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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에게 길을 묻다
송정림 지음, 유재형 그림 / 갤리온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고전문학을 생각하면 그와 함께 떠오르는 유년시절의 추억들이 있다. 지방에서 전학을 와서 친구가 없었던 한 때 버스로 1시간 이상이 걸리는 등하굣길에 벗이 되어준 싱클레어와 데미안. 앙드레 지드의 좁은문을 읽고 쓴 글을 칭찬해준 중학교 시절의 국어선생님. 그 시절 달뜬 추억이 고전문학을 떠올리면 같이 따라온다.
명작이라 불리는 고전문학의 당위성은 시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읽힘에 있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것은 중고등 교과과정의 주입식 교육의 잔재 때문일 수도 있다. 명작이라는 이름만으로 감동받기를 강요당한 경험이 떠오르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 책, <명작에게 길을 묻다>(갤리온. 2006)가 주는 일말의 거부감은 바로 그런 점이다. 명작 속에 삶의 지혜가 있다는 식의 교조적인 제목과 글의 말미에는 꼭 따라붙는 진정한 사람과 사랑에 대한 계몽적인 어투. 그것이 내 속 어딘가에 있을 꼬투리를 잡아채서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다.
명작, 혹은 오래 읽히고 있는 순수문학은 이렇게 상이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한다. 사춘기 시절의 감수성에 젖은 달뜬 추억과 바르고 명백한 해석이 주는 불편함에 묻어나는 조장된 감동이 충돌하는 소용돌이에 말이다. 하지만 이 정리되지 않은 감정의 선을 싹둑 자르면 결국 좋아할 수밖에 없는 명작이 있다.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이 단순하기에 깊이가 있고, 오래된 냄새를 풍기는 이 소설들은 자의식의 분열을 일삼는 근래의 소설들에 지친 독자에게 신선한 자극을 준다.―읽어보지 않은 사람도 그 제목과 요약된 스토리 정도는 익히 알 정도로 많은 문화컨텐츠에 차용되는 고전문학이 신선한 자극을 준다는 말에 어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극히 개인적이 생각이지만 현대문학을 읽고 난 후 종종 보트에 몸을 싣고 넓은 호수에서 표류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요즘의 문학작품이 우선 그 형식이 다양하고(물론 고정된 형식이 존재하기도 하지만) 함축적이다 못해 압축적이며, 모호한 문장을 세련되게 포장한다. 그것이 경우에 따라 굉장한 매력을 발산하기도 하지만 구태의연함을 지양하고 세련됨만을 지향한 나머지 방향을 잃고 표류하는 기분이 들게 하는 것이다.
그에 반해 고전문학을 읽을 때는 깊은 우물 속을 들여다보는 기분이 든다. 우물이 주는 다소 부정적인 시각으로 인해 그 속을 들여다보는 행위가 적이 망설여지지만 일단 보게 되면 검은 수면위로 내가 살고 있는 나의 표상을 비춰보게 된다.
이것은 굳이 고전문학과 현대문학을 무게로 가르자는 것이 아니다. 또한 고전문학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도 아니다. 분면 고전문학 역시 그 시대의 현대문학이고 지금의 문학만이 비추어낼 수 있는 사회적 현실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게도 구태의연한 고전문학에서 길을 묻고 그 길의 안내자인 그것을 명작이라 부를 수 있는 이유는 망설임 없는 인간에 대한 관심이 아닐까 생각한다.
시작도 끝도 없이 수많은 여지를 남기기에 매력적인 작금의 작품의 매력은 결여되어 있을지 몰라도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로 질리지도 않고 인간에 대한 관심을 쏟아내는 명작.
우리가 이 명작에 길을 묻을 수 있는 이유는 감동을 권하는 바로 이런 끈기와 생명력 때문은 아닐까.
※ 유재형님이 그린 삽화가 굉장히 매력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