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시의 문장들 - 굳은 마음을 말랑하게 하는 시인의 말들 문장 시리즈
김이경 지음 / 유유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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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종의 「섬」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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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의 목욕탕과 술」 중에서 머릿말 첫문장

˝아직 해가 떨어지지 않았을 때 마시는 술은 달다.당연한 이야기지만 밤보다는 몸이 팔팔하기 때문이겠지. 몸도 마음도 원하는, 말하자면 승리의 나발을 부는 술이다.사람들이 한 창 일하는 시간에 마시니 어쩐지 겸연쩍기도 한데, 그런 느낌이 술을 더 맛있게 한다.
아직 할 일이 남았건만 그걸 무시하고 밝은 햇살 아래서 당당히 마셔버리는, 나더러 뭘 어쩌란 말이냐 식의 통쾌한 기분도 술맛을 돋운다.마셔도 아직 `오늘`이 남아 있다는 시간적 여유로움도 술맛을 풍성하게 한다.
말 그대로 밝은 술이다. 마시고 싶으니까 마신다. 그러니 취기도 명쾌하다. 기분 좋다.
한낮의 술은 어디를 어떻게 뜯어보아도 최고다.
그리고 술이 넘어가기 전에, 술에 무릎을 꿇기 전에 거침없이 돌아가는 것이 이상적이긴 한데, 쩝.

밤술은 말이 많다.
피곤하니까. 스트레스를 받았으니까. 지겨우니까. 마시고자하니까. 또는 기분이 좋은 일이 있으니까. 기념일이니까. 거기 술이 있으니까.
이런바 `까술`이 많다. 좋건 나쁘건 이유를 달고 마신다.
몸도 마음도 기대는 듯한, 어리광을 부리며 빠져버리는 듯한, 말하자면 이쪽에서 애당초 패배를 선언하고 들어가는 술이다.
그러다 결국 ˝취했으니까.˝라며 사람에게도 기댄다.
마셔버리면 오늘은 끝이다. 집에 돌아가 꿈속을 헤매며 자는 것 뿐이다. 끝장을 향하는 술이다.
노래방에서 한 곡 뽑아본들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
술기운과 잠기운이 마구 뒤섞인다. 취한 건지 졸린 건지.
아아, 오늘 밤도 술이 나를 집어삼킨다. 모든 것이 조금씩 허물어져 간다.
뭐, 그랗게까지 밤술을 비난할 필요도 없겠지만, 어느 모로 보나 건강히고 정직하면서 밝은 낮술에는 비할 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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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테크놀로지는 인류의 적인가 중에서

˝테크놀로지를 `안다`는 행위에는 다음과 같은 4개의 단계가 있습니다.
1. 사용한다.
2. 잠재력을 알고 있다.
3. 왜 가능한지 그 원리를 알고 이해하고 있다.
4. 실제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다.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람(1)은 전 세계에 27억명이나 있습니다. 그리고 컴퓨터로 `무엇이 가능한가`라는 잠재력도 90% 이상의 사람이 이해하고 있을 것입니다.(2), 그러나 전자회로 등을 포함하여 컴퓨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라고 있는 사람(3)은 0.01% 정도 밖에는 안 될 것입니다.
미래의 방향을 읽기 위해서 4까지 알 필요는 없습니다. 한편 1과 2는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어서 차이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3인 `원리`를 알고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이 테크놀로지가 왜 만들어졌고 어떤 과제를 해결해 왔는지를 알면 그 과제를 해결하는 다른 선택 방법이 생겼을 때 미래의 방향성을 좀 더 빨리 헤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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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를 위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3 - 경상권 여행자를 위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3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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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편 중에서..
오구라 다케노스(小倉武之助)는 이치다 지로(市田次郎)와 함께 일제강점기에 우리 문화제를 가장 많이 수집하고, 가장많이 반출해간 사람이다. 이들은 대구에 살면서 신라와 가야고분 도굴품을 많이 수집했다. 오구라는 33세 되던 1903년 조선경부철도 주식회사에 입사하면서 한반도에 들어와 41세 되던 1911년에 대구전기주식회사(통칭 남선전기)를 설립해 사장이 되었고, 65세 되던 1935년에는 다른 회사들을 합병한 조선하봉전기주식회사의 사장이 되었다.
그가 우리 문화재를 본격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한 것은 남선전기 사장으로 재력을 갖춘 1921년께다. 8.15해방이 되자 그는 이들 수집품을 모두 갖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가 가져가지 못한 문화재는 그의 대구 저택 정원에 있던 통일신라시대의 빼어난 승탑2점(보물 제135호, 제258호)이었다. 이 승탑은 지금 경북대박물관 옥외전시장에 있다.
1958년, 88세이던 오구라는 한반도에서 가져간 우리 문화재를 위한 재단법인 `오구라컬렉션보존회`를 설립하고 1964년 94세로 죽을 때까지 의장 자리에 있었다. 1965년 한일협정때 이 오구라컬렉션의 반환문제가 제기되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약탈이 아니라 오구라 개인이 구입한 사유재산이라는 이유로 반환을 거부했고, 당시 우리 정부도 이를 강력히 요구하지 않았다 1981년 오구라컬렉션 보존회는 이 문화재들을 도쿄국립박물관에 모두 기증하고 해산했다. 오구라컬렉션은 1,110건으로 양과 질 모두가 엄청나다. 이 가운데는 이미 일본의 중요 문화재(우리나라의 보물에 해당)로 지정된 것이 8점, 중요미술품이 31점에 이른다.(일본은 외국 유물도 국가가 문화재로 지정한다.)
도쿄박물관은 1982년 오구라컬렉션 전시회를 가졌는데, 그 도록에는 ˝한반도 미술품.고고 자료의 일대(一大) 컬렉션˝일는 찬사의 글로 가득하다. 오구라는 기증의 말에서 자신의 수집품이 고대사를 밝히는 데 도움이 되고자 했다고 말하면서 미안한 마음의 표시는 어디에도 하지 않았다. 오구라의 법적인 잘못을 따지는 것은 별도로 해두더라고, 학술적 입장에서 그가 크게 잘못한 것은 장물아비였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구입경위와 출토 장소에 대해 끝내 입을 다물었다는 점이다.
오구라컬렉션은 너무나 중요해 국내에서 두 차례에 걸쳐 [해외한국문화재도록]으로 발간된 바 있는데, 이 도록이나 도쿄박물관 전시실에서는 그나마 알려져 있던 출토지조차 모호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1982년 도쿄박물관에서 펴낸 전시 도록에 의하면 금동관.금동날개모양관식.금팔찌,금동신발,둥근고리긴칼() 등 8점에 대해서는 `전() 경상남도 창녕 출토`라고 명확히 기록돼 있다. 이것이 오구라컬렉션의 시말이며 교동 고분군의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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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를 위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3 - 경상권 여행자를 위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3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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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즈가 작아서 가지고 다니기에는 기존 책보다는 좋지만 두께 때문에 쉽지 않음..
전자책으로 나왔으면 좋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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