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링 미 백
B. A. 패리스 지음, 황금진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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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요, 어제 그분이 레일라를 봤답니다. 레일라가 사라진 지 12년이 흐른 어느 날, 갑작스레 핀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 정말 오랜만에 다시금 듣게 된 그 이름, 레일라. 핀은 집 앞에서 약혼녀가 러시아 전통인형 마트료시카를 발견하게 된 이후, 한편에 파묻어두었던 사건을 기억해낸다. 프랑스의 어느 한 도로변 주차장에서 볼일을 보고 나온 사이, 차에서 곤히 잠들어 있던 레일라가 갑자기 사라졌다.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찾을 수 없었던 레일라. 핀은 곧장 근처 경찰서로 향했고, 그곳에서 이렇게 진술했다. 이게 내가 경찰에 한 진술이었다. 진실이었다. 온전한 진실이 아니었을 뿐. 서로를 끔찍이도 사랑했던 핀과 레일라 두 사람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과연 핀이 숨기고 있는 ‘온전한 진실’은 무엇일까? 갑작스레 나타난 마트료시카의 의미는? 


바보 같다는 건 알지만 분명 레일라였어. 내가 상상한 걸지도 모르고, 그냥 머리 색이 빨간 다른 사람이었을지도 모르지만, 핀, 내가 본 건 분명 레일라였어! 레일라가 실종된 이후, 핀은 레일라의 추모식에 갔다가 그의 친언니 엘런과 급속도로 가까워지게 되었다. 서로를 사랑하게 된 두 사람은 결혼을 약속한다. 결혼식 날짜가 다가오고 있을 때 집 근처에 나타나게 된 마트료시카는 핀에게 12년 전에 있었던 레일라 실종사건을 떠올리게 하기 충분했다. 엘런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왜 하필, 두 사람이 결혼을 약속한 이후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일까? 그 인형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우리가 레일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루돌프 힐’이라는 낯선 사람에게서 온 이메일은 핀을 그야말로 ‘미치게’ 만든다. 만약 레일라가 살아 있다고 하면 어쩔래? 바로 여기. 


한때 자신을 열렬히 사랑했던 사람이, 자신을 영원히 사랑할 것만 같았던 사람이 거짓말처럼 자신의 친언니와 결혼을 약속하게 되었다면, 그리고 복수를 다짐하게 되었다면 그는 과연 정상이라고 볼 수 있을까? 러시아 인형과 파로스힐. 파로스힐 위의 러시아 인형. 사실이 아니다, 사실일 리가 없다. 이메일이 레일라한테 온 것일 리 없다. 그런데 결론은 그렇다고 말하고 있다. 의문만 남긴 채 홀연히 사라졌던 그의 존재가 약혼과 더불어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되자, 핀은 주변의 모든 것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가장 견디기 힘든 게 바로 모른다는 점이다. 그게 바로 내가 레일라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쪽을 택한 이유다. 이것은 핀과 엘런의 사이를 질투한 제삼자의 소행인 것일까? 아니면 정말로, 레일라가 살아 돌아온 것일까? 


<비하인드 도어>를 작년 이맘때 즈음 읽었다. 스릴러 소설답게 예상 밖의 전개가 이뤄져 저자 B. A. 패리스를 기억해두고 있었는데, 거짓말처럼 비슷한 시기에 또 만나게 되었다. 신작 스릴러 <브링 미 백>으로. 겁쟁이인 나도 ‘혼자 있을 때’ 읽을 수 있을 만큼 그 묘사가 잔인하지 않아서 개인적으로 스릴러 소설 중 선호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섭지 않은 거냐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다. B. A. 패리스의 심리 묘사는 무척 훌륭해서, 결말까지 마구 달린 이후에는 저절로 책을 한 번 더 읽게 된다. 중요하지 않은 줄 알고 지나쳤던, 사소하다고 생각한 디테일들이 결코 사소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 저절로 그리하게 된다. 잠깐, 어디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 않은가? 나를 다시 데려가, 너무 늦기 전에. 여름이 끝나가기 전에 스릴러 <브링 미 백>을 데려가, 너무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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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3
스즈키 루리카 지음, 이소담 옮김 / 놀(다산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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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얼굴도, 이름도 알지 못한다. 아니, 살아 계시긴 한 걸까? 궁금한 마음에 계속 엄마에게 질문하지만, 엄마는 대답해주지 않는다. 그저 하나미는 아빠라는 존재가 궁금한 것뿐인데. 초등학교 6학년인 하나미는 엄마와 단둘이 산다. 게다가 가난하다. 가끔 나쁜 아이들이 그 점을 가지고 하나미를 괴롭히지만, 어떤 것도 하나미를 속상하게 만들 순 없었다. 남자들도 버티기 힘들다는 공사 현장에서 막노동하며 하나미를 부족한 것 없이 키우려고 노력하는 엄마와 그런 엄마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하나미 사이에서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행복과 사랑이 흘러넘치고 있으니까. 그런데 아직 젊은 엄마가 결혼하지 못하는 이유가 자신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자, 하나미는 엄마의 앞길을 막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에 슬픔을 감추지 못한다. 하나미,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는 거야? 


