짚어보고, 나 또한 '그렇다면 제3세계문학으로서, 동아시아에서도 이중으로 주변화된 문학으로서 한국문학이 나아가야할 길은 무엇일가?'를 생각해볼 수 있었다.

 

 

 

프레드릭 제임슨, 파스칼 카자노바, 모레티와 같은 영미의 비교문학자들은 철저하게 서구학자의 위치에서 비서구 국가의 문학들을 재조명하고 거대한 '세계문학의 장'이라는 공간에서 이들을 위치시키려고 애쓴다. 대놓고 서구문학의 월함을 강조하고 있지는 않지만, 결국은 서구 학자들의 학문적 편의를 위해 비서구 문학을 제3세계 문학으로 지명하고 자의적으로 위치를 정해놓는 느낌이 다분하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오리엔탈리즘을 주장한 지가 30년이 넘게 흘렀는데도 여전히 대부분의 이론은 식민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특히나 전세계의 시간의 표준을 정하는 '그리니치 자오선'의 개념을 문학의 장에 끌어들여와서 미학적으로 근대적인 형식성을 시간적으로 확보한 공간을 문학에서의 표준적 지표로 정해놓고 중심부 밖의 작가들은 이 안으로 들어와 '인정'받기 위해 노력한다는 식의 설명을 접하면 불쾌함까지도 느껴진다.(우리도 오랜 기간동안 글을 써온 전통이 있는데 왜 너네한테 인정을 받아야 해? 하는 식의)

 

 

 

이에 대해서 국내의 학자들은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고 대안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피상적인 논의의 수준에 머무른다는 느낌도 있다. 결국은 또다른 '보편성'으로의 수렴으로 끝나는 것 같은데, 그 보편이 무엇인지도 뚜렷하지 않다.  그러나 세계문학에 논의에 담긴 오리엔탈리즘의 무한 복제라든지, 이를 전복시키려는 주변부들의 노력 조차도 사실은 또다른 열등한 타자를 설정하거나 자기중심주의에 빠지는 자기복제적 오리엔탈리즘이며, 한국이 노벨상에 집착하는 것도 지위획득을 위한 '문화적 컴플렉스'에 근거한 투쟁의 다른 얼굴이라는 지적들은 꽤 뼈아프게 다가온다.

 

사실 가장 흥미로웠던 장은, 너무 솔직하고 직설적이어서 때로는 걱정이 되기도 하는 조영일 평론가의 글이었다. 한국 문단계의 속살을 보아버린 느낌이랄까. 90년대 초반에 일어난 하루키 열풍에 대해서는 짐짓 점잔을 빼며 인스턴트에 가까운 장르문학이라며 무시하던

한국문단계가, 세월이 흐르면서 하루키가 영미문학권에서 인정받고 상을 수상하고 심지어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기까지 이르자, 생색이라도 내듯이 다시 하루키를 인정해주는 척하는 한 편이 있고, 문학동네는 시대적 흐름을 보는 눈이 있었는지 하루키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윤대녕 작가를 내세우고, 하루키에 대한 특집을 펴내면서 지금은 거의 주류로 자리잡을 정도로 성장했다. (심지어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작도 문학동네에서 나왔으니 정말 시대적 흐름을 읽는 혜안이라도 그들 내에 있는걸까?)

 

 

 

어쨌거나 한국문학계는 장르 문학을 폄하하고 번역을 창작의 아류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몇몇 필자들은 이 부분을 문제 삼는다. 하루키 현상을 보면, 영미문학을 꾸준히 번역하고 장르문학과 본격문학의 경계를 허물며 창작의 저력을 보여주는 작가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된다.

 

 

마지막 장에는 동아시아라는 지형적 공간에서 한국문학이 위치한 특수성, 그리고 제3세계의 여성(서발턴)의 목소리가 문학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구체적인 작품들을 통해 살피고 있다. 어쩌면 세계문학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것은,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더 낮은 곳에 있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윤리적 인식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결론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의 제목에는 '가장자리'가 들어있다. 중심부가 아니라 가장자리에 한국문학이 속해있지만, 그 중심부로 들어가려는 노력보다는,계속해서 가장자리를 돌면서 또다른 가장자리에 속한 타자들과 만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한국문학계를 풍부하게 일궈나가야 하는 것이 이 책을 쓴 필자들의 문제의식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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