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달하다. 지인이 자주 쓰는 말이다. 내게 이 말은 왠지 낯간지럽고 기분을 들뜨게 해서, 조금은 가벼운 느낌이다. 마치 선남선녀가 달콤한 사랑에 빠지는 헐리웃 로맨틱코메디 영화의 사운드트랙을 들을 때의 느낌이라고 할까?
Presents를 읽으면서 그 달달하다 는 느낌을 상기시킬 수 있었다. 기쿠타 미쓰요의 따뜻한 필체와 마쓰오 다이코의 아기자기한 색을 가진 그림이 만나 조금은 가볍게 기분을 달뜨게 하는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하지만 인생이란 달콤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Presents 속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달콤한 상상에 젖게 만드는 선물의 포장지를 뜯으면 그 속에는 그리 녹녹치 않은 현실이 있다.
사람은 망각하기를 원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망각을 위해 술에 취하고, 음악에 취하고, 책 속에 빠지기를 반복한다. 반복, 그것이 반복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술이 깰 때의 숙취와 그토록 빠져있던 음악도 언젠가는 싫증이 나고 책 속의 활자가 무한히 계속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렇게 다시 현실과 마주해야하기에 또 술에 취하고 새로운 책과 음악을 찾아낸다. 망각을 위한 반복이 거듭되는 것이다.
선물 역시 그런 것이 아닐까. 그것이 썩 마음에 드는 것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선물을 받을 때의, 포장지를 뜯을 때의 두근거림은 매한가지이다. 그 두근거림은 굉장히 ‘달달’해서 우리에게 손쉽게 현실도피를 제공한다. 하지만 이내 그 느낌을 흐려지고 사라지게 된다.
기쿠타 미쓰요가 말하는 선물이라는 것은 그렇게 잊혀져간 기억들이다. 그 추억속의 자신의 과거와 거기에 얽힌 소중한 사람들과의 기억인 것이다.
어쩌면 선물의 운명이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주고받는 사람의 희열이란 포장지에 쌓여있을 때의 모습은 당당해 보이지만 그것도 잠시, 기억 속에서 조용히 퇴장하고 만다.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퇴장. 여기서 선물의 본질이 추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아름다운 매개체라는 구태의연한 말은 하지 않겠다.(벌써 한 것일지도) 앞서도 말했듯 어쩐 방법으로 미화시킨다 할지라도 결국은 망각의 본성을 담고 있는 것이 선물이기에 말이다.
그것이 그 어떤 의미를 갖고 있었던지 혹은 갖고 있는 것인지 이내 잊히고 말아 가끔씩 꺼내보는 일 조차 힘든 선물. 하지만 우리는 그 선물을 다시 꺼내보려고 한다.
자의식으로 무의식으로 종래엔 망각을 반복하는 삶은 일상의 평온함을 보장해주는 듯 보이지만 그에 따라오는 상실감은 복리의 이자가 붙어 수위를 높여간다. 그 수위가 콧잔등에 닿아 까치발을 하지 않고서는 숨을 쉴 수 없을 때가되면 우리는 소중했던 선물을 다시 꺼내어보게 된다는 것이다.
기쿠타 미쓰요가 Presents를 통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은 언젠가 우리가 받았고, 언젠가는 받을지도 모를 그런 선물이다.
평범하지만 부모님의 인생과 맞닿아있는 이름을 갖고 있고, 유년시전 하굣길에 알 수 없는 외로움이 엄습하면(어린나이에 조금 우습지만) 애꿎은 책가방만 빙글빙글 돌렸던 기억이 있으며, 처음 맞는 달뜬 기분에 캄캄한 밤 침대 위에서 되새겼던 첫키스의 추억이 있다.
그리운 사람과 그 관계속의 나를 떠올리게 하는 물건(냄비세트)이 있는가 하면 만나지 않겠다고 맹세를 거듭했던 첫사랑의 잊히지 않는 전화번호(성게전병)를 간직했기에 그녀를 다시 찾기도 했다. 또, 반복되는 상처에 어리석을 정도로 휩쓸렸던 때에는, 편지상자(비상열쇠)에 위안을 받기도 한다.
너무도 어리석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버리지 못한 자신을 감싸안아주는 베일 같은 새로운 사람에게 감화되기도 했다.
서로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고 생각했던 그림은 서로 다른 기억으로 갈무리 되어 그 관계를 지탱해주고 후일 다시 찾은 그 그림에서 위안을 얻으려고 할지도 모른다.
결코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지지부진한 삶에 지쳐 처절한 기분에 잠겼다가도 다음날 아침 어머니의 된장찌개(요리)에 기운을 되찾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더 이상의 기대도 미련을 남기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무언가를 버릴 수 있게 해준 선물(곰인형,눈물)도 있을 것이다.
그리워하지 않기 위해, 상처받지 않기 위해, 잊기 위해 망각의 과정을 반복하는 우리의 시대는 명실 공히 상실의 시대이다. 단순히 단어만 같을 뿐 의미가 전혀 다르기도, 단어는 다르지만 의미가 닿아있는 가쿠라 미쓰요와 나의 12가지 선물은 그런 상실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를 달콤하게 감싸주는 묘한 치유력을 가지고 있다.
문득 꺼내보는 것만으로 위안을 받을 수 있는 우리의 달콤한 선물을 기억하게 해주는 실마리가 이 책 ‘Presents'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