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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프스튜 자살클럽
루이스 페르난두 베리시무 지음, 이은정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모든 욕망은 죽음을 향한 욕망으로 통한다. - 일본 속담으로 추정
막 읽기를 마친, <비프스튜 자살클럽>(웅진지식하우스. 2007)의 머리말 글귀이다. 흔히 욕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꿈틀거린다. 라는 술어가 연상된다. 그것은 욕망이라는 것이 어떤 형태를 취하던 인간의 내면 어딘가에서 도사리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10+1명의 인간들은 식욕이라는 욕망으로 뭉쳐, 식욕의 욕망 아래 애증과 물욕을 숨기고 있다. 결국 그 욕망은 죽음을 향한 불나방처럼 그들을 부채질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 부채질을 거부하지 않는다. 기다리고 있었던, 짐작하고 있었던 종말이기 때문이다.
소설의 원제는 <The Club of Angles>이다. 그들은 자신을 천사라 칭한다. 비프스튜로 대변되는 그들의 식욕과 죽음을 받아들이는 모습에 <비프스튜 자살클럽>이라는 제목이 잘 어울리는 것처럼, 어린 시절의 빗나간 욕망을 20여년이나 끌어온 그들은 성장을 멈춘 천사라 부를 수 있다. 또한 그들은 악당이다. 아니, 악동이라는 말이 더 적합하다. 천사라는 이름은 역설일 뿐, 결국 비프스튜로, 식욕으로 결속된 그들은 오로지 먹는 일에만 관심이 있어 보인다. 게걸스러운 식성을 가진 친구를 치켜세우고, 그것에 적당한 찬양을 덧붙이는 친구를 숭배한다. 그들이 악동인 이유는 그들의 인생이 동네의 작은 식당에서 더 넓은 세상의 식당으로 확대된 것 외의 변화와 성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20년이라는 식욕으로 점철된 그들의 우정은 음식을 시로 승화시킬 줄 아는 리더, ‘라모스’의 죽음으로 균열이 생긴다. 외면해 온 현실이 이자의 이자를 쌓아 돌아온 것이다. 영원히 천사로, 악동으로 남기를 열망해 온 인생의 허무를 인정하는 일이란 그들에게 불가능하다. 사회에서 가정에서의 실패를 매달 돌아오는 식도락 모임으로 외면하는 일만이 그들에게 허락된 것이다. 그것이 그들이 독특한 클럽의 회원에서 퇴폐적인 사회부적응의 나락으로 떨어졌음에도 이 클럽을 유지시키는 이유이다.
균열의 폭이 넓어지고 서로를 힐난하는 말이 부스러기가 되어 곧 이 클럽이라는 성이 무너질 것이 확실해진다. 이런 그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단 한 가지는 마지막 남은 한 접시까지 먹어치울 수 있는 요리이다. 그 요리를 탐한 자, 마지막 한 접시까지 탐한 자는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왜. 그는 왜 죽은 것인가? 죽음의 순서와 이유, 그것에 대한 궁금증은 더해가지만 결국 집요한 추리는 방향을 잃는다. 모든 욕망이 죽음에 대한 욕망으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기 때문이다. 추리소설의 마지막 장을 들춰보는 것과 같은 이들은 자신의 죽음, 즉 인생의 마지막 장을 훔쳐본 것이다. 죽음을 예견하고 결국 삶에서 유일하게 추구했던 식탐으로 생을 마무리 짓는 것은 그들에게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의문이 의문을 낳는 추리소설은 그로 인한 긴장감을 얼마만큼 유지하느냐에 성패가 달려있다. 때문에 종종 억지스러운 결말을 내놓기도 하고 전체의 흐름을 방해하는 함정을 수도 없이 파다가 자신이 그 함정에 빠지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이런 면에서 <비프스튜 자살클럽>은 조금 다르다. 반전의 짜릿함을 위해 본문을 희생시키지 않고, 정해진 결말에 충실히 다가간다.
우리는 인생에 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살아간다. 또한, 소설에 결말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읽는다. 죽음을 알고 비프스튜 자살클럽의 회원들이 만참에 참석한 것처럼 말이다.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돌아가는 삶에서 치열한 경쟁과 시기 질투를 일삼는 것은 인간의 욕망 때문이다. 아니, 그 욕망 때문에 그런 인생을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작가는 이것을 재치 넘치는 간결한 문장에 담아 우리의 식탁에 선보인다. 전체 요리로 호기심을 자극하고 메인요리에서는 적당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최고급 요리를 내놓는다. 끝으로 짐작은 가지만 되새김질하게 하는 디저트를 준비한다. 이 디저트는 읽는 사람에 따라 버릇처럼 찾는 커피일 수도, 색다른 별미일 수도 있다.
당신은 요리사, ‘루이스 페르난두 베리사무’가 준비한 만찬을 어떻게 즐겼는가? 그 맛에 따라 우리는 같은 클럽에 속해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