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 미트 - 인간과 동물 모두를 구할 대담한 식량 혁명
폴 샤피로 지음, 이진구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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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용 사료는 열대우림을 파괴하는 주범으로 사실상 지구의 허파를 죽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과거 개발도상국이었던 나라들이 부유해지면서 식물 위주의 식단에서 고기 위주의 식단을 찾게 되자 고기 소비는 인구가 2배 늘어날 동안 5배나 늘어났다. 동물을 사육하는 데 필요한 것들이 식물을 키우는 데 들어가는 양보다 훨씬 많아 비효율적이라는 것은 이미 많이 알려진 팩트다. 지구는 점점 늘어난, 그리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늘어날 고기 수요에 맞춰 사육할 수가 없다. 자연들은 파괴될 것이고, 자원들은 낭비될 것이다. 


현재 사람들은 부작용을 외면하면서 고기를 먹고 있습니다. 위생적이지 않은 환경에서 자란 동물들은 각종 질병에 걸려 죽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인간은 동물들을 한정된 공간에서 더 많이, 더 빨리 성장시키려 항생제를 남용해댔고, 결과적으로 몇몇 항생제는 인간에게 통하지 않게 되었다. 항생제 내성 때문이다. 도살장에서 긴장하고 주눅이든 채 끌려가 변을 보는 동물들이 있다. 이때 변 안의 세균이 묻게 돼 고기는 위험한 세균 감염으로부터 안전해질 수 없게 된다. 동물들의 사료를 키우기 위해 필요한 드넓은 목초지와 옥수수 밭과 대두 농장을 만들기 위해 숲과 습지를 파괴하게 된다. 사람들이 지금 먹고 있는 고기는 약물에 찌들고 끔찍한 환경에서 자란 동물에서 나온 것입니다. 훨씬 더 깨끗한 고기가 있다면 당연히 바꾸지 않을까요? 


스테이크를 먹고 싶다면 소를 키워서 도축할 것이 아니라 간단하게 스테이크만 키우면 된다. 소를 죽이지 않고 얻은 소고기 스테이크 칩과 같은 클린 미트, 청정고기는 무리하게 개체 수를 늘리면서 지구와 인간을 큰 위험에 빠뜨리는 축산 업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되어줄까? 고기를 배양하는 기술이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만큼 가격에 낮아지게 된다면, 그래서 보편화 된다면, 우리는 우리의 집에서 청정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끔찍한 방법으로 사육하고 도축당한 동물에게서 얻은 고기가 아닌, 클린 미트를. 이렇게 고기를 키울 경우 잠재적인 이점은 명확합니다. 동물복지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고, 비용은 저렴해지며, 영양소를 고기로 변환하는 효율성은 좋아지고, 환경에도 해를 입히지 않습니다. 


나는 완벽한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고기보다는 채소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채식을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랄까. 나에게 무슨 뚜렷한 신념이 있어서 시작했던 게 아니고, 단지 동물들이 불쌍했고 모든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시작해보고 싶었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나는 무척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 훨씬 쉽게 고기를 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고기 없이는 못 사는 사람들이 있다. 경각심을 가지고는 있지만 좋아하는 것을 끊기란 쉽지 않다. 그런 사람들에게 <클린 미트>는 제법 괜찮은 해답을 내놓는다. 사람들은 계속 고기를 먹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 지구나 동물들은 거의 피해를 입지 않을 방법을 소개한다. 답은, 클린 미트를 소비하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의 육류 시스템을 완전히 구시대의 유물로 만들려고 합니다. 헨리 포드의 자동차가 만들어진 이후 거리의 말들은 역사 뒤안길로 사라졌듯이, <클린 미트>에 나온 다양한 사람들과 그들의 노력이 빛을 발한다면 더 이상 동물이 고통 받는 일도 없어질 것이다. 이 책에서 나는 미래를 보았다. 인간의 음식과 의복이 될 운명을 타고난 동물의 생사에 무거운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고기, 달걀, 우유, 가죽을 즐길 수 있을, 오늘보다 더 밝을 내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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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와 꿀벌과 나
메러디스 메이 지음, 김보람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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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리 지르지 않은 건 그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벌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었으니까. 가족이 사무치게 그립다는 건 어떤 마음인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내게도 한때는 가족이 있었지만 하룻밤 사이에 사라져 버렸으니까. 어린 시절은 불행했다. 부모는 사랑했던 지난날들은 깡그리 잊어버린 듯이 매일 싸워댔다. 다섯 살도 채 되지 않은 어린 자녀들 앞에서 싸우는 것은 기본이었고, 언성이 높아져 온 마을에 쩌렁쩌렁 울릴 때까지 고함을 치는 것은 이미 일상이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언제부터 이렇게 된 것일까 메러디스가 의문을 가질 무렵, 부모는 갈라섰고 하루아침에 동생 매튜, 엄마와 함께 외조부모의 집으로 향했다. 


