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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진화를 밝힌다 다윈의 종의 기원 ㅣ Easy 고전 21
이중원.정은주 지음, 박종호 그림,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 삼성출판사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우리는 단어와 요약에 길들어진 교육을 받아왔는지 모른다. 세기의 사상가의 이름과 연대기를 기억하고(연대기조차 뚜렷한 업적의 시기만을) 그의 저서의 출판(?) 년도와 제목만을 기억하는데 익숙하다는 말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다윈의 진화론 역시 그런 교육과정의 한계를 갖고 있었다. 물론 하나의 사상 혹은 한 권의 책이 파생하는 수많은 의문과 논제를 고려한다면 사실상 통사적 이해라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겠다. 하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우리의 교육과정에 비친 다윈의 진화론은 요약설명이라는 말이 가당찮을 정도로 빈약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앞서의 언급과 관련되어, 이 논제를 정해진 교육과정의 한 귀퉁이에서 다룬다는 것 자체가 가진 한계 때문이라 자위할 수 있다. 그렇다면 ‘통합논술’이라는 것은 왜 생긴 것인가? 그저 몇 줄에 지나지 않는 설명으로 무엇을 이해할 것이며, 이해한 척하고 풀어내는 논리의 흐름을 논술이라 할 수 있는 것일까. 이 통합논술이라는 것 자체가 수박 겉핥기식의 멀티 플레이어를 요구하는 제도라면 하루속히 사장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전문성과 멀티 사이에서 힘들 우리 청소년에게 혼란만 가중시키지 말고.
사견으로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시작한 것은 고전에 대한 안타까운 시선을 나 역시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더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시각을 30대를 바라보는 지금에 와서야 깨닫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성실하지 못한 학업태도를 감안하더라도 고전의 수혜를 받지 못한 안타까움을 위로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지(easy)라는 슬로건으로 무장한 이 책 역시 이러한 사고를 바탕으로 출발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고전이라는 것은 이 시대의 사상의 근원이라는 점에서도 유효하지만 지금의 현실에서는 사고의 근본이라는 것에 그 효용이 극대화된다고 생각한다. 현대에는 다소 부합되지 않는 또는 전혀 맞지 않는 현상이나 사상을 다루고 있다고 할지라도 깊이 있는 사고의 과정을 담금질 해줄 테니 쓸모없는 뒤떨어진 고전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고전을 다루는 좋은 책들이 상당히 많다. 개인적으로 특히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유전공학에 관한 두툼하고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권하고 싶은 책이 꽤 있다. 그렇지만 그들은 바쁘다. 또한 모든 분야에 열린 가능성이 주어지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때문에 쉽게 읽히고 전체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이 같은 요약의 도움이 필요할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 전체적인 그림을 과신해서는 안 되겠지만 말이다.
결국, 청소년에게, 그리고 나에게(아니, 대상의 구분이 없이) 한 분야의 집요한 추적 보다는 여러 분야를 부담 없는 분량에, 쉽게 읽히는 형식으로 잘 꾸려 소개하는 것이 절실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반갑다. 통합논술 특수를 누리기 위한 다소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 할지라도 반가운 게 사실이다. 앞서 다소 쓴 소리를 했지만, 통합논술 역시 빈약한 제도라도 우리의 관심을 촉발시킬 수 있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번외의 이야기에서 돌아와서 책의 내용과 구성을 살펴보자. 이 책의 구성은 쉬운 읽힘을 지향하는데 있어 인터뷰 형식을 차용하고 있다. 마치 고인의 영혼을 불러 낸 영매처럼 해설자는 독자의 궁금증을 다원의 대답으로 때로는 자신의 정리를 통해 풀어준다. 또한, 해설자와 다윈의 대화 중간 중간에 적절히 <종의 기원>의 내용을 발췌함으로써 이해력을 높이고 글 자체의 신뢰감을 보장해주고 있다. 진화론의 주요한 사항, 곡해되고 있는 부분, 그리고 반대급부의 의견을 성실히 설명함으로써 다윈의 시대의 의식과 그것의 현대적 의의를 적절히 재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의 이론에 영향을 끼친 여러 학자들의 논지를 짧은 설명으로 나마 집어주는 것은 진화론에 대한 보다 넓은 시야를 위함일 것이다.
유전공학이 21세기 지(知)의 키워드로 떠오른 이때 다윈의 진화론을 구태의연한 옛 추억으로 치부하는 목소리가 그리 억지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그 급변의 과정에서 이전의 것은 거짓이 되어버리거나, 그 효용을 잃는 상황이 아닌가. 하지만 고전으로서의 다윈의 <종의 기원>이 가치가 있는 것은 그것이 현대사회에 얼마나 적합한 논지인지, 혹은 그것이 유전공학의 근간이나 시발점이라는 것과는 별개로 그 사고 자체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윈의 그것이 과연 최초의 것인지 아닌지의 논쟁도 의미가 없을 것이다. 더구나 그의 <종의 기원>은 여전히 설득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인간이라는, 생명이라는 아니, 모든 종의 기원은 아직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이다. 누군가 이에 대한 정답을 물샐틈없는 논리로 설명한 다해도, 그래서 그에 대한 반론이 전혀 없어도 그것이 사실이라고 판단하는 것조차 위험한 것일 진데, 끝이 보이지 않는 실타래를 쥐고 있는 지금 참과 거짓에 정확한 색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때문에 우리에겐 더 많은 다윈이 필요하다. 집요한 자료수집과 정리, 그 속에서의 추론, 같은 의견을 가진 학자와의 연동, 이 모든 것이 연구의 기본이 아닐까? 이것은 가히 언론플레이와 추측이 난무하는 지금의 연구문화에 경종을 울릴만한 것이다.
고전인 동시에 현재의 논리와 맞닿아 있는 논문으로서 그리고 자기반성의 도덕서로서 재조명된 읽기 쉬운 이 한 권의 책이 진지한 시선의 촉매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