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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깽이 - 불행했던 과거를 행복으로 바꿀 수 있는 당신의 능력
송영규 지음 / 좋은땅 / 2019년 4월
평점 :
품절
표지 속 에곤싈레의 자화상이 눈길을 끈다. 좋은땅(출판)이란 글씨마저도 그림의 강렬함을 헤치지 않으려는 듯 정갈하게 자리 잡고 있다. 낯선 듯 익숙한 그림이 거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소설 <빼깽이>는 알코올 중독 아버지로 인해 파괴된 가정과 그 구성원의 이야기인 동시에 극복과 치유의 이야기이다. 남의 이야기를 보고 있는 듯 나의 이야기를 읽고 있는 듯 초상화와 자화상 사이 어디쯤의 이야기이다.
얄궂게 잘도 읽힌다. 이렇게 괴롭고 아픈 이야기가.
주인공이 고향 집 감나무 앞에 서기 전까지 활자를 쫓는 눈은 거침없었고 책장을 넘기는 손은 부지런했다. 가끔 삐져나오는 한숨이 감정을 토닥여보지만 이내 폭발하고 만다. 말도 안 돼!
한참 후에야 책장을 다시 펼쳐 성인이 된 주인공의 시간을 함께 겪었다. 화해와 용서 그리고 치유라는 표면적 해피엔딩에 이를 때까지. 하지만 여전히 뇌리에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람들만이 남는다. 베어낸 감나무가 기억의 뿌리까진 뽑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소설 빼갱이 속 인물은 투명하고 서사는 진부하다. 그래서 인물을 바라보는 독자는 곧잘 천리안이 되곤 한다. 책장 몇 장만을 넘겨봐도 그 끝이 보인다. 그들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지 말이다. 노인의 연륜은 사치일 뿐이다. 그래서 예상외 전개인 감나무 앞 살풍경은 머리와 가슴을 강렬히 흔들어 놓는다.
집 밖이든 안이든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마시는 아버지를 보며, 모든 흐르는 물이 바다가 최종 목적지이듯 할머니는 내가 어른이 되기도 전에 어디로 흘러갈지 알고 계신 듯 했다. (p8)
열악한 환경, 어머니의 부재, 일상이 되어버린 폭력, 어느 누구도 자신들을 구원할 수 없다는 좌절감... 이 안에서 어린아이를 채우는 건 무기력함 뿐이다. 장남의 어깨를 짓누르는 책임감과 부담감은 결국 아이를 주저앉히고 음으로 향하게 한다. 되어야만 하는 것과 될 수 있는 혹은 되어지는 것의 괴리가 너무 큰 것이다. 그래서 소설 빼깽이의 인물들에게 '왜 그렇게밖에 못 사냐'는 둥 '아버지와 다를 게 뭐냐'는 둥 '개천에서 용 난다'는 둥의 비난과 뭣 모르는 소리는 거부하고 싶어진다.
난 항상 사람들에게 불행을 몰고 왔다. 착한 아이, 착한 아들이 되고 싶었다. 나는 어느새 그렇게 싫어하고 벗어나려고 했던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었다. (p181)
너무나 현실적이었던 극의 전개는 이 이야기가 소설이어야만 한다는 듯이 흔하디흔한, 허구보다 더 거짓말 같은 결말을 선택한다. 아버지에 대한 이해, 용서, 그리고 물보다 진한 피의 동맹을 되새기며 끝이 난다. 오히려 칼부림이 일건 삭막한 바람이 불건 하는 식의 마무리가 더 자연스러웠을지 모르겠다. 소설이 소설다운 결론을 내리는 것이 마뜩지 않을 만큼 소설<빼깽이>는 진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