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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의 신곡 살인
아르노 들랄랑드 지음, 권수연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책을 읽고 서평을 남긴다는 행위는 예비독자에게 좋은 정보를 제공한다는 것에 의미가 있지만 머릿속의 감상을 글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느낌과 생각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더 큰 매력이 있다. 허나 책에서 얻은 독서의 즐거움과 쓰는 즐거움은 별개로 종종 서평의 어려움이 두려움이 되어 자신을 옥죄고 있음을 새삼 확인하기도 한다. 그럴 땐 단순한 한마디가 효과적이다.
“아! 이 책 재미있습니다.”
이로써, <단테의 신곡 살인>(황매. 2007)의 서평은 끝이 난다. 그것이 예비독자에 대한 정보 제공의 의미에 국한된다면 말이다. 더구나 이 소설은 아시다시피 추리소설, 서투른 글 솜씨로 독서의 재미를 망쳐버리는 스포일러가 되기 십상이다. 개인적인 추억, 아니 악몽에 가까운 기억을 떠올려보자. ‘식스 센스’를 보기 위해 찾은 극장, 들뜬 기대를 안고 상영관 밖에서 즐거운 기다림 뒤 마침내 입장을 하던 중이었다. 이때 사단이 나는데, 영화를 보고 나오던 커플남이 던진 결말에 대한 한 마디 말이 영화 전체를 망쳐버렸다. 대충 예상이 되는 상황이다.
구구절절 이 소설과는 하등 상관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는데, 말인 즉, <단테의 신곡 살인>이라는 소설의 재미를 위해 말을 아끼겠다는 심산이다. 그저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이면 사전지식으로 충분하기에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 책을 이야기하자면 소설이 품고 있는 재미를 곱씹게 하는 장점 몇 가지를 말하겠다.
먼저, 제목에서 예상할 수 있듯, 이 책은 단테의 <신곡> 지옥편의 9가지 지옥의 모습으로 살인을 완성시켜나간다. 이 살인 사건을 파헤치는 주인공과 그를 따라가게 되는 우리, 독자는 이에 의문을 품을 수 있다. 왜 ‘그’는 <신곡>에서의 지옥을 재현한 살인을 저지르는 것인가? 살인자, ‘그’는 신을 부정하는 자, 죄악에 가까운 욕망을 불사르는 추악한 인간을 징벌하고 그 의미를 되새기게 하려는 이상주의자인가? 아니면 그 역시 자신의 의지를 명문화하여 종래엔 색다른 명예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자하는 욕망의 죄를 짓는 인간인가? 이 의문이 소설의 주요한 흐름이다.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살인자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맞게 되는 당연한 의문, 과연 이 살인의 의미는 무엇인가!
두 번째로, 단테의 <신곡>이 그러하듯, 이 소설 역시 인간의 속성을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18세기의 베네치아. 이곳은 살인사건이 벌어지는 시기의 축제로 대변되는, 화려하고 자유로워 언뜻 보기엔 활기로 가득 찬 아름다운 곳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장미에 가시가 있고, 그 몽우리가 오래도록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것은 그만큼의 농약의 힘을 빌린 것처럼 자유와 열정으로 활기를 띠는 이 도시의 이면에는 더러운 흙탕물이 흐르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욕망이 만든 것, 도시를 이끌어가는 주도세력은 자신의 권력을 손에 쥐고 혹여 그것을 잃을까 전전긍긍하고 그 밑에선 그 권력을 동경하는 불나방들이 그들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는 주인공 피에트로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가 이 살인사건을 쫓는 것은 위태롭지만 자극적인 모험 때문이고 이는 그 조건, 즉 자유를 보장해주는 권력의 비호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욕망이라는 죄를 짓고 사는 인간과 그 죄마저 동경의 대상이 되는 도시, 그들을 처단하는 모습으로 살인을 벌이는 자, 그리고 그를 쫓는 자, 이 모두가 깊이를 알 수 없는 욕망의 우물에 빠져있다.
세 번째로, 이 추리소설이 매력은 주인공, 피에트로에게 상당히 의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순탄치 않았던 성장기를 거쳐 권력을 이용해 입신양명했지만 한순간, 위험한 사랑에 눈이 멀어 모든 것을 버린 인간. 하지만 그로 인해 자유를 잃고 나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자유를 되찾기 위해 온갖 감언이설로 다시 권력의 종을 자처하는 자. 풍부한 경험을 통해 남을 속이고 속이는 자를 파악하는데 능하며, 매번 다른 모습을 갖는 연극배우이며, 아름다운 선율을 아닌 바이올린 연주자. 더불어 뛰어난 칼솜씨로 강도 넷쯤은 운동 삼아 처리하는 대단한 무력의 소유자. 이것이 흑란이라 불리는 주인공, 피에트로이다.
이쯤 되고 보니, 그의 대단한 재능에 글은 설득력을 잃고 표류할 법하다. 하지만 우연한 실수로 사건을 해결하는 가제트 형사는 황당할 뿐이고, 마음씨 좋은 콜롬보 형사도 식상하게 느끼며, 너무도 인간적이기에 범죄 앞에서 자아 분열을 거듭하는 21세기형 스파이더맨이 담담하다면, 작가, 아르노 들랄랑드가 창조한 조금은 건방져 보일 정도로 출중한 실력을 갖추고 비열한 임기응변조차 재능으로 삼는 그, 피에르토가 되어 소설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소설이 그 안의 세계에서만은 현실에 진배없는 사실적인 세계를 창조함으로 재미를 더한다는 기준에 이 책을 놓아보자. 단테의 <신곡>은 그 역시 창작물이기에 이을 모티브로한 <단테의 신곡 살인>은 요즘 유행하고 있는 팩션소설에 속하지는 않는다. 때문에 여타 팩션소설이 역사적 사건이나 실화를 소재로 손쉽게 개연성과 사실성의 짜임새를 취득하는 장점을 이 소설이 누릴 수 없음이 당연하다. 하지만 그 어떤 역사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유명한 것이 단테의 <신곡>이다. 때문에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자는 소설 속에서 사실성을 찾고, 다소 황당한 인물설정과 사건의 진행에도 마치 리얼리티 수사 물을 보는 듯한 생생한 즐거움을 얻게 된다.
이제 단테의 <신곡>을 바탕으로 작가가 창조한 세상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모험, 그리고 약간의 사랑이야기가 궁금해졌다면, 준비는 끝이 났다. 피에트로가 될 준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