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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은 옷을 입지 않는다 - 인류 최후의 에덴동산, 아마존 오디세이
정승희 지음.사진 / 사군자 / 2006년 11월
평점 :
종종 하릴없이 TV리모컨을 손에 쥐고 모로 누워 TV삼매경에 빠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한 채널에 1,2분 이상 머무는 경우가 드문데 그것은 아마도 TV를 즐기지 않는 개인적인 이유 때문일 수도, 단 몇 분 사이에 경중을 따질 수 없는 수많은 정보가(연예인 신변잡기 등도 정보라 한다면) 쏟아져 나오는 이 바보상자가 버겁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에게 ‘도전 지구탐험대’ 역시 그런 프로그램 중에 하나일 뿐이었다. 단 1분의 채널고정이 여의치 않은, 그런 프로그램 말이다. 무딘 칼 하나로 정글을 해치며 거대한 사냥감을 초라한 도구로 포획하는 전사들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을 것이며, 집 앞 탐험조차 버거워 일요일 오전을 TV로 소진하고 있는 내게 과연 그 땅이 무슨 감흥을 줄 것이냔 말이다. 그것은 곧, 대자연의 아마존 인디오의 삶과 뉴욕의 거들먹거리는 리얼리티 TV쇼와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치열한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선뜻 집어 읽게 된 이유는 ‘자연’이라는 단어가 주는 휴식의 평온함 때문이었다. ‘옷깃만 스쳐도 짜증’인 빼곡한 도시의 삶에, 쫓기듯 마치는 5분의 식사와 그에 버금가는 속도의 관성에 맥을 못 추는 삶에 지친 탓이리라. 때문에 잠시나마 안식을 주는 책읽기에서 조차 성공을 향한 자기계발과 삶의 방식에 호도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또한, 옷을 입지 않는 아마존에서라면 명품 슈트를 걸치고 고급승용차를 타기 위한 발악을 웃어넘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아마존의 삶은 내게 휴식을 주었다. 실제로 ‘자연’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조차 알지 못하고 도시에 유린당한 삶을 살아온 내게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단순히 지켜지고 유지되기에, 혹은 있는 그래도 보존되기에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경외는 아니었다.
인디오에게 아마존의 삶은 현실이다. 그것에 태초의 자연 속에 아름답게 빛난다느니 하는 수식을 구구절절이 붙이는 것은 소위 문명인이라는 망상에 빠진 우리들인 것이다. 그 현실 속의 치열한 삶이 아름다운 것은 시멘트로 온 땅을 도배하는 포장에 익숙한 우리들의 동경 때문일지도 모른다. 천년이고 그 이상이고 바람에 날리고 다시 쌓이기를 반복하는 아마존의 맨바닥에 새겨진 주름살이 우리의 성형수술에 기댄 인공적인 얼굴엔 없지 않은가.
옷을 입지 않은 책
이 책속에서 옷을 입지 않고 있는 것은 비단 아마존의 인디오들만은 아니다. 십 수 리터의 물을 마셔도 요의를 느끼지 못할 정도의 더위와 강행군에 웃통을 벗어버린 작가처럼 그의 글도 옷을 입지 않는다. 달필의 전문 작가가 아니기에 조금은 서투른 문장이 연결되고 감정을 숨기지 않고 하고자 하는 말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강조되는 그의 글은 마치 술 취한 삼촌의 흥미진진한 모험담과도 같다. 그렇다고 그의 글 솜씨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이 삼촌은 조금은 허풍이 있고 쉽사리 흥분을 하며 그때마다 했던 말을 반복하지만 들을 때마다 귀를 솔깃하게 하는 이야기꾼이기에 말이다.
