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편지 - 사드에서 피카소까지
D.A.F. 사드 외 지음, 이혜리 옮김 / 다빈치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후대의 사가에 의한 흔적으로 좇을 수밖에 없는 대가들의 삶이 안타깝다면 그들이 남긴 그림이나 책을 통해 나름대로의 복원 과정을 거치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이것에는 말 그대로 후대의 솜씨가 더해진 것으로 그림자의 윤곽이 아닌 빛에 비친 이목구비를 오목조목 뜯어보고자 하는 우리의 갈증을 완전히 풀어주지는 못한다. 물론 그런 일련의 과정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다. 도대체 진정한 원조가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족발집의 지루한 싸움처럼 예술적 가치를 시간적인 가치로 환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기에 말이다. 이러한 의미와는 별개로, 우리의 풀리지 않는 갈증은 어쩌면 그들이 그 오랜 시간 전에 존재했던 것처럼 현재에도 거리감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해외 유명한 미술관을 굳이 찾아가 그 실체를 확인하고 작가의 생가를 찾아 여행일정을 꾸리기도 하는 것 역시 바로 그런 이유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개인마다 대가들의 작품에서 얻는 감흥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좀 더 다가서고자 하는 욕구는 프레타포르테의 무대 위에 있는 것이다.

스타의 모습을 멀리서나마 확인하고자 새벽걸음, 방송국 앞, 숙소 앞 철야도 마다하지 않는 팬클럽의 그들처럼 나 역시 대가들의 모습을 보고자 어느 정도의 희생은 감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그 일이 여의치 않다. 필수적인 문제인 시간과 돈의 제약이 그렇고, 높은 언어의 장벽 역시 말 그대로의 높다 높은 벽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아쉬워하는 게으른 나에게, 이 책 <그림편지>(다빈치. 2004)가 큰 위안이 된다.

편집자에게 전하는 작가의 변, 친구에게 건네는 다소 장난기어린 안부에서 소중한 사람을 향한 그리움 까지, 이 한권의 책에 담기에는 벅찬 많은 인물들의 등장만큼 그 편지의 내용 또한 다채롭다. 다채롭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짧은 편지로나마 일부분에 불과하지만 대가들의 인간관계와 그 당시의 사회상을 엿보고, 짤막한 글에는 묻어난 그들의 성격으로 그동안 상상해 왔던 모습에 살을 붙여가는 것이다.
그 와중에 흥미로운 것은 그림편지에는 작가들의 그림과 화가들의 글이다. 예술가라는 공통분모 위에 앉은 분자의 그들이지만 미술가가 쓴 글이나 작가가 그린 그림은 선뜻 상상이 가지 않는다. 때문에 궁금하다. 또한, 그 두 갈래의 예술적 소양이 일치하지 않더라도 실망스럽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것이 더 반가운 것은 머릿속으로 환율계산이 안될 만큼 엄청난 가격이 매겨진 그들의 작품만큼 멀게만 느껴지는 거장들을 약간 미숙한 그들의 그림과 글로 평범한 내 곁에 붙잡아 앉힐 수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물론 화가로서의 재능이 만만치 않은 작가와 그 반대가 성립되는 화가가 대부분이다.)

편지와 그 위에 그려진 그림이 주는 느낌은 구겨진 종이더미와 찢겨진 캔버스 위에서 탄생한 그들의 글과 그림이 주는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편지라는 사적인 공간에서 그들은 자유롭다. 편지의 대상이 답장이 뜸한 친구라면 투정을 부리기도 하고 애정 어린 충고를 담기도 하며, 연인이나 가족에게는 솔직한 심정을 토로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고갱의 편지에는 그의 예술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그의 예술적 성과의 탄생 과정을 엿볼 수도 있다.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지금에까지 남겨진 대가들의 그림과 글은 여전히 감동적이다. 그들의 사사로운 감정의 흐름을 구태여 확인하지 않더라도 그 감동이 반감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그것이 그들을 후대에서도 추앙받는 거장으로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때문에 그것만으로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그들의 존재를 사적인 자취로 파고들어가는 것은 과거의 망령을 좇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타들의 일거수일투족에 희비가 엇갈리는 팬들처럼 나 역시 그들의 팬이기에 조금 더 가까이 가고자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그림편지를 들춰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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