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식탁 이야기 - 처진 어깨를 도닥거리는 위로와 초대
김호경 지음 / 두란노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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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식탁규율을 넘어서며, 그 너머에 있는 생명으로 이끈다. 예수는 특정 장소나 특정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어느 곳에서든 생명과 구원을 누릴 수 있는 식탁으로 사람들을 초대한다. 그곳에서 예수는 함께 먹으며 위로하고 희망을 전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거룩한 떡이다.

p.31



건축에서 건축 자재가 중요하듯이, 설교자들에게 언어는 기본 재료와도 같습니다. 매 번, 설교문과 서평을 쓸 때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매끄럽고 전달력있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를 고민합니다.


건축 자재가 잘 조합되어 아름다운 건축물이 완성되듯이, 언어가 잘 조합될 때, 아름다운 글이 완성됩니다. 이 책의 저자 김호경 교수는 국문학을 전공한 문학도답게 명료하게 성경 이야기를 풉니다.



전작 《예수가 하려던 말들》에서 예수의 비유 속에 담긴 의미를 쉽게 풀어냈다면, 이번에 출간된《예수의 식탁 이야기》에서는 성경 속 식탁 이야기를 통해, 신앙과 복음의 의미를 쉽게 풀어냅니다.



성경에는 먹는 이야기가 유독 많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먹보'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로 끊임없이 누군가와 함께 먹고 마시는 행위를 반복 하셨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제자들과 함께,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삭개오 집에서 삭개오와 함께, 갈릴리로 다시 돌아간 실패한 제자들과 함께,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와 함께 예수님은 먹고 또 먹습니다.

예수님의 이야기 속에 왜 이렇게 먹는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는 것일까요? 저자는 성경에 기록된 수 많은 식탁 이야기 속에 담겨 있는 놀라운 복음의 진리를 우리에게 명료한 언어로 전해줍니다.



저는 설교하는 목회자지만, 지금도 제 자신에게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들이 있습니다. 어떤 질문을 던지냐고요? '복음이란 무엇인가?' '신앙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은 누구신가?', '예수님은 누구신가?' 와 같은 아주 기본적인 질문입니다.


너무 뻔한 질문, 쉬운 질문 아니냐는 생각이 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그 질문들을 영혼에 품은 채, 성경과 성령 안에서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번에 읽은 김호경 교수님의 책은 제 자신에게 던졌던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에 지도의 역할을 해 준 고마운 책입니다. 저의 신앙 여정에 도움이 된 이 책을 기쁜 마음으로 추천합니다. 이 책이 여러분의 신앙 여정에도 큰 은혜와 도움을 주리라 확신합니다.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분들

★ 예수님의 식탁 이야기를 통해 복음을 맛보기 원하는 분들.

★ 신앙의 매너리즘에 빠져서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 분들.

★ 복음을 전하고 설교하는 사역자 및 목사님들.

★ 김호경 교수님의 책을 애독하는 독자분들.



이 책에 밑줄 친 부분들

p.11-12

내가 예수에게 듣고 싶은 한마디, 예수가 할 것 같은 한마디는 "밥은 먹었니?"다. 그것은 처진 내 어깨를 도닥거리는 따스한 힘이자 잘잘못으로 평가받는 지친 일상을 뛰어넘는 위로가 될 것 같다. 결국 구원이란 이런 위로가 아닐까

p.17-18

하나님은 떠돌이다. 그는 언제나 우리를 찾아오시며 우리를 찾기 위해서 움직이시는 존재다. 어디든지, 언제라도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모습은 예수에게 그대로 투영된다. 예수는 하나님과의 동등 됨도 마다하고 스스로 자신을 버리고 사람의 모양으로 우리에게 왔다. 우리에게 나타난 하나님으로 말이다. 하늘에서 땅으로, 하나님의 영에서 육신을 입은 사람으로의 이동은 하나님의 자유처럼 예수의 자유를 드러낸다. 예수의 자유는 단 하나의 목적만을 가진다. 그것은 우리를 위한 구원이다. 예수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자유롭게 움직인다. 예수의 구원은 집에서도, 광야에서도, 길거리에서도, 어디에서든 가능하다. 그 모든 곳에서 예수는 말씀을 가르치고 병자를 고친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먹고, 또한 그들을 먹인다. 예수가 있는 곳에는 예수의 식탁도 있다.

