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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의 시대 - 치열하게 살았는데 왜 이토록 허무한가
조남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9월
평점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서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우리는 풍요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손가락 하나로 세상의 모든 정보를 얻고, 버튼 한 번으로 지구 반대편의 물건을 구매합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물질적으로 진보한 이 정점에서, 우리는 가장 근원적인 질문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하고, 오히려 소음과 속도 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영혼의 공허함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조남호 작가님의 <공허의 시대>는 이 고질적인 시대병에 대한 예리하고도 냉철한 진단입니다.
이 책은 단순히 현대인의 피로감이나 스트레스를 논하는 심리 에세이가 아닙니다. 철학, 사회학, 미학을 아우르는 깊이 있는 통찰을 바탕으로, 현대 자본주의와 기술 문명이 인간의 내면을 어떻게 ‘비워냈는지’를 구조적으로 해부합니다. 이 시대의 공허함이 단순히 개인의 나약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구축해 온 시스템 자체의 결함에서 발생한다고 주장합니다. 효율성과 생산성이 최고 가치로 추앙받으면서, 인간의 비효율적이고 사적인 영역, 즉 사색과 여백, 진정한 관계의 공간이 사라졌다고 말합니다.
이 책은 공허함의 핵심 동력으로 ‘욕망의 체계화’를 지적합니다. 현대사회는 대중매체와 알고리즘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욕망을 주입하고 있으며, 우리는 이 주입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끝없이 소비하고 경쟁하는 쳇바퀴에 갇혀 있습니다. 소비의 순간적인 쾌감은 잠시 공허를 덮어주지만, 결국 그 쾌감의 소멸과 함께 더 큰 공허를 남긴다는 역설을 날카롭게 포착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가졌는가’로 존재 가치를 증명하려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나 자신’은 시스템의 부속품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비판입니다.
특히 작가님은 현대 사회에서 ‘경계’가 무너지는 현상에 주목합니다. 일과 삶의 경계, 현실과 가상의 경계,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경계가 희미해지면서 인간은 쉴 틈 없는 노출과 감시 아래 놓이게 됩니다. 스마트폰이라는 작은 기기가 우리의 모든 경계를 허물고, 언제나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강박을 심어주면서, 인간은 고독을 두려워하게 되고, 그 고독을 채우기 위해 더욱더 외부 세계에 의존하는 악순환에 빠집니다. 이러한 분석은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모호한 불안의 원인을 명확하게 짚어주고 있습니다.
<공허의 시대>가 가진 미덕은 단순히 현실을 비판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작가님은 이 공허를 극복하고 ‘다시 채울’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합니다. 그 해답은 역설적으로 ‘멈춤’과 ‘비움’에서 시작됩니다. 외부의 소음을 차단하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 즉 사색의 복원이 그 출발점이라고 제안합니다. 또한, 목적 없이 존재하는 것의 아름다움, 즉 ‘무용(無用)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것이 중요함을 역설합니다.
세상이 제시하는 '효율성이라는 잣대'에서 벗어나, 인간적인 교감, 예술적 감수성, 그리고 윤리적 성찰을 통해서 잃어버린 내면의 충만함을 되찾을 수 있다고 독려합니다. 특히 ‘장소성’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디지털 공간이 아닌,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이웃과 눈을 맞추고, 자연의 변화를 온전히 느끼며, 몸의 감각을 회복하는 것이 공허를 이겨낼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현대인에게 잃어버린 ‘뿌리’를 되찾고, 삶의 의미를 일상 속에서 재구성할 것을 촉구하는 실천적 제안입니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합니다. 우리가 추구해 온 풍요가 사실은 정신의 빈곤을 초래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작가님의 섬세하고 사려 깊은 문장들은 독자들이 이 진단에 절망하는 대신, 희망적인 성찰의 여정을 시작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이 책을 통해 공허함의 정체를 파악하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재설계할 용기를 얻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은 현대 사회의 압력 속에서 길을 잃고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특히 다음과 같은 독자들에게 큰 울림을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30대 청년 및 사회 초년생: 끝없는 스펙 경쟁과 취업의 압박 속에서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바쁘게 사는가'라는 근본적인허무함을 느끼는 독자들에게 추천합니다. 책은 불안의 원인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에서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며, 방향성을 재설정할 수 있는 철학적 기반을 제공합니다.
2. 번아웃(Burnout)을 경험한 직장인 및 전문직: 과도한 효율성과 성과주의에 지쳐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이들에게 필요합니다. 책에서 제시하는 '멈춤'과 '무용의 가치'는 소진된 내면을 회복하고 삶의 균형을 되찾는 데 중요한 통찰을 줍니다.
3. 사회 변화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원하는 지식인 및 사상가: 기술 발전과 자본주의의 미래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갖고 싶어 하는 독자, 혹은 현대 철학이나 사회학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필수적인 교양서가 될 것입니다. 현대 문명의 역설을 명확한 논리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