자식을 불행하게 만들고 자기만 행복해지려는 부모는 없어. 네 엄마가 그렇게 힘든 일을 하는 건 다 너를 위해서야.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을 읽으면서 가장 먹먹했던 부분은 아직 한창 어리광부릴 나이에 일찍 세상을 알아버린 하나미의 모습이었다. 엄마가 고생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엄마가 더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 하나미는 어린아이가 들어갈 수 있는 보호시설까지 알아본다. 자책하는 하나미를 위로해주었던 말. 네가 있으니까 그렇게 열심히 사는 거라고. 엄마의 행복을 위해 네가 사라진다는 생각은 잘못됐어. 네가 없으면 엄마는 행복해지기는커녕 이 세상에서 최고로 불행해질 테니까. 여기서 하나미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하는 사실: 잊지 말자, 나는 엄마의 자부심이다.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을 읽으면서, 넉넉하게 살고 있지는 않지만, 사랑과 행복이 가득한 하나미 모녀의 모습을 지켜봤다. 무엇이 하나미로 하여금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로 태어나고 싶다’는 말을 하도록 만든 것일까 궁금했다. 그런데 그 사실은 책 초반부터 확인할 수 있었고, 책이 끝나갈 무렵에는 쐐기를 박듯 확인을 넘어 확신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아무리 절망적이고 최악의 상황이라도 그 사람 나름대로의 희망이 있으니까 살아가는 것 아닐까? 비록 바늘 끝처럼 보잘것없는 희망이라도, 희미한 빛이라도, 환상이라도, 그게 있으면 어떻게든 매달려서 살 수 있어. 하나미에게 있어서 그 ‘바늘 끝처럼 보잘것없는 희망’이자 ‘희미한 빛’, ‘환상’은 엄마였고, 엄마에겐 그 존재가 하나미였던 것이다. 서로를 위해 매일 충실하게 살아가는 모녀의 이야기. 감동을 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책,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 


슬플 때는 배가 고프면 더 슬퍼져. 괴로워지지. 그럴 때는 밥을 먹어. 혹시 죽어버리고 싶을 만큼 슬픈 일이 생기면 일단 밥을 먹으렴. 한 끼를 먹었으면 그 한 끼만큼 살아. 또 배가 고파지면 또 한 끼를 먹고 그 한 끼만큼 사는 거야. 그렇게 어떻게든 견디면서 삶을 이어가는 거야. 하나미 엄마의 인생 지론은 참으로 옳았다. 누구에게도 삶은 쉽지 않다. 하나미에게도, 하나미 엄마에게도,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에게도, 나에게도, 그리고 당신에게도. 그렇지만 우리는 또 밥 한 끼를 먹고 어김없이 살아나갈 것이다. 어제도, 오늘도 그랬듯이 내일도 마찬가지로. 왜냐면 우리는 모두 다 엄마의 자부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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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맨션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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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이 드문 공원의 간이 주차장, 홀로 삐뚤게 세워진 고급 승용차, 그 안에 죽었는지 잠들었는지 알 수 없는 여자. 도경은 밀랍 인형 같은 수의 가슴에 조심스럽게 손을 올려 보았다. 심장이 뛰지 않았다. 숨도 느껴지지 않았다. 누가 보아도 수상하고 섬뜩한 배경에서 모든 일은 시작됐다. 아니, 사실은 30여 년 전부터 이미 시작되었던 일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그날 그 차 안에서 벌어진 일로 인해 한 사람이 각성했고, 약하지만 확실한 몸짓으로 고치를 찢고 나와 나비가 되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는 것이다. 선명한 노란색. 활짝 편 양 날개 위에 눈동자처럼 동그랗게 소용돌이치는 검은 무늬를 가진 ‘나비’가 되어.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이 있었다. 이 ‘나비’가 ‘사하’라는 것이다. 


