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타워
릴리 프랭키 지음, 양윤옥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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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니와 아부지와 나, 셋이서 함께 살아갈 곳이 생긴다면 그곳이 바로 내 동네가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떤 허름한 집이건 그곳이 내 집이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이었던 한 소년이 있었다. 주정꾼인 데다 가정에 충실하지 않았던 아버지 때문에 집안은 조용할 날이 없었고 소년이 기억하는 것은 셋이 함께일 때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뿐이었다. 소년이 네 살일 무렵 어머니와 소년은 집을 나섰고 그렇게 별거를 하게 되었다. 호적상으론 부부였지만 남남이나 다름없었던 시간 속에서 소년은 어느덧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아직 아무것도 없었다. 대학입시에 관해서도, 취직에 관해서도, 장래의 목표도 꿈도. 단지 분명하게 마음을 정한 것이 딱 한 가지가 있었다. “도쿄에 가고 싶고만.” 


고향에서 저 건너 먼 곳에 있다는 자유를 꿈꾸었다. 도쿄에 있는 자유는 멋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대학생이 되어 도쿄로 이사한 소년은 고향에서 어렵게 돈을 마련해 매달 부쳐주시는 어머니께 죄송한 것도 잠시, 그토록 원했던 자유를 마음껏 누리며 살아간다. 학교생활과 성적은 완전히 버려둔 채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보낸다. 돈이 필요하다고 어머니께 연락할 때 느끼는 죄책감과 수치심은 소년의 삶을 뒤바꿀 만큼 강렬하지 않았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러 어느새 소년은 30세가 되었고, 어머니는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기억 속 어머니와 달리 할머니가 된 어머니는 몹시 아팠다고 했다. 암이었다. 그제야 어른이 된 소년은 깨닫는다. 5월에 어느 사람은 말했다. 도쿄든 시골이든 어디서든 마찬가지야. 결국 누구와 함께 있느냐, 그게 중요한 일이라고. 


그것은 마치 팽이 심지처럼 꼭 한가운데 꽂혀 있다. 도쿄의 중심에. 일본의 중심에. 우리 모두가 가진 동경의 중심에. 그리고 우리는 소진된다. 질질 끌려갔다가 패대기쳐지고 만다. 너덜너덜 헤어져버린다. 부푼 꿈과 희망을 안고 마주한 도쿄는 아름다웠지만, 사실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피도 눈물도 없는 낯선 곳이었다. 고향을 등지고 올라온 수많은 청춘은 그곳에서 ‘착취당하는 측’이었고, ‘자신의 개성이나 판단력이 함몰되고 마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봐야만 했다. 수천 가지 색깔의 도회지를 숨을 헐떡이며 뛰어다니는 사이에 그 선명하게 아름다웠을 터인 만화경이 차츰 탁한 색깔로 보이기 시작한다. 회색에 빨강, 회색에 오렌지, 회색에 하늘색. 이 도시는 그런 사람들의 꿈과 희망, 회한, 슬픔을 잠들게 하는 커다란 묘지인지도 모른다. 도쿄를 상징하는 건물인 도쿄타워는 그렇게 잔인한 현실의 세상을 상징했다. 겉으론 무척 아름다워 보이지만, 속은 날카롭고 차가운. 도쿄를 동경했던 소년은 그 실상을 깨닫고 난 이후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젊은 시절을 바쳐가며 헌신하신 어머니가 암에 걸리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다. 자유를 추구하며 먼 길을 떠났다가 부자유를 발견하고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으레 그렇듯, 소년은 이미 너무 늦었다. 


이 이야기는…내 아버지와, …나, …내 어머니의 조그만 이야기다. 각기 다른 이유로 도쿄를 향해 걸어갔던 사람들. 그리고 각기 다른 이유로 도쿄를 떠나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 도쿄까지 따라 나왔다가 다시 돌아가지 못한 채 도쿄 타워 중턱에 영면한 내 어머니라는 문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도쿄타워>는 애초에 시작부터 어머니의 죽음을 이야기한다. 기승전결이 중요한 소설에서 작가는 대범하게도 결말을 벌써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어머니는 죽게 된다는 것. 그렇다면 결말이 알려진 이 책을, 우리는, 나는, 왜 굳이 읽어야 하는 걸까? 왜 책 끝 부분에서는 눈물을 흘리게 되는 걸까? ‘엄니’라는 단어는 왜 이리 구슬픈 걸까? 내 가장 소중한 사람. 단 한 사람의 가족. 나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살아준 사람. 내 엄니. 엄니가, 죽었다. 


<도쿄타워>를 읽는 내내 소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 자꾸만 떠올랐다. 어머니의 희생, 철없는 자식, 무뚝뚝한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까지. 제법 많은 부분이 겹친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도쿄타워> 초중반까지는 무척 지루했다. 뻔하다고 느껴지기까지 했다. 방황하는 소년을 묵묵히 지켜보는 일이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고, 소년의 거짓말에도 번번이 돈을 부치는 아픈 어머니의 모습은 안타까웠다. 그렇지만 후반부로 가면 갈수록 지루함은 사라졌다. 엄니는 엄니의 세계에서, 엄니의 의식의 우주에서 그곳에 몇 번이나 올라갔었는지도 모른다. 나와 함께 약속한 그곳에. 지루하다고 느꼈던 그 수많은 디테일들은 이 문장을 위한 빌드업 과정이었던 거라는 걸, 그제야 깨닫게 된 거다. 


그날, 우리는 그 도쿄 타워가 보이는 작은 방에서 셋이 함께 푹 잘 잤다. 뜻밖의 수미상관을 발견했다. 소년의 어머니 죽음이 예견돼 있었던 상황에 집중하느라 놓쳤던 마지막 문장에서. ‘그날’은 바로 어머니의 마지막 밤이었다. 죽음이라는 상황이 닥치고 나서야 몇십 년간 헤어져서 살았던 세 식구는 상봉할 수 있었다. 나와 아부지와 엄니. 우리 가족 셋이 같은 방 안에서 함께 자다니, 이건 몇 년 만일까. 엄니의 마지막 소원은 우리가 이렇게 같은 방에서 자는 것이었으리라. 셋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꿈이었던 소년의 꿈은 어머니의 임종 직전 이루어질 수 있었다. 함께였기 때문에 행복했고, 또 사랑했기 때문에 행복했던 소년과 소년의 엄니 이야기를 담은 책, 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읽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었는지 저절로 깨닫게 될 책, <도쿄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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