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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의 소리 ㅣ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3
이시다 이라 지음, 김성기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추리소설은 필연적으로 사회의 이면을 담고 있다. 범죄라는 사건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허락된 일과 그렇지 않을 것의 구분이 모호한 현대사회에서 그 무거움을 더해지기도 하면서 말이다.
재미, 즉 손에 땀이 날 정도로 책을 잡은 손의 자세를 바꾸지 못하게 하는 재미를 가진 추리물이 주는 이미지는 다소 가볍다는 인상을 주기 쉽다. 그런데 요즘의 작품들을 읽으면 그것이 타성에 불과하다는 것을 쉽게 알게 된다. 다루고 있는 사건은 점점 복잡하게 꼬이고 그 속의 인물들이 얽히고설키는 극의 긴장감을 좇다보면 피로감을 느낄 정도의 잘 짜인 구성이 있고 묵직한 생각할 거리를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 발목정도는 적실 함정이 있을 수 있다.
물론 근래의(이전의 것들 역시) 추리소설이 다루는 무거운 사회문제와 다양한 인간 군상간의 갈등의 전개는 분명 환영할만한 일이다. 아니, 양손을 치켜든 환영까지는 아니더라도 거부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이런 장점이 추리소설의 또 다른 매력. 즉, 한여름 더위를 식혀줄 흥미진진함이라는 시쳇말의 비유가 나타내는 조금 가벼운듯한 재미를 반감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시다 이라는 그런 면에서 무거운 주제와 가벼운 재미의 절충선을 알고 있는듯하다.
어른이 되어서 - 이 말이 조금 우습지만 -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못 볼 걸 많이 본다. 봐야한다.’는 것이라 생각한다. 단적인 예로 더 이상 TV에 나오는 성적인 장면에 부모님이 채널을 돌려주지 않는다.(물론 그것이 못 볼 것은 아니다. 그 반대인지도) 이 말은 고개를 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책임감이라 하기엔 조금 우습지만 어쩔 수 없이 봐야하는 것, 참아야하는 것이 점점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현실을 직시하는 행동과 ‘용기’와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인다. 도리어 알면 알수록 패배감에 사로잡힐 뿐 피터팬의 용기는 가당치도 않다.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의 피터팬들은 ‘피터팬 증후군’의 그것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어른이라는 어색한 이름이 주는 책임감을 외면한 비겁함과는 다르다는 뜻이다. 다소 무거운 주제, 사회의 이면에서 들끓고 있는 구정물의 아우성이 그들의 손을 거쳐 경쾌한 파도를 파는 이유는 바로 이런 피터팬의 경쾌함에 있다. 그리고 이 경쾌함은 즐겁게 쓸 줄 아는 작가, 이시다 이라를 통해 힘을 얻는다.
이케부쿠로의 공원을 둘러싼 문제들은 쉽사리 해결되지 않는 것들이다. 기성세대에 의해 파생된 문제와 그것을 외면하거나 더 키워나가는 그들의 자녀세대는 공원을 무대로 서로 부딪히기를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 이케부쿠로의 아이들은 이런 문제를 만들고 또, 그대로 방치하는 어른들이야 말로 회생가망성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거리를 아니, 최소한 이 거리의 아이들은 누가 지켜줄 것인가? 바로 피터팬, 그들 자신이다.
피터팬이 휘두르는 칼에 잔인함을 느낄 수 없는 것은 그가 가진 동심 때문이다. 그 동심을 이케부쿠로의 어른아이들에게는 우정이라 부를 수 있다. 물론 밤거리의 황태자라든가 야쿠자의 유망주라는 명패를 가진 그들에게 동심이라는 말이 가당치않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사회적인 잣대에서 벗어나 ‘우정’ 그 자체만으로 서로의 일에 발 벗고 나서는 것은 어른들의 의리와는 다른, 오히려 아이의 동심에 가까운 순수한 면이 있다. 아이라고 할 수도, 어른이라고 할 수도 없는 애매한 나이의 그들의 동심은 그렇기 때문에 잔인하기도 하고 무책임하기도 하다. 어떤 면에서 보면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거리의 아이들을 지키겠다는 명분으로 합리화되는 것일 뿐, 그들의 행동은 지극히 이기적인 발상의 발로여서 타인의 기준에서 보면 그들 역시 거리를 더럽히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단적인 예로, ‘서 1번가의 테이크 아웃’에서의 그들의 정의는 그 반대편의 사람들에게는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이 지키는 것은 순수하리만치 솔직한, 지극히 이기적인 그들 자신에 한정되는 것이다.(이것을 그들 자신도 알고 있다.)
거리의 정의를 판단하는 것이 누구의 기준인가의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이 소설에서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다. 이시다 이라가 짤막한 이야기를 통해 이 거리의 이야기를 경쾌하게 그려내며 그 속의 아이들의 우정과 사랑, 그리고 모험의 참 맛을 살릴 수 있는 힘이 바로 그런 ‘외면하기’에 있기 때문이다. 이케부쿠로를 지키려고 그들이 사회의 또 다른 입장을 외면한 것처럼 우리가 이 소설을 백분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뻣뻣한 문제의식을 외면하고 소년들의 경쾌한 템포에 발맞추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