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와 꿀벌과 나
메러디스 메이 지음, 김보람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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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리 지르지 않은 건 그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벌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었으니까. 가족이 사무치게 그립다는 건 어떤 마음인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내게도 한때는 가족이 있었지만 하룻밤 사이에 사라져 버렸으니까. 어린 시절은 불행했다. 부모는 사랑했던 지난날들은 깡그리 잊어버린 듯이 매일 싸워댔다. 다섯 살도 채 되지 않은 어린 자녀들 앞에서 싸우는 것은 기본이었고, 언성이 높아져 온 마을에 쩌렁쩌렁 울릴 때까지 고함을 치는 것은 이미 일상이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언제부터 이렇게 된 것일까 메러디스가 의문을 가질 무렵, 부모는 갈라섰고 하루아침에 동생 매튜, 엄마와 함께 외조부모의 집으로 향했다. 


윙윙거리는 소리로 가득한 곳에 있는데 어쩐지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곳에 있으면 아무도 날 볼 수 없었고 또 누구도 나를 불쌍하게 여길 일이 없었다. 아빠의 이야기는 금지되었다. 질문해서도, 그리워해서도 안 되었다. 비탄과 자기연민에 사로잡힌 엄마를 귀찮게 구는 것도, 절대 권력자인 할머니의 말에 토를 다는 것도. 그때 메러디스는 할아버지와 꿀벌을 만난다. 자기 일에 이토록 집요하게 집중하고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으며 절대 포기하지 않는 이 생물에 이렇게 가까이 있다는 것이 나는 무척이나 좋았다. 꿀벌들과 함께할 때면 미소 짓는 할아버지를 만났다. 이 불행한 날들의 유일한 위안이 되어줄 존재들을 발견했다. 나는 부모를 잃었다는 슬픔에 깔려 무너지는 앞날을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앞날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메러디스와 꿀벌의 연인은 시작됐다. 


처음에는 제목을 읽고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에세이였다. 꿀벌을 통해 부모에게서는 얻을 수 없었던 귀중한 삶의 교훈을 받은 한 사람의 삶이 담긴. <할아버지와 꿀벌과 나>를 읽다 문득 예전에 본 <꿀벌대소동>이라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떠올렸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영화. 연예인 유재석이 주인공 목소리를 더빙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렸을 때 그 영화를 통해 벌을 무서워하기보다는 없어져서는 안 되는 귀중한 생명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꿀벌이 점점 사라지면서 벌을 지켜야한다는 것과 이와 관련된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는 요즘, 꿀벌에게서 인생을 배웠노라고 고백하는 누군가의 이야기는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한여름에 야외에서 시원한 아이스티를 마시다가 벌에게 뽀뽀 받은 적이 있다. 입술을 물어뜯긴 것이다. 달콤한 향이 나서 그랬는지 꿀벌 한 마리가 내 입술에 앉아 질근질근 씹었다. 정말 아팠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꿀벌이 없어져서는 안 되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잘 알지만, 그래도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어린 메러디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꿀벌은 두려움의 대상이고, 이유 없이 쏘는 생명체에 불과했다. 언제 어디서 공격할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라고나 할까. 그런 메러디스에게 할아버지는 말한다. 모든 생물은 각자 내면의 정서적 삶을 지니고 살아가는 신성한 존재라고. 꿀벌들이 이토록 다정한 존재라면 그 사실을 내가 직접 배워보면 어떨까? 이것이 <할아버지와 꿀벌과 나>를 다 읽은 독자들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하는 질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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