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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노블판)
스미노 요루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17년 4월
평점 :
일시품절
‘내’ 별명은 따분한 클래스메이트.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지 못해서 고립된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있는 한 소년이다. 그리고 또 다른 한 소녀. 밝고 털털한 매력을 갖고 있어 누구에게나 예쁨 받고 사랑 받는 아이인 ‘그녀’는 공통점 하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다 우연히 병원에서 ‘그녀’와 마주친 뒤, 비밀을 알고 있는 클래스메이트가 돼 버린 ‘나’
언제나 밝고 활기찬 그녀가, 늘 비밀을 알고 있는 클래스메이트라고 불러 줄 것만 같은 그녀가 췌장의 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그녀의 비밀을 지켜 주면서 비밀을 알고 있는 클래스메이트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덕분에 아주 시끌벅적한 삶을 살게 되었고.
책 속에서 ‘나’로 등장하는 소년은 열일곱 살 고등학생이지만, 남들과는 조금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그녀 역시 남들과는 조금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그것이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이었을까. 시한부 선고를 받고 난 이후 ‘투병일기’가 아닌 ‘공병일기’를 쓰기 시작한 그녀와, 그리고 병원에서 우연히 ‘공병문고’를 발견하고 읽게 된 소년. 그것을 발견한 그녀는 그 자리에서 소년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는다. 췌장에 병이 생겨서 얼마 살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가족 이외에는 이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것.
그녀는 소년에게 자신의 마지막 인생을 꾸며 줄 기회를 부여하겠다고 말한다. 소년은 ‘거절할 타이밍을 놓쳐서’ 하는 수 없이 약속장소에 다다르게 되고, 그렇게 한 번, 두 번씩 만나면서 서서히 타인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소년의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이 없느냐는 말에 리스트를 작성한 그녀는 고기 무한 뷔페도 가고, 라면 장인에게도, 신칸센을 타고 1박 2일로 여행도, 5성급 호텔에서 잠도 자 보기도 한다. 따분한 클래스메이트라고 불리는 그 한 소년과 함께.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는 제목은 처음에 반감을 불러 일으켰다. 그렇지만 다 읽고 나니 우악스럽다고 느껴졌던 그 제목이, 누군가에게는 절규에 가까운 부르짖음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 소녀는, 또 그 소년은 서로에게 과연 어떤 존재였을까. 어떤 사람에게든 오늘 하루의 가치는 똑같이 소중하다는 것, 꿈을 갖고 있을 때 사람의 존재는 더욱 더 반짝거린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고 “일상과 진실을 부여해주는 유일한 존재”이자 “타인을 인정할 수 있”고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 “타인을 사랑할 수 있”고 “타인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또 “인간성도 이상도 삶과 죽음에 대한 가치관도” 모조리 변하게 만든 존재 아니었을까. 자신의 존재 자체만으로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나 자신이 단 한 사람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소중한 사람 아니었을까.
“누군가 나를 먹어주면 영혼이 그 사람 안에서 계속 산다는 신앙도 외국에는 있다던데”(37). 책 초반부에 이 말이 화근이 되어 그녀는 소년에게 “췌장은 네가 먹어도 좋아.” 하고 말한다. 싫다고 단칼에 거절했던 소년은 책 후반부에 이렇게 고백한다.
“하지만 그때 알았다. 그녀가 나에게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알려준 그때에… 나는 어떻게 하면 네가 될 수 있었을까. 나는 어떻게 하면 네가 될 수 있을까… 그녀에게 선물하기에 이보다 더 적합한 말은 없었다.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그 말을 그녀의 휴대폰을 향해 보냈다. 나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250-251).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는 말은 단순히 그 단어가 뜻하는 그 의미가 아니었다. 사랑으로라는 단어로조차도 표현할 수 없는 이들의 감정을 함축적인 의미로나마 전달할 수 있었던 유일한 문장이었던 것이다. 삶의 막바지에서 ‘삶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왔던 소년을 향한 소녀의 마지막 말은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였다. 삶에 회의를 느끼고 있던 소년에게 억지로 시작했지만 결국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해 준 소녀를 향한 소년의 마지막 고백은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였다. 그녀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소년에게로부터 들었던, 처음이자 마지막 고백.
읽는 내내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열일곱 살. 이제 꽃 피울 나이인데 시한부 선고를 받은 인생이라니.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그들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하면서 자신의 비밀을 따분한 클래스메이트이자 비밀을 알고 있는 클래스메이트에게만 털어 놓는 그녀.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를 통해, 마지막 나날들을 힘껏 살아가고 있는 그녀에게서 ‘산다는 것’에 대해 배웠다. 인생의 말미에 서 있는 열일곱 살 고등학생 소녀를 통해.
“‘산다는 것은…… 아마도 나 아닌 누군가와 서로 마음을 통하게 되는 것. 그걸 가리켜 산다는 것이라고 하는 거야… 나 혼자서는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없어… 인간이 살아있다는 것에는 큰 의미가 있어. 나 스스로 선택해서 나도 지금 이곳에 살아있는 것처럼.’”(222).
살아있는 것 자체만으로, 내 존재 자체만으로도 감사하는 마음이 들게 하는, 벚꽃을 뜻하는 ‘그녀’의 이름인 ‘사쿠라’처럼 참 아름다운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