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 슈필라움의 심리학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수라는 낯선 공간에서 혼자 좌충우돌하면서 ‘삶이란 지극히 구체적인 공간 경험들의 앙상블’이라고 정의 내렸다. ‘공간이 문화’이고, ‘공간이 기억’이며, ‘공간이야말로 내 아이덴티티’라는 이야기다. 바닷가의 작업실을 오랫동안 꿈꿔온 화가이자 문화심리학자인 작가 김정운은 그렇게 여수에 정착하기로 했다. 바닷가가 보이는 작업실에서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면서 자신만의 ‘슈필라움’을 확립하겠다고 말하는 작가. 그는 저서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에서 거듭 ‘슈필라움’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압축성장’을 경험한 대한민국의 사회심리학적 문제는 대부분이 ‘슈필라움’의 부재와 아주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심리적 여유 공간’은 물론 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물리적 여유 공간’도 부재하기 때문에.


‘물리적 공간’은 물론 ‘심리적 여유’까지 포함하는 단어 슈필라움은 독특하게도 오직 독일어에서만 존재한다. ‘놀이’와 ‘공간’이라는 단어의 합성어인 슈필라움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의 공간을 뜻하는데, 이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하고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우리말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에게 있어서 ‘슈필라움’은 그리 중요한 것으로 다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 김정운은 거듭 인간에게 있어서 여유 공간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이야기한다. 내 실존은 ‘공간’으로 확인된다. 공간이 의식을 결정한다. 그리고 말한다. 당신만의 슈필라움, 당신만의 ‘공간’을 찾으라고. 그곳에서 당신의 아이덴티티를 찾으라고 말이다. 


공연히 불안하면 미술관, 박물관을 찾아야 한다. 그곳은 불안을 극복한 인류의 ‘이야기’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미술관이나 박물관, 전시회를 찾아가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일까 궁금했는데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를 통해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공간이 주는 힘, 공간의 차이가 만들어낸 분위기 덕분이라는 것이다. 불안과 공포야말로 인간 문화와 예술의 기원이 된다는 이야기 역시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이야기를 해 주는 하나의 사실은 그렇게 분명해졌다. 인생을 바꾸려면 공간을 바꿔야 한다는 것, 공간은 매 순간 인간의 상호작용에 개입하고, 의식을 변화시킨다는 것. 


멀리 봐야 한다. 자주 올려다봐야 한다. 그래야 제한된 우리의 삶을 적극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창조적 통찰이 가능해진다.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그림들과 사진으로 엿본 작가 김정운의 바닷가 작업실은 정말 멋졌다. 다재다능한 사람이라는 것은 이 책 한 권을 통해서 금세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부러웠던 것은 책이 꽉 들어찬 작가 김정운만의 서재였다. 창을 통해서는 여수 바다를 마음껏 바라볼 수 있으니, 지루할 것 하나 없겠다 싶을 정도로 그만의 슈필라움은 완벽했다. 그에게 있어서 슈필라움은 무엇일까? 내가 정말 즐겁고 행복한 공간, 하루 종일 혼자 있어도 전혀 지겹지 않은 공간, 온갖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꿈꿀 수 있는 그런 공간이야말로 진정한 내 ‘슈필라움’이다. 작가의 고백처럼 나도 책장으로 둘러싸인 집에서 나만의 슈필라움, 나만의 공간을 확립하고 살겠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책을 덮으면서 모두 떠올려보시길. 당신만의 슈필라움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