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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보면 매혹적인 죽음의 역사
기류 미사오 지음, 김성기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대부분의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런데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그 밖에 특정 대상 대한 두려움은 경험의 유무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신체적 고통에 대한 두려움은 과거 경험한 실체적 통각의 기억을 기반으로 한다. 또한 여타 특정 대상에 대한 두려움 역시 경험에 좌우되기 마련이다. 물론 직접적인 경험이 아닌 타인이나 지적습득을 통한 간접적인 경험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지만 그것이 두려움을 쥐고 흔들 만큼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않는다. 요컨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경험에 따른 공포라기보다는 미지의 경외심에 가깝다.
앞서의 말처럼 우리 대부분은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그 두려움은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다. 이는 마치 신을 대면하지 않고도 그 존재를 의심치 않는 신자의 의식이 종교의 벽을 넘어 전 인류에 확산된 것에 비견할만하다. 죽음을 경험한 적은 없지만 언젠가 죽음이 찾아올 것을 알고 그것만으로 두려워하지 않는가. 결국 전 인류에 통용되는 절대적 믿음이 죽음에 대한 경외의 바탕에 깔려있는 것이다.
<알고보면 매혹적인 죽음의 역사>(노블마인. 2007) 역시 이러한 인식에서 출발한다. 상실감, 질병이나 세월에 쇠약해진 정신과 육체, 화장으로 가루가 될 것이냐 매장당해 썩을 것이냐의 선택 등 죽음하면 떠오르는 부정적인 시각, 즉 두려움의 베일을 걷고 나면 단순히 겁이 나기보다는 신비롭고 매혹적인 죽음의 역사가 눈에 들어온다는 뜻이다.
작가 기류 미사오(혹은 편집자)는 두려움과 슬픔, 혹은 허무의 이미지에 사로잡힌 죽음을 매혹적으로 포장하기 위해 에로스, 욕망, 현세에 대한 집착, 자살, 임종의 다섯 가지 테마를 정해 역사에 기억된 그에 걸맞은 죽음을 골라낸다. 그런데 작가가 표현한 죽음을 대번에 매혹적이다 며 받아들이기엔 무리가 따른다. 에로스에 결부된 죽음만 살펴봐도 그렇다. 이 책의 에로스는 따뜻한 봄날 꽃잎을 날리며 하늘거리며 등장하는 여신의 이미지와는 하등 관계가 없다. 오히려 인간 내면의 밑바닥에서 꺼냈을 법한 적나라한 욕망에 가깝다. 때문에 아름다움에 매혹되기 보다는 추악하리만치 솔직한 욕망에 자극받는다는 표현에 걸맞다.
이 같은 성향은 작가의 이력에서 여실히 드러나는데 전작 <무시무시한 그림동화>는 기존 그림형제의 그림 같은 동화에 대한 이미지를 전복시킨다. 백설 공주의 해피엔드는 왕자의 키스가 아닌 그의 시체에 대한 성애에 있다고 하니 잔혹동화의 거두답다.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세계정사대전>이라는 원제처럼 죽음이 곧 애욕이라는 상관관계로 독자를 곤경에 빠트린다. 더구나 여기서 죽음은 성욕과 식욕 등 인간의 기본적 욕구에서 이해할 수 없는 변태적 성향에 까지 그 뿌리를 두고 있어 가히 '인간욕망대전’이라 부를만하다.
역설적이지만 바로 이런 잔혹함과 적나라함이 우리를 매혹시키는 요인인지도 모른다. 죽어야만 하는 사랑과 죽음에 희생당한 사랑, 죽음 자체에 대한 동경과 반대의 두려움, 조금은 치졸하고 비겁해 우습기 도한 죽음과 장엄한 결말의 죽음 등 작가가 역사의 곳곳에서 찾아 켜켜이 쌓아놓은 죽음은 친절한 동화의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만큼 깊은 인상을 남긴다.
언젠가는 죽을 것을 알기에 막연히 두려워하지만 단 한 번의 경험만이 가능하기에 호기심을 동반한 매력을 느끼기도 하는 상반된 인식이 공존하는 미지의 세계, 죽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식의 예의 바른 편견이 시체 애호가와 같은 변태적 성향의 역사를 통해 깨진 책 속의 죽음은 자유롭다. 그리고 매혹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