문명인과 자연인의 경계에서
작가의 아마존과 인디오, 그리고 그들의 삶의 방식에 대한 끊임없는 칭송은 곧 문명인(굳이 이름을 붙이자면)에 대한 자기비판이기도 하다. 수 세기 전 우월감에 도취되어 그들을 약탈했던 유럽의 개척자들과(이 단어도 상당히 거부감이 들지만) 그에 못지않은 욕심을 가진, 아니 그 욕심에 이자까지 차곡차곡 쌓아 화를 자초하는 현대 사회인에 대한 비판 말이다. 그것은 작가의 시선이 별천지를 담기위한 카메라 뷰파인더를 넘어 아마존의 인디오의 삶을 바로 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들이 즐겨먹는 음식을 같이하고 더 나아가 그들의 삶에 관성을 느끼듯 동화되어 가면서 아마존에 대한 예찬론이 시작되고 급기야 그것이 삶의 올바른 기준이 되어간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문명인의 틀 안에 갇혀 있다. 예전 광고카피로 유명했던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문구가 떠오르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자연을 찾고 자연으로 돌아가기를 갈망하며 그곳에 꿀 맛 같은 휴식이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은 그와 우리가 문명을 누리며 살고 있기에 생기는 변명 때문일 것이다.
아마존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아마존의 자연이 주는 혜택과 장애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삶의 방식을 윤간 당하고 이제는 가끔 찾아드는 문명인에게 전통의식을 팔아 연명하는 샤마꼬꼬 부족, 그리고 부족과 도시 노동자의 삶에서 시소를 타는 많은 인디오들. 이렇게 아마존의 더 이상 과거의 아마존이 아니다. 지금의 아마존이 내일의 아마존일지 알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문명의 혜택에 의해 천혜의 자연이 쓰러지듯 그들의 의식도 차츰 무너지고 있다.
그들이 그들 자신일 수 있는 까닭은 자연스러움, 다시 말해 자신의 삶의 방식에 추호도 의심을 품지 않고 살아가는 당연함에 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아마존 밖으로 시선을 돌리게 되고, 억측일지도 모르지만 마약에 절어 백인에 굴복했던 인디언처럼 자신의 정신마저 헌납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인디오를 의식적으로 보호하겠다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작가와 그의 글은 읽는 동안의 우리가 아마존을 보호한답시고 뒷돈을 챙기는 인디오와 브라질의 부패한 말단 정부기관인 후나이들에게 분노한 것처럼 무엇을 보존한다는 것은 우리의 역량으로는 불가능한 일이기에 말이다. 이 때문에 그들의 삶의 방식을 배우고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는 작가의 주장에도 일간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생긴다. 어쩌면 그들과 우리 사이에 대자연의 정글과 늪이 존재하는 이유는 두 집단 사이의 불가침의 선을 그어놓은 신의 묘안인지도, 아니면 그런 삶을 택했기에 인디오는 아마존에서 옷을 입지 않고 우리는 아마존과 같은 곳을 휩쓸고 그 위에 옷을 입힌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는 이미 세계 평화의 파수꾼을 자처하는 몇 강대국의 폐해를 경험하지 않았는가.
아마존엔 어김없이 폭우가 쏟아져 정글 구석구석을 가로지르는 물길이 생길 것이고 인디오들은 그곳에서 애벌레를 간식삼아, 아나콘다나 악어를 주식삼아 살아갈 것이다. 부족의 마을 곳곳에 일제 보트모터나 발전기가 있고 삼양라면 봉지가 집 안 구석구석을 차지하더라도 비가 오고 해가 뜨고 지듯이 아마존의 벌거벗은 자연은 그대로일 것이다. 아마존의 인디오는 과한 욕심으로 정글을 해치고 장난감으로 사냥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삶을 살 수는 없다. 아마존의 자연이 태양이라면 우리는 태양을 바라볼 수 없는 드라큘라 같은 존대이기에 말이다. 다만 그들의 욕심 없는 중도의 삶이 부럽다.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괴로움이 이 욕심에서 파생되지 않는가.
또한 문명이라는 망상에 빠져 그들의 삶을 뒤흔들 우리의 욕심이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