윙윙거리는 소리로 가득한 곳에 있는데 어쩐지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곳에 있으면 아무도 날 볼 수 없었고 또 누구도 나를 불쌍하게 여길 일이 없었다. 아빠의 이야기는 금지되었다. 질문해서도, 그리워해서도 안 되었다. 비탄과 자기연민에 사로잡힌 엄마를 귀찮게 구는 것도, 절대 권력자인 할머니의 말에 토를 다는 것도. 그때 메러디스는 할아버지와 꿀벌을 만난다. 자기 일에 이토록 집요하게 집중하고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으며 절대 포기하지 않는 이 생물에 이렇게 가까이 있다는 것이 나는 무척이나 좋았다. 꿀벌들과 함께할 때면 미소 짓는 할아버지를 만났다. 이 불행한 날들의 유일한 위안이 되어줄 존재들을 발견했다. 나는 부모를 잃었다는 슬픔에 깔려 무너지는 앞날을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앞날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메러디스와 꿀벌의 연인은 시작됐다. 


처음에는 제목을 읽고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에세이였다. 꿀벌을 통해 부모에게서는 얻을 수 없었던 귀중한 삶의 교훈을 받은 한 사람의 삶이 담긴. <할아버지와 꿀벌과 나>를 읽다 문득 예전에 본 <꿀벌대소동>이라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떠올렸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영화. 연예인 유재석이 주인공 목소리를 더빙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렸을 때 그 영화를 통해 벌을 무서워하기보다는 없어져서는 안 되는 귀중한 생명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꿀벌이 점점 사라지면서 벌을 지켜야한다는 것과 이와 관련된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는 요즘, 꿀벌에게서 인생을 배웠노라고 고백하는 누군가의 이야기는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한여름에 야외에서 시원한 아이스티를 마시다가 벌에게 뽀뽀 받은 적이 있다. 입술을 물어뜯긴 것이다. 달콤한 향이 나서 그랬는지 꿀벌 한 마리가 내 입술에 앉아 질근질근 씹었다. 정말 아팠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꿀벌이 없어져서는 안 되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잘 알지만, 그래도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어린 메러디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꿀벌은 두려움의 대상이고, 이유 없이 쏘는 생명체에 불과했다. 언제 어디서 공격할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라고나 할까. 그런 메러디스에게 할아버지는 말한다. 모든 생물은 각자 내면의 정서적 삶을 지니고 살아가는 신성한 존재라고. 꿀벌들이 이토록 다정한 존재라면 그 사실을 내가 직접 배워보면 어떨까? 이것이 <할아버지와 꿀벌과 나>를 다 읽은 독자들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하는 질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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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말해줘
이경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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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귀에 곰팡이가 핀 것 같기도 하고 거칠게 갈라진 소나무 껍질 같기도 한 허물은 D 지역 사람들에게만 흔히 발생되는 일종의 질병이다. 이것을 벗기려면 시 당국이 운영하는 방역 센터에서 약물을 주사해야 했다. 허물의 원인은 그저 유전병으로만 추측할 뿐이라, 깨끗해진 몸으로 방역 센터에서 나와도 얼마 되지 않아 다시 허물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었다. 고통스런 몇 주의 시간을 버텨야 하고 완치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센터를 꺼린다. 세상 사람들이 허물에 뒤덮여 사는 ‘나’를 꺼리듯. 


