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파 - 조선의 마지막 소리
김해숙 지음 / 다산책방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인물의 역사란 무엇인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한 인간의 긴 여정은 충분히 감탄할 만하다. 예나 지금이나 하층민이 올라갈 수 있는 위치는 한계가 있다. 그나마 지금은 자신의 노력으로 얼마든지 상위 계층으로 올라가 부와 권력을 쌓을 수 있지만 1800년 중기부터 1900년 초, 아직 근대화가 무르익지 않은 시기에는 계급의 상승이 어려웠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여자는 소리를 할 수 없었던 조선 후기, 금기를 깬 최초의 명창 진채선 이후 두 번째로 명창의 반열에 오른 여성 소리꾼, 허금파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연희극장 협률사에 발탁되어 <춘향전>월매로 이름을 떨친 금파는 이십 대에 기녀였고 삼십이 훌쩍 넘어서야 소리꾼이 된 독특한 인물이다. 그런 그는 후일 기록조차 남기지 않고 무대 최고의 자리에서 사라진다. 판소리 단가 <도리화가>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진채선이후의 여성 소리꾼인 까닭에 실력을 논하기 전부터 진채선이라는 최초의 영예에 비교될 수밖에 없었던 금파였다. 그럼에도 남성 중심 소리판의 냉대에 굴하지 않고 오직 소리로 무대를 장악한 그였다.

 

나는 나요. 누구의 뒤를 밟지 않고 오롯이 나로 남을 거요

 

주인공의 이 말은 그의 내재된 가치관을 그대로 드러낸다. 자존심이 강하고 다른 사람들의 평판에 좌지우지 않는 주관이 뚜렷하고 강직한 그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다.

 

고종 황제의 즉위 40주년 기념식이 예정됐던 1902년 전후를 배경으로, 소설은 소리의 고장 고창과 수도 한성을 넘나들며 문화적 과도기가 만들어 내는 갈등과 혼란을 놓치지 않는다. 개화기를 지나 신식 연극이 물밀듯 들어오면서 판소리 역시 창극 무대로 변모했지만, 극중 창자가 남자여야 함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것은 여자 배역에도 마찬가지였다. 남녀가 함께 무대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질타를 받는 때였다. 치마저고리를 입은 남자 소리꾼이 춘향을 연기하던 시기에 여자 소리꾼으로서 당당히 창극 무대에 올라 관중을 사로잡은 이가 바로 금파였다.

 

금파는 밑바닥에서부터 자신의 삶을 연단하여 시대의 타오르는 불꽃으로 다시 태어난 여성이었다. 소리의 영과 혼을 곡조에 아로새기며 남이 가지 않은 길을 닦아 나가는 과정은 비단 소설 속 금파만의 일이 아니다. 작금의 우리들의 삶도 이와 비슷하다. 역경은 한 사람을 올바르게 이끈다. 물론 좌절해서 재기에 실패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들을 비난할 필요는 없다. 각자의 생각과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인생이라는 긴 시간으로 보면 출렁이는 파도는 수없이 존재한다. 그 파도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고 역경을 극복하고자 하는 그 상황에 대처하는 신념과 용기가 필요할 따름이다.

 

그렇기에 스스로를 꺾을지언정 흔들리지 않는 강골의 성품과 재능의 여인 금파의 행적을 소설로 되짚어가는 여정은 백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깊은 울림을 남긴다. 금파는 자신의 꿈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려는 이들의 앞날에 환한 등불을 비춰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