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의 목욕탕과 술」 중에서 머릿말 첫문장

˝아직 해가 떨어지지 않았을 때 마시는 술은 달다.당연한 이야기지만 밤보다는 몸이 팔팔하기 때문이겠지. 몸도 마음도 원하는, 말하자면 승리의 나발을 부는 술이다.사람들이 한 창 일하는 시간에 마시니 어쩐지 겸연쩍기도 한데, 그런 느낌이 술을 더 맛있게 한다.
아직 할 일이 남았건만 그걸 무시하고 밝은 햇살 아래서 당당히 마셔버리는, 나더러 뭘 어쩌란 말이냐 식의 통쾌한 기분도 술맛을 돋운다.마셔도 아직 `오늘`이 남아 있다는 시간적 여유로움도 술맛을 풍성하게 한다.
말 그대로 밝은 술이다. 마시고 싶으니까 마신다. 그러니 취기도 명쾌하다. 기분 좋다.
한낮의 술은 어디를 어떻게 뜯어보아도 최고다.
그리고 술이 넘어가기 전에, 술에 무릎을 꿇기 전에 거침없이 돌아가는 것이 이상적이긴 한데, 쩝.

밤술은 말이 많다.
피곤하니까. 스트레스를 받았으니까. 지겨우니까. 마시고자하니까. 또는 기분이 좋은 일이 있으니까. 기념일이니까. 거기 술이 있으니까.
이런바 `까술`이 많다. 좋건 나쁘건 이유를 달고 마신다.
몸도 마음도 기대는 듯한, 어리광을 부리며 빠져버리는 듯한, 말하자면 이쪽에서 애당초 패배를 선언하고 들어가는 술이다.
그러다 결국 ˝취했으니까.˝라며 사람에게도 기댄다.
마셔버리면 오늘은 끝이다. 집에 돌아가 꿈속을 헤매며 자는 것 뿐이다. 끝장을 향하는 술이다.
노래방에서 한 곡 뽑아본들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
술기운과 잠기운이 마구 뒤섞인다. 취한 건지 졸린 건지.
아아, 오늘 밤도 술이 나를 집어삼킨다. 모든 것이 조금씩 허물어져 간다.
뭐, 그랗게까지 밤술을 비난할 필요도 없겠지만, 어느 모로 보나 건강히고 정직하면서 밝은 낮술에는 비할 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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