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뒷모습은 많은 것을 상상하게 한다. 표정도 시선도 생각도 앞모습에 숨겨 있기 때문이다. 시의 은유적 표현 속에 가려진 수많은 의미처럼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읽어낼 수 있다. 누군가의 뒷모습이 어떤 감정을 발산하고 있는지. 우리는 안다. 타인의 뒷모습에서 읽어낸 감정이 다름 아닌 우리의 내면이라는 것을. 그래서 시를 읽는다는 건 지금 자신의 마음을 엿본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노을이 진다.태양은 한 번 밝게 신호를 보내고어둠을 잔뜩 던져두고 가버린다.이제 일어나야겠다.내 몸의 오감을 일깨우고 죽음에서 깨어나야겠다('잠' 중에서 )여럿의 감정이 마음에서 일렁이는 밤, <어두운 밤이 하루의 끝을 잡아당긴다>는 시린 어둠 속에서 나 자신, 나의 진짜 마음과 마주하게 한다. 세상의 끝, 생의 끝에 서서 다시 시작될 나와 세상의 이야기가 시가 되어 묵직하게 흐른다. 흑백으로 처리된 사진이 시의 차분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심연으로 더 끌어당기는 듯하다. 불안과 혼돈, 슬픔과 좌절의 끝에 순수와 희망이 있다는 듯이 거침없이 극으로 극으로 감정을 몰아넣는다. 진실을 찾지 마라다 거짓이다.어디에도 진실은 없다.유일한 진실은 진실을 찾기 위한 노력일 게다.(진실 p107)진실과 거짓이, 나와 우리가 혼재한 시간을 헤매는 시인의 거친 호흡이 시가 된다. 세상에서 가장 멀리해야 할 건희망인 것을세상을 망각한 채 또다시희망을 한다.(망각 p62) 어둠의 끝에서 빛을, 절망 끝에서 희망을, 추함 끝에서 아름다움을. 하나의 시가 수개의 시가 되는 동안 감정도 판단도 그 극과 극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고통의 신음이든 입버릇이 되어버린 넋두리이든 시이든 시를 닮은 산문이든 책<어두운 밤이 하루의 끝을 잡아당긴다>은 때론 내 마음 같아서 때론 내 마음 같지 않아서, 쌓이기만 하는 감정의 찌꺼기를 비워내는 시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