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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석학들은 어떻게 자녀를 교육할까 - 석학 35인이 한국 부모를 위해 쓴 자녀교육서
마셜 골드스미스 외 지음, 허병민 엮음, 박준형 옮김 / 북클라우드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어느 부모든지 자녀를 잘 양육하고 교육하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마음이 넘친 나머지 아이를 망치는 경우도 곁에서 종종 본 적이 있고, 또 뉴스로도 나오기 때문에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을까?”하는 고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기 때문에 늘 고민해 왔던 이 문제에 대해 다시 한 번 더 생각해보고자 [최고의 석학들은 어떻게 자녀를 교육할까]를 읽게 되었다.
저자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미국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했고 중학교를 다니다가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래서 한국과 미국의 교육방식의 차이점을 알고 있다. 무엇이 좋다, 나쁘다 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미국에서 배웠을 때의 기억을 토대로 말하자면 “훨씬 더 재미있게” 학습을 했던 것 같다. 그러한 좋은 기억들로 이 책에 등장하는 ‘석학’들이 서양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한국과는 또 어떤 다른 방법을 이용할까, 또 ‘석학’이니 어떤 식으로 자녀를 훈육했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책을 펼쳤다.
모든 석학들의 교육 방식은 자신들만의 철학을 바탕으로 세워진 것이라 무엇이 좋다 나쁘다 할 수 없을 정도로 모두 마음에 들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꼽자면, 로저 생크의 ‘좋아하는 일을 해야 행복할 수 있다는 불문율’이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그는 자신의 아들로 예를 들었는데, 그 아이는 지하철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아이였다. 다른 나라를 방문하거나 살더라도 지상은 밟아본 적이 거의 없다고 표현할 만큼 지하철만 타고 돌아다녔다. 그랬던 아이가 대학교에 가서 역사를 공부하겠노라고 선포하자, 그는 당장 아들에게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라고 말했다. ‘무엇을 전공해야 하느냐’고 묻는 아들에게, 그는 ‘네가 좋아하는 지하철’이라고 답했다. 아들은 교통 체계에 대한 꿈을 갖고 매일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출근하고 있다고 한다. 자신의 아들이 좋아하는 것을 파악하고 장점을 알아차린 로저 생크. 그는 대한민국의 부모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아이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떤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은 부모가 할 일이 아닙니다. 부모의 역할은 아이의 이야기를 듣는 겁니다. 그 다음에는 성인의 지식을 활용해 아이를 위한 실용적인 제안을 하는 거예요”(40).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미래를 위해 포기하는 요즘 세대를 바라볼 때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로저 생크의 말이 참 마음에 와 닿았다. 부모가 강요하지 않아도 학교 자체에서 그런 말을 계속 듣는 대한민국의 고등학생들에게 집에서마저 나도 모르게 강요한 것은 아닐까 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좋아하는 것을 하게 하라’는 이 간단한 것이 왜 이리 실천하기 힘든 것일까. 내 욕심 때문은 아닐까 하고 반성하게 됐다.
그리고 가장 감동스러웠던 글은 윌리엄 폴 영의 [한국의 부모들에게 쓰는 편지, 아이를 잘 키우고 싶나요?]였다. 익히 들어본 [오두막], [갈림길], [이브]의 저자인 그는 자신의 저서가 한국에 출판됐을 때 몇 년의 시간을 두고 방문했다. 그리고 몇 년 동안 ‘성과 중심’과 ‘체면 차리기’가 만연했던 대한민국의 사회가 바뀌었다는 것을 느꼈는데, 그것은 질문에서 느껴지는 절박함이었다고 한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단 한 명이라도 똑같지 않다. 쌍둥이마저 서로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는데, 그런 아이들에게 동일한 교육법을 적용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거다.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과거에는 ‘우리 아이에게는 맞겠지’라는 생각으로 “모든 사람들이 이 방법이 맞다고 생각하면 모든 아이를 그 방법에 맞춰 교육”했다고 한다(329). 아이라는 인격이 아닌, 오로지 ‘방법’에만 맞추어진 관심의 초점. 그래서 아이들은 그렇게 공부 기계가 되었고, 사회가 필요로 할 때 쓰이고 또 가차 없이 버려지는 ‘사회의 소모품’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교육은 그러한 아이들을 길러내는 하나의 도구일 뿐이었다.
그런데 사회가 바뀌고,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지자 ‘내 아이에게 맞는 교육법’을 찾는 부모들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저자도 말하다시피, ‘틀린 육아법’, ‘틀린 교육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내 아이와, 나와 맞지 않는 것뿐이다. 모든 사람들, 모든 아이들은 각자 다른 방법을 가지고 태어나고, 이를 찾기 위해서 부모님들과 선생님들이 단합해서 노력할 때 비로소 발견되는 것이다. 그 방법을 통해야만 “아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사람으로 자라는지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330).
윌리엄 폴 영은 이렇게 말한다.
“어느 부모나 마음 한구석에는 자신의 아이를 위한 교육법을 찾길 원합니다. 하지만 수많은 이유로 방해를 받습니다. 그럴 땐 기억하세요. 다른 누군가의 아이가 아닌, 내 아이를 행복하게 키우기 위해서는 때론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요. 교육을 위해서 아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위해서 교육이 존재하는 것임을 잊지 마세요”(331).
‘교육을 위해서 아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위해서 교육이 존재하는 것이다.’
참 당연하면서도 감동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마 내가 그렇게 살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생각해보면 나 자체의 존재로 인정받길 원하면서도 아이에게는 내가 생각하는 방식대로 자라나길 요구하는 것 자체가 나의 모순적인 행동이 아니었을까 하고 반성하게 됐다. 모든 아이들이 자신의 방법대로 자라나는 것이, 자신들의 방법대로 미래를 선택하는 것이 당연해지는 그 날이 하루 빨리 오길 바라면서 이 책을 덮었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