p.22

성전은 내가 찾아가야 하는 곳이라면, 식탁은 나를 찾아온다. 기대하지 않은 떄에 기대하지 않은 사람과 함께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의 식탁에서 예기치 않은 하나님의 은혜를 만난다. 그러므로 언제 어디서나 누구와도 가능한 예수의 식탁은 다양한 모습으로 예수의 구원을 전해 준다.

p.27

예수의 식탁에서 그들은 어떤 말이나 제의 없이, 하나님의 사랑스러운 피조물이 된다. 사람들이 그들에게 붙여 준 죄인이라는 이름이 무색해지는 순간, 그들이 자신들의 원래적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 그들은 하나님 앞에 선 자신들의 모습을 발견할 것이고,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것 자체로 자신들의 구원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존재로구나!’를 깨닫는 순간은 ‘하나님이 나를 하나님 앞에 서게 하셨구나!’라는 고백으로 이어진다. 구원은 그렇게 하나님 앞에 있는 것이다. 예수의 식탁은 그들로 하여금 이러한 회복을 경험하게 한다.

p.31

예수의 식탁은 규율을 넘어서며, 그 너머에 있는 생명으로 이끈다. 예수는 특정 장소나 특정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어느 곳에서든 생명과 구원을 누릴 수 있는 식탁으로 사람들을 초대한다. 그곳에서 예수는 함께 먹으며 위로하고 희망을 전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거룩한 떡이다.

p.32

예수는 세리와 죄인들에게 그렇게 물 한 잔, 밥 한 끼를 내놓는다. 그리고 말한다. 너희는 더 이상 죄인이 아니라고 말이다. 예수는 그들이 사랑받기 충분한 존재라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해서 식탁을 준비한다. 거룩함은 그렇게 시작된다.

p.41

구원은 예수가 ”오늘은 내가 네 집에서 묵어야 하겠다“라고 말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잃은 것‘을 찾아 온 예수가 하는 말, ”네 집에서 밥이나 같이 먹자“가 구원이다. 이제 삭개오의 집은 구원이 일어나는 중심에 놓였다. 그러나 이 집이 진정으로 구원의 장소가 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예수의 이러한 초대에 대한 반응에 따라 결정된다.

p.55

구원의 개방성은 결국 예수가 하고 싶었던 말의 핵심이다. 예수는 모든 이가 하나님의 피조물이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존재라고 말하고자 한다. 그래서 세리와 죄인들과 밥을 먹으며, 병자들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어 사람들이 제대로 된 모양으로 살아가게 한다. 그들이 자신들의 존엄을 잃이 않고 말이다.

p.61

성전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고넬료의 집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 되었다. 그의 집에 임한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은혜는 이를 보여 준다. 하나님을 독점하려고 안간힘을 쓰던 유대인의 모든 노력이 소리없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다. 성전이나 유대인에게 독점되었던 하나님이 자유롭게 되시는 순간, 이방인들이 그들을 따라 떠도시는 하나님을 자유롭게 만나는 순간, 그 집은 즐거움으로 넘쳐 났다. 그들을 누르고 있었던 것이 무너지고, 생명이 피어났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들은 누릴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그 생명 말이다. 이 즐거운 집에서 베드로가 몇 날을 더 머물며, 생명은 더욱 풍성해졌다.

p.64

예수의 식탁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향해 쏘아 내는 날카로운 눈빛, ‘너는 죄인이야’를 거둬들이게 한다.

p.130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혹은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잔치로서의 구원은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기쁨이 넘쳐 나는 것이며 세상에서 누리지 못한 안식을 경험하는 것이다. 예수는 그것을 이 땅에 가져왔다. 예수가 세리와 죄인과 함께 밥을 먹을 때, 그것은 미래적 소망이 아니라 현재적 구원이 되었다. 예수는 미래적일 뿐 아니라 또한 현재적인 독특한 구원의 잔치를 선물했다. 모든 경계를 허물고 모두를 초대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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