이 허물이 몸을 뒤덮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제때 약을 먹어야 한다. 하지만 몸에 허물이 있다면 취업이 되지 않는다. 허물을 없애기 위해 센터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도 일종의 시험을 통과해야 할 뿐 아니라 센터에서 치료받았다는 기록이 남기 때문에 취업도 되지 않는다. 과거 파충류 사육사였지만 산사태로 인해 동물원이 문을 닫고 직장을 잃었다. 약을 살 돈이 없어 제때 먹지 못하니까 허물이 자라났다. 그러자 아르바이트 자리에서 잘렸다. 바로 그때. 커다란 뱀을 봤어? 롱롱? 그때 나온 전설의 뱀 ‘롱롱’. 세상의 허물을 벗긴다는 전설 속 뱀이었는데, 허물을 벗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롱롱을 찾기 시작한다. 


방역 센터에서 후리라는 소년을 만난 ‘나’는 그곳에서 같은 방을 쓰는 사람들과 함께 전설 속 뱀인 롱롱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기서 나가게 되면 함께 롱롱을 찾으러 가자고. 그래서 이 지긋지긋한 허물에서 영원히 벗어나자고. 치료의 일환으로 이름 모를 약물을 주사받으러 가는 길. 입소한 첫날, 복도에서 누군가에게 끌려가는 한 남자를 보았다. 주사를 맞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던 나는, 우연히 공박사와 백신이라는 수상한 단어들을 듣게 된다. 도대체 공박사는 누구일까? 그는 어디로 끌려간 것일까? 그들은 왜 끌고 간 것일까?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더 끔찍한 사실이 그 밑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은 금세 알게 된다. 허물은 아무리 감춰도 스스로를 드러내는 존재이니. 숨기고 싶은 것은 그게 진실이라면 언제든지 드러나게 돼 있다. 일종의 디스토피아, 완벽해 보이지만 온갖 거짓과 악행이 일삼아지는 그 도시를 배경으로 작가가 사용한 장치는 허물이었다. 애써 외면하고 싶어도, 무시하려 해도 끝없이 발목을 잡고 몸을 무겁게 짓눌러 힘들게 만드는 것, 허물. 


공포는 방역 센터가 시민을 통제하는 도구입니다. 방역 센터에 숨겨진 비밀과 그 비리들을 하나 둘씩 알게 되면서 문득 공포라는 감정에 대해 생각했다. 사람들을 겁먹게 해서 체제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 그런 체제가 운영되는 것에 대해 침묵했던 수많은 관계자들이 역겨웠다. 의구심을 품은 몇 사람뿐 아니라 그들의 후손들에게 한 끔찍한 짓들은 과연 평생 용서받을 수 있을까? 나라면 그 체제에 의구심을 품을 수 있었을까? 나에게 닥쳐올 불행을 알면서도 용감하게 먼저 체제를 무너뜨리고자 앞장섰을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나’가 옳은 선택을 한 것인지,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인지, ‘롱롱’ 전설의 진실은 무엇이었는지. 결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작가의 표현 방식이 죽음을 뜻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말 그대로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한 가지 정말 확실한 것은, 사람들이 더 이상 농락당하지 않으리란 것이다. 용기 있는 선택을 한 몇 사람 덕분에 그들은 진실을 마주할 수 있게 되어 진실은 승리한다는 것을 보였으니 이것은 해피엔딩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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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이 설계한 사소하고 위대한 과학 - 슈퍼 히어로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세바스찬 알바라도 지음, 박지웅 옮김 / 하이픈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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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맨 슈트는 직접 만들 수 있는 것일까? 병약한 사람을 완벽한 신체의 캡틴 아메리카로 변신하도록 만드는 슈퍼 솔저 혈청의 성분은 무엇일까? 거미줄로 건물 사이를 날아다니는 게 가능할까? 라쿤 로켓의 명석한 인지 능력에는 어떤 기술이 숨겨져 있는 걸까? 스파이디 센스는 무엇일까? 호크아이의 엄청난 활 솜씨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토르처럼 천둥번개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건 가능할까? 스칼렛 위치의 세뇌 또는 환각을 일으키는 것은 어떤 원리일까? 현실에서도 거대 개미를 만드는 게 가능할까? 그루트가 몸을 자유자재로 성장 혹은 회복시킬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타임 스톤의 원리는?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 비밀은? 아이언맨의 동력로에 숨겨진 비밀은? 타노스의 핑거스냅은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까? 이 책에는 이 모든 질문의 해답이 다 들어 있다! 


