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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탐일기 - 디킨스의 만찬에서 하루키의 맥주까지, 26명의 명사들이 사랑한 음식 이야기
정세진 지음 / 파피에(딱정벌레) / 2017년 2월
평점 :
‘음식’이란 뭘까? [식탐일기]를 읽으면서 갑자기 한 문장이 머리를 훅 하고 스쳐 지나갔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먹기 위해 사는 사람, 그리고 살기 위해 먹는 사람.’ 생각해보니 정말로 먹는 걸 즐기는 사람이 있고, 또 입맛도 없지만 억지로 살기 위해 입으로 음식을 우겨넣는 사람도 있다. 나는 굉장히 예민하고 또 자기주장이 강해서 먹는 것과 관련해서는 좋고 싫음이 분명한 편이다. 오죽하면 엄마께서 “시댁에서도 하지 않는 시집살림을 너랑 살면서 한다.”고 하실까. 하늘이 두 쪽 난다 해도 아침에는 꼭 밥을 먹어야 하고, 장은 또 어찌나 예민한 지 육류는 소화를 시키지 못하고, 패스트푸드보다는 슬로우푸드를 선호하는(햄버거보다 나물, 치킨보다는 곤드레 밥을 좋아한다.), 이 ‘애늙은이’같은 입맛은 훨씬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지속돼 왔기 때문에 이제는 가족들도 포기(?)한 느낌이 강하다. 주관 뚜렷하지만 먹는 것을 그리 즐기지는 않는 내가 갑자기 ‘식탐’과 관련된 책을 읽게 된 이유는 뭐였을까?
[식탐일기]는 세계의 유명인들과, 또 그들과 관련된 음식들을 접목시켜 낸 책이다. 왕비, 작가, 음악가, 작곡가, 화가, 황제, 미식가, 배우, 무용가 등, 이렇게 나열해놓고 보면 공통점을 1도 찾아볼 수 없는 인물들이 ‘음식’으로 인해 하나가 되고, 그저 위인이나 먼 시대의 사람처럼 느껴졌던 그들과 동질감을 느끼게 되는 신비한 경험을 했다. 음식의 힘을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고나 할까. 처음 만나는 사람도, 나와는 정말 맞지 않을 것 같은 사람도 음식과 함께라면 어느새 어색함이나 껄끄러움이 싹 사라지는 경험을 우리는 모두 다 한 번쯤은 해 봤을 거다. [식탐일기]는 ‘음식의 힘’을 알려 주는 참 착한 책이었다.
고전의 중요성이 얼마 전에 대두되고 난 후, 내가 가장 먼저 집어든 책은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었다. 담임 선생님의 추천이 있기도 했지만, 전부터 꼭 읽고 싶었던 책이어서 단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골랐다. 처음 읽고 난 후, 뻔한 스토리이지만 등장인물들에 매료돼 세 번쯤은 읽었던 것 같다. 그렇게 훌륭한 명작을 탄생시킨 제인 오스틴이 즐겼던 음식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다름 아닌 바로 홍차였다. [오만과 편견]에도 자주 등장하지만, 당시 영국의 여성들이 즐겼던 티타임은 요즘 여성들이 카페에 가서 수다를 떠는 것과 같은 것. 티타임으로 제인 오스틴은 [오만과 편견]에 나올 다양한 일화들을 접할 수 있었다고 한다. 중국에서 들여 온 홍차로 인해 내가 사랑하는 고전 [오만과 편견]이 탄생할 수 있었다는 게 참 감사할 따름이다.
세계가 사랑하는 최고의 배우, 오드리 헵번. 그녀의 아름다움과 말년의 선한 일들은 잘 알고 있었지만, 어린 시절에 아사 직전까지 갔다거나, 너무 말라서 전쟁난민 지원모금을 위한 홍보용 포스터의 모델이 될 정도로 안타까운 모습이었다는 것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 2차 세계대전 때 먹을 것이 없어 튤립 구근을 캐 먹고 살았다는 헵번. 나중에 배우의 길을 걷게 되어 체중조절을 할 때에도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는 음식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초콜릿이었다. 당시 할리우드의 배우들은 풍만한 몸집을 갖고 있었는데 빼빼 마른 헵번의 등장으로 사람들에게 꽤 큰 충격을 주었다고 한다. 헵번의 몸매가 날씬했던 이유는 바로 어린 시절 굶주렸기 때문이라고. 어린 시절 아사 직전까지 갔던 헵번은, 한 네덜란드 병사가 주었던 초콜릿을 먹고 살았다고 한다. [식탐일기]를 읽고 나니 헵번이 자신처럼 굶주렸던 사람들을 위해 말년에 그렇게 노력했는지 알 것 같았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처럼 참 매력 있는 사람인 것 같다.
냉면을 좋아했던 고종, 바흐가 사랑했던 커피 등 참 많은 ‘의외의’ 인물들과 ‘의외의’ 음식 조합이라 참 신선하게 느껴졌던 책이다. ‘음식’의 위대함, ‘음식’의 힘을 새롭게 일깨워 준 것 같아 입 짧은 나도 책을 읽다 보니 어느 새 출출해지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머리말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한 구절을 적고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이 책의 또 다른 주인공은 명사들이 사랑했던 음식이다... 사람과 함께하면서 때로는 한 사회 전체를 변화시키는 동력이 되기도 했다. 앞으로도 음식은 보다 다채로운 인류의 역사를 써 나가는 데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7).”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