진경은 L2도 못 되었다. ‘사하’라고 불리었다. L도 L2도 아닌, 아무것도 아닌, 마땅한 이름도 없는 이들. “거대한 기업인지 국가인지 알 수 없는 이상한 도시국가”, 일명 ‘타운’은 “비밀스럽고 폐쇄적인 국가”다. 그곳에서 사하맨션은 유일한 통로 혹은 비상구 같은 곳이다. 타운에 사는 사람들은 주민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L-들과 체류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L2-, 크게 두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진경은 L에도, L2에도 포함되지 않은 ‘사하’였다. 다 쓰러져가는 맨션 ‘사하’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다 ‘사하’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누굴까. 본국 사람도 아니고 타운 사람도 아닌 우리는 누굴까. ‘사하’, 너희는 딱 거기까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성실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면 뭐가 달라지지? 누가 알지? 누가, 나를 용서해 주지? 엄마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사장을 죽인 동생 도경을 살리기 위해 본국의 법이 적용되지 않는 타운으로 숨어들어간 진경과 도경 남매. 하지만 타운은 알려진 것과는 달리 상당히 이상한 도시국가였다. 만나면 안 되는 사람이 있었다. 불러서는 안 되는 노래가 있었고 읽을 수 없는 책이 있었고 걸을 수 없는 거리가 있었다. 이상한 일인데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서 상식적인 사람들이 오히려 자신의 상식을 의심해야 했다. 너무도 이상한 일이 당연시되는 수상한 도시국가에서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하맨션의 ‘사하’들. 사랑하는 동생 도경을 포함한 많은 ‘사하’들이 곁에서 사라지자 진경은 모두를 구하기 위해 기꺼이 나방이 되었다. 불타는 타운의 중심으로 외로이 날라 가는, 나방.


아가미가 없는데 물속에서 살 수는 없잖아. 그 물이 설사 깨끗하고 따뜻하고 안전하다고 해도 그런 거잖아. 아예 못 사는 거잖아. 밖에서 보았을 때는 가장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것처럼 보였던,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타운 그리고 주민들. 이와 대조되는 사하맨션에 사는 ‘사하’들의 이야기를 그린 책 <사하맨션>. 디스토피아적인 도시 그리고 나라들의 이야기는 소설책에서도 꽤 자주 등장하는 소재 중 하나다. 재미있게 읽었던 <다이버전트> 시리즈나 <기억전달자> 배경도 역시 디스토피아다.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모든 게 ‘완벽해’ 보이는 ‘유토피아’라는 것. 실상은 디스토피아라는 것도 똑같다. <사하맨션>이 다른 책들과 차이점을 가지고 있는 게 있다면, <사하맨션>의 주인공은 한 명이 아닌 모든 ‘사하’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이들의 움직임으로 ‘나비’가 되었다는 것도. 


당신 틀렸어. 사람들은 원래 자리로 돌아가지 않았어. 그리고 나는 우미와 도경이와 끝까지 같이 살 거고. 30여 년 전부터 시작된, ‘사하’에서 온 나방들의 날갯짓은 때론 무시당하고 짓밟히고 꺾였다. 타운 권력의 핵심들은 꺾이고 부러지고 다친 나방들은 다시 날아오를 수 없을 거라고 단정 지었다. 하지만 진경은 더 높이, 더 멀리 날아갔다. 나방인지 나비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이. 그리고 그 움직임이 고치를 찢고 나올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을 <사하맨션>은 암시하고 있다. 시발점이 나비였는지 나방이었는지, 사하였는지 타운 주민이었는지 그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단지 고치를 찢고 나왔다는 것, 나비인지 나방인지 모를 그 존재의 날갯짓에 응답했을 거라는 확신,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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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 슈필라움의 심리학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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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라는 낯선 공간에서 혼자 좌충우돌하면서 ‘삶이란 지극히 구체적인 공간 경험들의 앙상블’이라고 정의 내렸다. ‘공간이 문화’이고, ‘공간이 기억’이며, ‘공간이야말로 내 아이덴티티’라는 이야기다. 바닷가의 작업실을 오랫동안 꿈꿔온 화가이자 문화심리학자인 작가 김정운은 그렇게 여수에 정착하기로 했다. 바닷가가 보이는 작업실에서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면서 자신만의 ‘슈필라움’을 확립하겠다고 말하는 작가. 그는 저서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에서 거듭 ‘슈필라움’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압축성장’을 경험한 대한민국의 사회심리학적 문제는 대부분이 ‘슈필라움’의 부재와 아주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심리적 여유 공간’은 물론 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물리적 여유 공간’도 부재하기 때문에.


