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을 말해줘
이경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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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귀에 곰팡이가 핀 것 같기도 하고 거칠게 갈라진 소나무 껍질 같기도 한 허물은 D 지역 사람들에게만 흔히 발생되는 일종의 질병이다. 이것을 벗기려면 시 당국이 운영하는 방역 센터에서 약물을 주사해야 했다. 허물의 원인은 그저 유전병으로만 추측할 뿐이라, 깨끗해진 몸으로 방역 센터에서 나와도 얼마 되지 않아 다시 허물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었다. 고통스런 몇 주의 시간을 버텨야 하고 완치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센터를 꺼린다. 세상 사람들이 허물에 뒤덮여 사는 ‘나’를 꺼리듯. 


이 허물이 몸을 뒤덮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제때 약을 먹어야 한다. 하지만 몸에 허물이 있다면 취업이 되지 않는다. 허물을 없애기 위해 센터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도 일종의 시험을 통과해야 할 뿐 아니라 센터에서 치료받았다는 기록이 남기 때문에 취업도 되지 않는다. 과거 파충류 사육사였지만 산사태로 인해 동물원이 문을 닫고 직장을 잃었다. 약을 살 돈이 없어 제때 먹지 못하니까 허물이 자라났다. 그러자 아르바이트 자리에서 잘렸다. 바로 그때. 커다란 뱀을 봤어? 롱롱? 그때 나온 전설의 뱀 ‘롱롱’. 세상의 허물을 벗긴다는 전설 속 뱀이었는데, 허물을 벗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롱롱을 찾기 시작한다. 


방역 센터에서 후리라는 소년을 만난 ‘나’는 그곳에서 같은 방을 쓰는 사람들과 함께 전설 속 뱀인 롱롱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기서 나가게 되면 함께 롱롱을 찾으러 가자고. 그래서 이 지긋지긋한 허물에서 영원히 벗어나자고. 치료의 일환으로 이름 모를 약물을 주사받으러 가는 길. 입소한 첫날, 복도에서 누군가에게 끌려가는 한 남자를 보았다. 주사를 맞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던 나는, 우연히 공박사와 백신이라는 수상한 단어들을 듣게 된다. 도대체 공박사는 누구일까? 그는 어디로 끌려간 것일까? 그들은 왜 끌고 간 것일까?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더 끔찍한 사실이 그 밑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은 금세 알게 된다. 허물은 아무리 감춰도 스스로를 드러내는 존재이니. 숨기고 싶은 것은 그게 진실이라면 언제든지 드러나게 돼 있다. 일종의 디스토피아, 완벽해 보이지만 온갖 거짓과 악행이 일삼아지는 그 도시를 배경으로 작가가 사용한 장치는 허물이었다. 애써 외면하고 싶어도, 무시하려 해도 끝없이 발목을 잡고 몸을 무겁게 짓눌러 힘들게 만드는 것, 허물. 


공포는 방역 센터가 시민을 통제하는 도구입니다. 방역 센터에 숨겨진 비밀과 그 비리들을 하나 둘씩 알게 되면서 문득 공포라는 감정에 대해 생각했다. 사람들을 겁먹게 해서 체제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 그런 체제가 운영되는 것에 대해 침묵했던 수많은 관계자들이 역겨웠다. 의구심을 품은 몇 사람뿐 아니라 그들의 후손들에게 한 끔찍한 짓들은 과연 평생 용서받을 수 있을까? 나라면 그 체제에 의구심을 품을 수 있었을까? 나에게 닥쳐올 불행을 알면서도 용감하게 먼저 체제를 무너뜨리고자 앞장섰을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나’가 옳은 선택을 한 것인지,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인지, ‘롱롱’ 전설의 진실은 무엇이었는지. 결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작가의 표현 방식이 죽음을 뜻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말 그대로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한 가지 정말 확실한 것은, 사람들이 더 이상 농락당하지 않으리란 것이다. 용기 있는 선택을 한 몇 사람 덕분에 그들은 진실을 마주할 수 있게 되어 진실은 승리한다는 것을 보였으니 이것은 해피엔딩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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