맨티스는 안테나를 통해 흐르는 전류와 변화하는 페로몬을 감지, 상대방의 정서 상태를 읽어낼 수 있기 때문에 특유의 공감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스칼렛 위치의 세뇌 또는 환각은 오로지 자기장을 형성하고 전류를 움직일 수 있으며, 뇌와 관련돼 신경학 지식이 박사 수준, 혹은 그 이상으로 뛰어나다면 가능하다. 그루트의 능력은 빠르게 분열 가능한 조직이 몸 곳곳에 퍼져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토니 스타크의 나노 장비의 기본 단위는 나노 세포 수백만 개로 이루어진 나노 로봇이고, 스파이더맨의 웹 슈터와 직접 만들었다는 거미줄은 고등학생이 만들었다고 하기엔 믿기 어려운 것이다. 타노스의 핑거스냅은 짧게 보면 이득일지 모르나, 결국 개체 수가 늘어나 종의 생존이 위협을 받고 먹이사슬이 파괴돼 집단 멸종을 하게 만들 게 틀림없다. 토니 스타크가 사막 한복판 고철 더미에서 만들었던 동력로를 만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고, 파편을 제거했더라면 중금속 중독 증상 예방도 가능했다. 


솔직하게 말하겠다. 나는 마블 코믹스나 마블 영화의 팬이 아니다. 영화 개봉 날짜를 손꼽아 기다리지도, 영화 속 숨겨진 떡밥을 찾고 몇 번씩 돌려보는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참 운 좋게도 마블을 줄줄이 꿰고 있는 마블 덕후가 내 주위에 있어 간접적으로 마블 히어로들과 영화 근황을 들을 수 있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모두가 궁금했을 한 가지 질문이 문득 떠올랐다. 이 모든 게 실제로도 가능한 일일까? 이 책을 통해 그 질문에 대한 답도 얻을 수 있었지만, 가장 놀라웠던 것은 마블의 세계관이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디테일하고, 훨씬 더 과학적이었던 마블 히어로들과 그들의 능력. 


마블을 사랑하고, 마블 히어로들의 매력에 푹 빠진 사람이라면 나보다 훨씬 더 <마블이 설계한 사소하고 위대한 과학>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거라 난 확신한다. 작은 생각에서부터 시작되고 탄생한 영웅들의 이야기가 스크린으로 옮겨지고, 그 세계관에 사람들이 열광한 나머지 과학적인 분석까지 나오다니. 전혀 과학적인 분석을 예상하지 못했던 나에겐 꽤나 충격이었지만, 확실히 영화보다는 현실감 있었던 이 책. 마블 회사에서 승인이나 허가를 받지 않은 비공식 출판물이라지만 정말 그럴듯했다. 읽는 내내 마블 영화를 정주행해야 할까, 고민할 정도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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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일대의 거래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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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한 생명을 구하려면 어떤 희생을 치를 준비가 되어야 하는지를 다룬 짧은 이야기다. 프레드릭 배크만이 돌아왔다. <일생일대의 거래>로.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앞서 사뭇 비장하게 포문을 연 그는, 처음부터 책이 어떤 내용일지를 암시한다. 첫 번째 문장을 읽자마자 나는 내 나름대로 기승전결을 그려놨다. 좀 뻔하겠지만 뭐, 프레드릭 배크만인데, 의리가 있지. 아버지와 아들을 위한 소설이라고 하니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희생하는 이야기일 거라고 지레짐작했다. 비슷한 부류의 책, 많이 만나 봤으니까, 느낌 아니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넘긴 머리말, 그리고 찾아온 엄청난 충격. 안녕, 아빠다. 헬싱보리는 지금 크리스마스이브 아침일 텐데, 나는 사람을 죽였다. 


