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를 위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3 - 경상권 여행자를 위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3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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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편 중에서..
오구라 다케노스(小倉武之助)는 이치다 지로(市田次郎)와 함께 일제강점기에 우리 문화제를 가장 많이 수집하고, 가장많이 반출해간 사람이다. 이들은 대구에 살면서 신라와 가야고분 도굴품을 많이 수집했다. 오구라는 33세 되던 1903년 조선경부철도 주식회사에 입사하면서 한반도에 들어와 41세 되던 1911년에 대구전기주식회사(통칭 남선전기)를 설립해 사장이 되었고, 65세 되던 1935년에는 다른 회사들을 합병한 조선하봉전기주식회사의 사장이 되었다.
그가 우리 문화재를 본격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한 것은 남선전기 사장으로 재력을 갖춘 1921년께다. 8.15해방이 되자 그는 이들 수집품을 모두 갖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가 가져가지 못한 문화재는 그의 대구 저택 정원에 있던 통일신라시대의 빼어난 승탑2점(보물 제135호, 제258호)이었다. 이 승탑은 지금 경북대박물관 옥외전시장에 있다.
1958년, 88세이던 오구라는 한반도에서 가져간 우리 문화재를 위한 재단법인 `오구라컬렉션보존회`를 설립하고 1964년 94세로 죽을 때까지 의장 자리에 있었다. 1965년 한일협정때 이 오구라컬렉션의 반환문제가 제기되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약탈이 아니라 오구라 개인이 구입한 사유재산이라는 이유로 반환을 거부했고, 당시 우리 정부도 이를 강력히 요구하지 않았다 1981년 오구라컬렉션 보존회는 이 문화재들을 도쿄국립박물관에 모두 기증하고 해산했다. 오구라컬렉션은 1,110건으로 양과 질 모두가 엄청나다. 이 가운데는 이미 일본의 중요 문화재(우리나라의 보물에 해당)로 지정된 것이 8점, 중요미술품이 31점에 이른다.(일본은 외국 유물도 국가가 문화재로 지정한다.)
도쿄박물관은 1982년 오구라컬렉션 전시회를 가졌는데, 그 도록에는 ˝한반도 미술품.고고 자료의 일대(一大) 컬렉션˝일는 찬사의 글로 가득하다. 오구라는 기증의 말에서 자신의 수집품이 고대사를 밝히는 데 도움이 되고자 했다고 말하면서 미안한 마음의 표시는 어디에도 하지 않았다. 오구라의 법적인 잘못을 따지는 것은 별도로 해두더라고, 학술적 입장에서 그가 크게 잘못한 것은 장물아비였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구입경위와 출토 장소에 대해 끝내 입을 다물었다는 점이다.
오구라컬렉션은 너무나 중요해 국내에서 두 차례에 걸쳐 [해외한국문화재도록]으로 발간된 바 있는데, 이 도록이나 도쿄박물관 전시실에서는 그나마 알려져 있던 출토지조차 모호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1982년 도쿄박물관에서 펴낸 전시 도록에 의하면 금동관.금동날개모양관식.금팔찌,금동신발,둥근고리긴칼() 등 8점에 대해서는 `전() 경상남도 창녕 출토`라고 명확히 기록돼 있다. 이것이 오구라컬렉션의 시말이며 교동 고분군의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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