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눈을 심어라 - 눈멂의 역사에 관한 개인적이고 문화적인 탐구
M. 리오나 고댕 지음, 오숙은 옮김 / 반비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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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에 개봉한 한국영화 중 <블라인드> 라는 영화가 있다. 시각 장애우가 살인사건의 목격자로 등장하여 범인을 추적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스릴러 영화였는데, 마지막 순간까지 흥미 진진하게 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 때, 그 영화를 보면서, 시각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호기심과 장난기가 넘치던 어린시절, 눈가리개를 착용하고, 술래잡기를 하면서, 아주 잠깐 앞을 볼 수 없는 경험을 해보았지만, 그것은 아주 잠깐 놀이로서 경험하였을 뿐이지, 잠깐이 아닌 평생을 앞을 볼 수 없는 시각 장애를 가지고 삶을 살아가는 것은 도대체 어떤 느낌일까? 그것을 직접 경험해 보는 것은 어렵겠지만, 시각 장애우의 이야기를 직접 듣거나 그가 쓴 책을 통해서 그들의 세계를 간접경험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이번에 읽은 책의 저자는 현재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를 지니고 있다. 처음부터 시각장애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10살 무렵 시력에 망막색소변성증을 진단받았고, 16살 즈음 보통 크기의 글자도 읽지 못하게 되었고, 40년이 지난 현재는 앞을 보지 못하고 한다. 그러나 그는 다양한 이력을 가진 작가, 교육자, 문학 연구자, 예술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본인이 시력을 잃게 된 경험과 다양한 연구를 바탕으로 '눈멂'의 역사에 관한 탐구를 해나간다.

호메로스, 소포클레스, 샬럿브론테, 프랭크 허버트, 프랜시스 베이컨, 데카르트, 헬렌켈러, 스티비원더...에 이르기 까지 문학, 철학, 대중문화 등 어느 한 분야에 구속받지 않고,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의 삶과 일대기를 추적하며, 시각을 중심적으로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눈멂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설명하고, 더 나아가서 눈멂에 대해서 세상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편견과 왜곡된 생각들에 대해서 예리하게 집어내고, 분석하면서, 눈멂에 대해서 더욱 선명하게 인식하도록 섬세하게 안내하고 있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빛과 어둠 그리고 '봄'과 '보지 못함' 이라는 틀 안에서 이분법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기 마련인데, 저자는 그 두 가지 틈 사이에는 무수한 얼룩덜룩한 지대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책을 통해서, 리오나 고댕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이 세상과 문화가 그리고 있는 시각 장애인 이야기의 대부분은 비시각장애인의 두려움 섞인 상상으로 부적절한 방식으로 그려졌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리오나 고댕'이라는 저자를 안경 삼아서, 이전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눈멂'이라는 세계를 보고, 인식하게 될 것이다.

p.28

"눈멂은 내게 완전한 불행은 아니었다. 눈멂을 동정의 눈으로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삶의 한 방식, 삶의 스타일일 뿐이다." -보르헤스의 에세이 『눈멂』 중에서 -

시각 장애우를 바라볼 때, 그들들 불쌍히 여기거나, 동정심을 느낄 수도 있는데 그러한 태도는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각장애인은 평생 누군가에게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는 인식, (시각)장애인은 비장애인보다 지적 수준이 낮다는 인식은 모두 편견이다. 이 책을 통해서, (시각)장애우를 도움이 필요한 대상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하나의 온전한 인격으로 존중받기를 원한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또한, 더 나아가서 비시각장애우가 정상적인 시력을 활용하여,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도 온전하지 못하고, 부분적인 파편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정말 그렇다! 현미경이나 망원경을 생각해 보라. 비시각장애우가 아무리 좋은 시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고, 현미경이나 망원경으로 볼 수 있는 세밀한 것이나 먼 거리에 있는 것은 보지 못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생각해 볼 때,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지에 대한 기준은 너무나 편협하게 세워진 것이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책을 통해서, '눈멂'과 '봄' 에 대해서 생각하는 인식의 전환과 확장이 일어나고, 더 나아가서 우리가 인식하고, 판단하는 세계가 얼마나 지엽적이고, 파편적이고, 부분적인 것인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 또한 시각장애와 장애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생각들이 좀 더 성숙한 단계로 발전하였으면 좋겠다. 낡고 오래된 시작중심의 문화와 세상이 아닌 새롭고 좀 더 넓은 시야로 '눈멂'과 '봄'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 원하는 분들에게 1독을 권한다.

아래는 이 책의 내용 중에서 기억하고 싶은 좋은 문장들을 인용해 본다.


p.21

이 책은 우리 문화에 만연한 시각 중심주의를 조금씩 벗겨내고, 감각의 차이를 수용하는 사회 정의의 공간을 열어 젖히고, 보는 것과 보지 못하는 것, 눈멂과 봄, 어둠과 밝음 사이에 놓인 얼룩덜룩하고 광활한 지대를 찬양하고자 한다.

p.71

바울이 썼다고 여겨지는 「고린도전서」 에는 인간의 제한된 시력을 묘사하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추어보듯이 희미하게 봅니다.” 바울의 이야기는 눈멂을 고쳐주는 능력을 말하고 있지만, 어쩌면 그 이야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교훈은 이것이 아닐까. 우리가 우리 시력이 아주 완벽하다고 믿을 때조차도(또는 특히나 그렇게 믿을 때) 우리의 시력은 근본적으로 어둡고 불완전하며, 시각은 오만과 자존심, 영원한 독선과 연결된다는 깨달음 말이다.

P. 78~79

우리의 감각은 부정확하고 제한적일 것이다. 그러나 감각이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배우고 감각 너머 또는 그 아래 있는 것을 상상하고 구성할 수 있을까? 애초에 초월의 욕구를 자극하는 가정을 고민한다는 건 더더욱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내 생각에 우리에게 세계를 알려주는 것은 우리의 몸과, 더듬거리고 틀리기 쉬운 우리 몸의 감각뿐이다.

P. 103

우리는 맨눈, 즉 인간의 제한된 시각으로 보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드러내는 한 점, 말 그대로의 점에서 시작한다. 현미경은 우리에게 보이는 날카로움과 매끄러움이 그것의 참된 속성 또는 최종 실체라는 우리의 확신을 무너뜨림으로써, 매끄러운 표면에 대한 우리의 지각이 우리의 크기, 거리, 감각의 예리함에 상대적이라고 깎아내린다. 이런 깨달음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일단 고정된 양극성을 영원히 괴롭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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