내 이기주의가 얼마나 강력할까? 모든 걸 거리낌 없이 사고팔 정도는 되지만 내가 시체를 밟고 올라갈 수도 있을까? 누굴 죽일 수도 있을까?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부유했고, 신문에 오르내릴 만큼 유명하기도 했다. 지금은 병원에 입원해 있는 암환자다. 죽음을 기다리는. 겉으로 보이는 삶은 그럴듯했지만 사실 진정으로 행복하지는 못했다. 오직 겉으로 보이는 삶에만 집착했던 과거의 실수 때문이었다. 한없이 이기적이었기에 가족과의 시간보다 돈을 택했고, 사랑과 애정을 갈구하는 하나뿐인 아들에게 매몰찬 말들만 쏟아냈다. 과거를 후회하고 있을 무렵, 눈앞에 다섯 살 여자아이가 나타난다. 죽으면 추워요? 똑같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그때 ‘사신’을 보았다. 다섯 살짜리 어린 아이를 데려가려고 하는 ‘사신’에게 겁 없이 맞섰다. 왜 그 아이여야만 하냐고. 사랑으로 보듬어 키우지 못한, 그래서 두고두고 후회가 되는 아들이 그 아이와 겹쳐보였다. 죽음을 죽음으로 맞바꿀 수는 없었다. 목숨을 목숨으로 맞바꿀 수만 있을 뿐. 아이를 살리기 위한 단 하나의 조건이었다. 단지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닌, 그 사람이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되어야 한다는 것. 너는 나를 믿는다. 너를 죽이지 않을 거라고. 나는 결정했다. 거래를 하기로. 너를 만난 직후, 바로. 


따뜻하고 감동적인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다. 동화 같은 분위기에 그렇지 못한 시작. 프레드릭 배크만의 전작들과는 다르게 난데없는 죽음과 살인으로 시작된 <일생일대의 거래>. 나도 안다, 동화는 대게 이런 식으로 시작하지 않는다는 거. 하지만 내가 한 생명을 앗아갔다. 생명을 앗아가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시점으로 전개된 이 거래는 참으로 위험천만한 거래였다. 영화 <코코>에서 남들의 뇌리에서 아주 잊히는 순간, 진정한 죽음이 찾아왔던 것처럼. 그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는 목숨 대 목숨으로, 한 사람을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사람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어쩌면 죽음보다 더 괴로울,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것’. 


미래뿐 아니라 과거까지 걸린 문제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당신이 앞으로 가게 될 길이 아니라 뒤에 남긴 발자취가 걸린 문제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게 전부라면, 그게 당신의 전부라면 누굴 위해 당신을 내어줄 수 있을까? 맨 처음 프레드릭 배크만이 시작하기 앞서 독자들에게 던진 질문이다. 처음에는 질문 자체를 완벽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책을 다 읽자마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 질문을 또 읽었다. 나였다면, 나는 거래를 했을까? 과연 어떤 조건으로 거래했을까? 누구를 위해서? 


항상 네 눈에 비치던 헬싱보리가 아주 찰나의 순간 내 눈에도 보였다. 네가 아는 어떤 것의 실루엣처럼. 고향. 그곳은 마침내 그제야 우리의 도시가 되었다. 너와 나의 도시가 되었다. 그리고 그거면 충분했다. 조만간 일어나겠구나. 크리스마스이브 아침이다. 이 아빠는 널 사랑했다. 역시 프레드릭 배크만이었다. 잘해준 것 하나 없는 아들에게 마지막 한 번이라도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아버지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울컥울컥했다. 읽는 시간은 짧았지만 계속 내용을 곱씹게 되었던 <일생일대의 거래>. 당분간은 <일생일대의 거래>를 두고두고 읽으며 이 책이 자신의 인생책이라 말한 누군가의 말처럼 세 번은 연달아 읽을 작정이다. 아, 휴지는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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