‘물리적 공간’은 물론 ‘심리적 여유’까지 포함하는 단어 슈필라움은 독특하게도 오직 독일어에서만 존재한다. ‘놀이’와 ‘공간’이라는 단어의 합성어인 슈필라움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의 공간을 뜻하는데, 이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하고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우리말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에게 있어서 ‘슈필라움’은 그리 중요한 것으로 다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 김정운은 거듭 인간에게 있어서 여유 공간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이야기한다. 내 실존은 ‘공간’으로 확인된다. 공간이 의식을 결정한다. 그리고 말한다. 당신만의 슈필라움, 당신만의 ‘공간’을 찾으라고. 그곳에서 당신의 아이덴티티를 찾으라고 말이다. 


공연히 불안하면 미술관, 박물관을 찾아야 한다. 그곳은 불안을 극복한 인류의 ‘이야기’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미술관이나 박물관, 전시회를 찾아가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일까 궁금했는데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를 통해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공간이 주는 힘, 공간의 차이가 만들어낸 분위기 덕분이라는 것이다. 불안과 공포야말로 인간 문화와 예술의 기원이 된다는 이야기 역시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이야기를 해 주는 하나의 사실은 그렇게 분명해졌다. 인생을 바꾸려면 공간을 바꿔야 한다는 것, 공간은 매 순간 인간의 상호작용에 개입하고, 의식을 변화시킨다는 것. 


멀리 봐야 한다. 자주 올려다봐야 한다. 그래야 제한된 우리의 삶을 적극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창조적 통찰이 가능해진다.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그림들과 사진으로 엿본 작가 김정운의 바닷가 작업실은 정말 멋졌다. 다재다능한 사람이라는 것은 이 책 한 권을 통해서 금세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부러웠던 것은 책이 꽉 들어찬 작가 김정운만의 서재였다. 창을 통해서는 여수 바다를 마음껏 바라볼 수 있으니, 지루할 것 하나 없겠다 싶을 정도로 그만의 슈필라움은 완벽했다. 그에게 있어서 슈필라움은 무엇일까? 내가 정말 즐겁고 행복한 공간, 하루 종일 혼자 있어도 전혀 지겹지 않은 공간, 온갖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꿈꿀 수 있는 그런 공간이야말로 진정한 내 ‘슈필라움’이다. 작가의 고백처럼 나도 책장으로 둘러싸인 집에서 나만의 슈필라움, 나만의 공간을 확립하고 살겠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책을 덮으면서 모두 떠올려보시길. 당신만의 슈필라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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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타워
릴리 프랭키 지음, 양윤옥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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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니와 아부지와 나, 셋이서 함께 살아갈 곳이 생긴다면 그곳이 바로 내 동네가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떤 허름한 집이건 그곳이 내 집이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이었던 한 소년이 있었다. 주정꾼인 데다 가정에 충실하지 않았던 아버지 때문에 집안은 조용할 날이 없었고 소년이 기억하는 것은 셋이 함께일 때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뿐이었다. 소년이 네 살일 무렵 어머니와 소년은 집을 나섰고 그렇게 별거를 하게 되었다. 호적상으론 부부였지만 남남이나 다름없었던 시간 속에서 소년은 어느덧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아직 아무것도 없었다. 대학입시에 관해서도, 취직에 관해서도, 장래의 목표도 꿈도. 단지 분명하게 마음을 정한 것이 딱 한 가지가 있었다. “도쿄에 가고 싶고만.” 


고향에서 저 건너 먼 곳에 있다는 자유를 꿈꾸었다. 도쿄에 있는 자유는 멋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대학생이 되어 도쿄로 이사한 소년은 고향에서 어렵게 돈을 마련해 매달 부쳐주시는 어머니께 죄송한 것도 잠시, 그토록 원했던 자유를 마음껏 누리며 살아간다. 학교생활과 성적은 완전히 버려둔 채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보낸다. 돈이 필요하다고 어머니께 연락할 때 느끼는 죄책감과 수치심은 소년의 삶을 뒤바꿀 만큼 강렬하지 않았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러 어느새 소년은 30세가 되었고, 어머니는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기억 속 어머니와 달리 할머니가 된 어머니는 몹시 아팠다고 했다. 암이었다. 그제야 어른이 된 소년은 깨닫는다. 5월에 어느 사람은 말했다. 도쿄든 시골이든 어디서든 마찬가지야. 결국 누구와 함께 있느냐, 그게 중요한 일이라고. 


