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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 경제학
도모노 노리오 지음, 이명희 옮김 / 지형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주류 경제학은 합리적 인간을 가정한다. 그는 세상살이로 따지면 담배가 건강을 해치고 향후 의료비의 증가와 심한 경우 죽음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접한 순간 담배를 끊는다. 그뿐 아니다. 인터넷 항해 도중 수많은 광고 팝업창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만약 그가 인터넷에서 한 가지 물건을 산다면 그것을 판매하는 유통망을 모조리 파악하고 그 손익을 정확히 계산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가 벌이는 사업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는 오로지 경제적 이유, 즉 이윤을 위해서만 경영할 것이다. 그런 경영 방침을 방해하는 것이 있다면 거추장스러운 법이 그것이고, 결코 윤리적인 책임감에 자본을 희생하지 않는다. 만약 그가 어떤 단체에 기부를 했다면 세금 감면, 기업 이미지 상승으로 인한 즉각적인 판매율 증가, 신제품의 홍보 등 그것이 파생하는 이익이 기부금의 금전적 가치를 넘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못 비정한 예를 들어 합리적 인간을 표현했기에 과장이 있지만 주류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합리적인 인간은 이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이와 같은 합리적 인간으로만 사회가 구성된다면 그 사회의 미래상은 어떨까? 따뜻한 가슴으로 생각하자면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심이 판을 치는 세상이 잘될 리 없어 보인다. 하지만 주류 경제학자들이 예측하는 미래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개인에게 이득이 되는 행동만을 하는 인간의 활동은 결국 사회를 발전시킨다. 이유인 즉, 합리적 인간이 내리는 결정은 지극히 합리적이어서 잘못될 일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 역시 합리적 인간으로 예측되는 낙관주의적 미래상이 현실에서 쉽게 이뤄질 것이라고 단언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것이 인간의 경제활동을 파악하는데 가장 가치 있고 주요한 개념이라 주장한다. 때문에 그들이 요구하는 소비와 생산의 주체는 합리적인 인간이고 그들이 긍정적으로 바라마지 않는 세상은 그런 인간의 합리적 판단으로 사회 전체의 부의 양적 팽창이 이루어진 곳이다.
이에 따르면 그리 합리적이지 못한 소비를 실수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무던히 반복하는 보편적인 우리(대부분 그럴 것이라 판단한 것이 무리는 아니다)는 잘못된 습관을 가진 존재이다. 건강에 해로운 줄 알면서도 담배를 피우고 술에 진탕 취하며, 메일 확인을 위해 접속한 포털 사이트를 통해 아무 이유 없이 싸고 좋아 보이는 물건을 사들이지 않는가. 하지만 이것이 과연 인간이 고쳐나가며 궁극적으로 합리적 결정에 도달하기까지의 악습에 불과한 것일까? 대답은 그렇지 않다. 이것이 바로 인간인 것이다.
그렇다면 합리적 인간을 가정하고 나아가는 주류 경제학은 지극히 정상적으로 경제적이지 못한 행동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증 가능한 이론의 부재로 인해 빗 좋은 개살구 마냥의 주류 경제학이란 카드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에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들쑥날쑥한 패턴을 자랑하는 인간의 경제활동을 규명하는 논의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행동 경제학>(지형. 2007)이다.
경제학이라는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학문에, 더구나 새로운 사조에 버금가는 생경한 논리를 소개하는 책이니 순간 거부감부터 들지만 실제의 예와 퀴즈 같은 문제제기, 그리고 매끄러운 설명은 이내 편안히 몰입하게 한다. 이제 간단히 책에 소개된 행동 경제학을 소개하자면 카너먼과 트버스키가 창시한 휴리스틱(heuristic. 간편추론법)과 바이어스(bias. 편향)를 집어볼 필요가 있다.
휴리스틱은 선택의 기로에 선 인간이 내리는 비합리적인 결정을 설명한다. 물건을 하나를 살 때, 이 구매행위가 완전히 합리적이 되려면 구매할 수 있는 범주의 재화를 모두 섭렵하여 분석하고 그것이 궁극적으로 최소의 손실과 최대의 이익을 보장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셔츠 한 벌을 구매한다고 가정해보자. 만약 사려는 셔츠가 특정한 브랜드의 특정한 디자인이라고 한다면 모를까. 막연히 셔츠의 범위에서 다양한 디자인을 고려한다면 이 가치를 연산하는 시간은 예상조차 힘들다. 이 어려운 결정을 손쉽게 하는 것이 바로 간편추론법(휴리스틱)이다. 이에 따라면 고르기가 막연했던 셔츠 구매가 단 칼에 해결된다. ‘아! 옷 잘 입는 친구 S군이 선호하는 브랜드이니 그 녀석이 없는 디자인 중에서 골라볼까?’ 극단적으로 이 역시 휴리스틱에 포함된다.
신속하고 간결한 판단에 비중을 둔 휴리스틱으로 인한 선택의 결과만을 봤을 때, 이 주먹구구식의 선택은 오류를 범하게 된다. 판단의 근거가 지극히 비합리적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 오류는 그것이 오류라는 사실이 쉽게 인지되지 않는다. 휴리스틱의 판단 결과 그것이 잘못된 연산과정이라고 할지라도 한 쪽으로 치우친 경향, 즉 바이어스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휴리스틱과 바이어스에 대한 연구의 축적으로 대표되는 행동 경제학은 일반화하기 어려운 인간의 경제활동을 융통성 있게 분석하는 틀이다. 그렇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노릇. 주류 경제학의 경직된 사고방식을 버리고 이를 채택하면 될 일인데, 실상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먼저 행동경제학이 규명하는 인간의 경제활동은 비합리적인 경우에 빛을 발한다. 다시 말해, 이 경우 우리는 경제적 이득으로 보면 당연히 무시해야 할 것을 선택하고, 같은 가치를 가진 것에 대해 편향된 선택을 한다. 엄밀히 말하면 이러한 행동은 오류이다. 비합리적임을 인식하고 반추를 거듭하면 충분히 합리적 선택으로 전환 될 수 있는 문제란 뜻이다. 때문에 논리전개가 어렵다. 논리적으로 불합리한 행동을 하나의 패턴으로 통일시키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은가.
또한 예외적인 경우에 대한 행동 경제학의 분석은 예외적이라는 말 그대로 일정한 법칙이 없다. case by case, 경우마다 다 다르다는 것이다. 이것이 주류경제학이 지니는 일정한 법칙에 빛이 바래는 행동 경제학의 특징이다.
이상의 이유로 아직까지 행동 경제학은 주류 경제학에 밀려 폄하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기존의 경제학의 틀이 존재하기 힘든 가정을 기반으로 법칙화했다는 것에 다시금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합리적인 경제활동임에도 그것을 완벽히 수정하여 더 이상 오류를 범하지 않는 것이 불가능한 존재가 인간이라면 이를 규명한 새로운 해석 방법이 필요함은 분명하다.
적확한 법칙이 모든 현상을 규명하지 못하지만 책에 소개된, 인간이 당연히 범하는 오류를 명쾌히, 그리고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행동 경제학의 탄력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언젠가 행동 경제학이, 혹은 그로 인해 열린 새로운 경제학이 청개구리처럼 예측하기 어려운 인간의 경제 심리를 정확히 분석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우리가 흔히 범하는 오류를 행동경제학의 틀로 파헤쳐 보는 것 역시 그렇다. 더구나 이 이론은 통장잔고를 보며 한숨을 짓게 하는 충동 구매를 일삼은 우리에게 자기합리화의 기회마저 선사하니 이것으로 마음의 짐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