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 2006년 가을호 - 통권 2호
문학동네 편집부 엮음 / 문학동네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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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시인 김민정과 소설가 윤대녕의 인터뷰, 그리고 지문사냥꾼이라는 무시 못 할 소설의 세계를 만들어낸 이적과 대단한 작가 김영하의 대담. 그것에 눈길을 빼앗겨 읽게 된 <풋,>(문학동네. 2006가을)의 주제는 ‘도망’이다. 현실에서의 도망과 현실로의 도망. 그것은 개개인에 따라 극명한 차이를 보이며 불안한 안식과 스릴을 오간다.

도망이라는 것이 두려운 그림자를 가진 것이라면, 잡히지 않고서는 끝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은둔형 외톨이를 자처하며 게임에 빠지거나 책에 빠지고 너무도 현실적인 가족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일에 빠지며, 어떤 경우에는 사랑이 도망자의 은신처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다양한 은둔처에 숨기를 반복하는 도망의 이유는 다양하고 변덕스럽기 그지없다.

영화에서 혹은 소설 속에서 도망자는 아내를 죽인 누명을 썼거나 음모에 휘말려 단 하루의 안식 없이 정처 없이 헤매는 진정한 유랑자로 그려진다. 굳이 픽션의 세계뿐이 아니다. 한국 경찰의 인간적인 면모를 만천하에 드러내며, 전국을 술렁이게 했던 탈옥수 신창원이 불과 몇 년 전의 신문과 TV상에서 유명세를 떨치지 않았는가. 더구나 그의 체포당시 패션은 지금도 비아냥거리는 시선을 받는 선구자적인 패션리더들의 과도함을 지칭하기도 하며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그들, 도망자에게 일간 환호를 보낸다는 것, 환호까지는 아니라도 짜릿한 대리만족을 느끼며 조용한 비명을 지른다는 점이다. 구태의연한 말이지만 역시 우리는 도피를 꿈꾸는 자임에 틀림없다. 교실에 틀어박혀 칠판과 꿈속을 헤매며 ‘땡땡이’를 꿈꾸는 학생, 밤을 새워 작성한 기안서가 격한 반응으로 반려 당한 후 넥타이에 목을 맨 채 담배만 피워대는 샐러리맨 등, 전형적인 도망증후군 환자를 비롯한 우리 모두가 당장의 현실에서 도망 놓는 환상에 종종 사로잡히지 않는가. 그것이 아니라면 당신은 지금 도망자임을 자처해도 좋다.

그렇다면 도망치면 그만이 아닌가.
요시다 슈이치의 <거짓말의 거짓말>에는 출근길에 핸들을 꺾어, 우리네로 치면 학창시절 수학 여행지였던 경주 불국사 정도 되는 곳의 눈에 띄는 바위틈에 숨겨놓은 시계를 찾아 도망을 놓는 주인공 ‘그’가 등장한다. 그의 급격한 유턴은 짜릿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눈에 띄는 문제를 겪고 있기 때문이 아닌, 충동적인 선택이기에 그 짜릿함은 더하다. 마땅한 이유 없이 어디론가, 우스운 핑계를 대며 저지른 그의 도망. 하지만 그는 결국 귀환을 택한다. 소설을 읽는 동안 그의 무모한 선택에 느낀 스릴은 읽는 이이게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도망친 곳에 남겨진 가족과 삶이 너무도 뚜렷이 머릿속에 문신 새겨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도피를 꿈꾼다. 도망치는 것이 아닌, 그것을 꿈꾼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비겁하다 욕하지 말자. 단 하루만의 가출이라고 친구들에게 창피해 하지말자. 돌아오기에, 또 다시 꿈꾸기에 매력이 넘치는 ‘도망’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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