그것은 마치 팽이 심지처럼 꼭 한가운데 꽂혀 있다. 도쿄의 중심에. 일본의 중심에. 우리 모두가 가진 동경의 중심에. 그리고 우리는 소진된다. 질질 끌려갔다가 패대기쳐지고 만다. 너덜너덜 헤어져버린다. 부푼 꿈과 희망을 안고 마주한 도쿄는 아름다웠지만, 사실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피도 눈물도 없는 낯선 곳이었다. 고향을 등지고 올라온 수많은 청춘은 그곳에서 ‘착취당하는 측’이었고, ‘자신의 개성이나 판단력이 함몰되고 마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봐야만 했다. 수천 가지 색깔의 도회지를 숨을 헐떡이며 뛰어다니는 사이에 그 선명하게 아름다웠을 터인 만화경이 차츰 탁한 색깔로 보이기 시작한다. 회색에 빨강, 회색에 오렌지, 회색에 하늘색. 이 도시는 그런 사람들의 꿈과 희망, 회한, 슬픔을 잠들게 하는 커다란 묘지인지도 모른다. 도쿄를 상징하는 건물인 도쿄타워는 그렇게 잔인한 현실의 세상을 상징했다. 겉으론 무척 아름다워 보이지만, 속은 날카롭고 차가운. 도쿄를 동경했던 소년은 그 실상을 깨닫고 난 이후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젊은 시절을 바쳐가며 헌신하신 어머니가 암에 걸리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다. 자유를 추구하며 먼 길을 떠났다가 부자유를 발견하고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으레 그렇듯, 소년은 이미 너무 늦었다. 


이 이야기는…내 아버지와, …나, …내 어머니의 조그만 이야기다. 각기 다른 이유로 도쿄를 향해 걸어갔던 사람들. 그리고 각기 다른 이유로 도쿄를 떠나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 도쿄까지 따라 나왔다가 다시 돌아가지 못한 채 도쿄 타워 중턱에 영면한 내 어머니라는 문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도쿄타워>는 애초에 시작부터 어머니의 죽음을 이야기한다. 기승전결이 중요한 소설에서 작가는 대범하게도 결말을 벌써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어머니는 죽게 된다는 것. 그렇다면 결말이 알려진 이 책을, 우리는, 나는, 왜 굳이 읽어야 하는 걸까? 왜 책 끝 부분에서는 눈물을 흘리게 되는 걸까? ‘엄니’라는 단어는 왜 이리 구슬픈 걸까? 내 가장 소중한 사람. 단 한 사람의 가족. 나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살아준 사람. 내 엄니. 엄니가, 죽었다. 


<도쿄타워>를 읽는 내내 소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 자꾸만 떠올랐다. 어머니의 희생, 철없는 자식, 무뚝뚝한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까지. 제법 많은 부분이 겹친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도쿄타워> 초중반까지는 무척 지루했다. 뻔하다고 느껴지기까지 했다. 방황하는 소년을 묵묵히 지켜보는 일이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고, 소년의 거짓말에도 번번이 돈을 부치는 아픈 어머니의 모습은 안타까웠다. 그렇지만 후반부로 가면 갈수록 지루함은 사라졌다. 엄니는 엄니의 세계에서, 엄니의 의식의 우주에서 그곳에 몇 번이나 올라갔었는지도 모른다. 나와 함께 약속한 그곳에. 지루하다고 느꼈던 그 수많은 디테일들은 이 문장을 위한 빌드업 과정이었던 거라는 걸, 그제야 깨닫게 된 거다. 


그날, 우리는 그 도쿄 타워가 보이는 작은 방에서 셋이 함께 푹 잘 잤다. 뜻밖의 수미상관을 발견했다. 소년의 어머니 죽음이 예견돼 있었던 상황에 집중하느라 놓쳤던 마지막 문장에서. ‘그날’은 바로 어머니의 마지막 밤이었다. 죽음이라는 상황이 닥치고 나서야 몇십 년간 헤어져서 살았던 세 식구는 상봉할 수 있었다. 나와 아부지와 엄니. 우리 가족 셋이 같은 방 안에서 함께 자다니, 이건 몇 년 만일까. 엄니의 마지막 소원은 우리가 이렇게 같은 방에서 자는 것이었으리라. 셋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꿈이었던 소년의 꿈은 어머니의 임종 직전 이루어질 수 있었다. 함께였기 때문에 행복했고, 또 사랑했기 때문에 행복했던 소년과 소년의 엄니 이야기를 담은 책, 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읽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었는지 저절로 깨닫게 될 책, <도쿄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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