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당신은 많은 시간을 ‘멘토 수집하는 일’에 쓴다. 당신이 하는 모든 질문에 시원시원한 대답을 내놓고 당신이 가진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나이 많고 이미 성공을 거둔 그런 사람을 찾으려고 애쓴다. 그런데 당신 직장 사람들은 당신이 깊이 있고 충만한 삶을 살아가길 원하지 않음이 드러난다. 이 사람들은 당신이 스스로를 직장이 바라는 기민한 동물로 만들어 나갈 때마다 지지와 인정의 금메달을 당신 목에 걸어 준다.
자신은 충분히 용감하거나 유능해서 자기 내면의 가장 깊은 곳과 중요한 부분을 꿰뚫어 볼 수 있다고 잘난 체할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마라. 당신이 이리저리 휘둘리는 한 가지 이유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망치고 있기 때문이다.
바우만Zygmunt Bauman이 "액체 근대성liquid modernity"이라고 부른 것에 맞닥뜨리는 것이다(바우만은 가족이나 직장 같은 사회 제도를 포함해 모든 것이 견고하고 고정되고 확정적이던 "고체 근대성"의 시대를 지나 모든 것이 유동적이고 불확실해진 "액체 근대성"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주장한다-옮긴이).
여기에서 당신은 깨달을 것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주는 대답들이 사실은 이십 대 시절을 힘겹게 살도록 만들고 또 그들의 상태를 한층 더 나쁘게 만든다는 것을······. 대학 졸업생들은 림보에 놓여 있으며 우리는 그들에게 불확실성을 준다. 그들은 자기가 굳이 ‘이것’이 아니라 ‘저것’을 해야 하는 이유를 알고 싶어 한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너희 바깥에 존재하는 그 어떤 기준에도 얽매이지 말고 너희 스스로 그것을 찾아라"라는 말 말고는 아무 해 줄 얘기가 없다.
소설가이자 철학자인 아이리스 머독Iris Murdoch의 말을 빌리자면 "사람은 자기 스스로 어떤 그림을 그린 다음 그 그림을 닮으려고 하는 피조물이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